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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박재현 칼럼] 한국서 돈을 쓰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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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시끄럽고, 경제 상황은 나쁘고 ,안보는 불안한데 주가는 최고가 행진이다.

수익성이 좋아진 대기업 주식은 신났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개인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소비경기도 덩달아 좋아진다. 자산 효과다. 그런데 지금은 선순환 구조가 깨졌다. 윗목의 온기가 아랫목으로 퍼져가지 않는다. 돈이 잘 안 도는 탓이다. 한국에서 돈을 너무 안 쓴다. 노후 불안, 고용 불안, 시국 불안, 가계부채 불안 등을 이유로 든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돈을 못 쓰게 하는 규제와 과도한 기업·부자 때리기 정서다.

대기업들이 돈을 쓸 만한데 최순실 사태 이후 지갑을 닫았다. 투자는 물론 오해를 살 사회공헌성 지출은 아예 안 한다. 돈 주고 뺨 맞는데 누구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 명절마다 정부에서 샀던 전통시장상품권 구매액이 올해 초 5분의 1로 줄었다. 100억원대로 급감했다. 재래시장은 큰손을 잃었다. 기업 고마운 줄을 이제 알 거다.

또 재외동포 기업인이 모국에서 돈 좀 쓰겠다는데 그걸 막고 있다. 소득세 거주자 판정 기준이 1년90일로 바뀌는 바람에 한국에 자주 오고 싶어도 못 온다. 한국에 오면 세금을 더 물까봐 거주 날짜를 세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잘나가는 한국계 고액 연봉자들도 90일 규정 때문에 한국 출장에 제약을 받는다. 역외탈세 금지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규제다.

지금은 외국 비즈니스맨마저 한국에 오는 것을 꺼린다. 얼마 전 글로벌 제약회사와 금융사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다. 두 회사는 아시아지사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려고 공을 들였는데 동남아시아에 뺏겼다. 글로벌 제약회사는 아시아 각 도시에서 제주도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안 좋은 데다 숙박비를 포함한 행사 비용이 비싸서 무산됐다. 외국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하는 행사 비용이 한국의 절반이라는 말에 서울 행사를 포기했다. 비용뿐 아니라 외국인 응대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뒤진다는 평이다. 구글지도 서비스도 안 된다.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쓰는 돈이 일반 관광객의 2배 정도다. 그런데 한국은 500명 이상 비즈니스맨이 식사하면서 회의를 할 수 있는 컨벤션홀이 없다. 그동안 중국 관광객을 잡는다고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을 짓는 데 올인했다. 중국 유커의 발길이 끊기자 문 닫을 위기다. 쓸 만한 대형 호텔을 많이 지어야 하는데 제동이 걸려 고급 관광객 유치가 어렵다. 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막는 것은 관광으로 돈을 안 벌겠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후진적 관광 인프라에다 바가지 요금 때문에 국민에게도 외면 당하고 있다. 작년에 해외에서 쓴 돈이 통계에 잡힌 것만 27조원이다. 해외 카드 사용액(16조4000억원)과 해외에 나가는 사람(2238만명)은 최고치다.

쓸 돈 없다면서 해외에선 펑펑 쓴다. 전문직, 자영업자 사이에 국내에서 돈을 많이 쓰면 자금 추적을 당한다는 얘기가 은연중에 퍼져 있다. 박근혜정부 초기에 세무조사를 세게 받은 중소기업 오너들이 겁을 단단히 먹은 것 같다. 자진해서 세금을 내다 보니 세금이 잘 걷힌다. 1월 세수가 작년보다 3조8000억원 더 걷혔다. 경기가 안 좋은데 정부만 배부르는 게 말이 되나. 김영란법까지 등장해 국내에서 돈 쓰고 소비하는 것을 막고 있다. 눈치 보기 싫어 해외에서 따로 만나 골프를 즐기는 신풍속도가 생기고 있다. 소비절벽으로 가게 문을 닫은 실직자들의 절규가 안 들리나.

핵심은 규제 철폐다. 최근 미국 월가에 다녀온 기업인은 미국은 음식점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호황이고 금융주가 올해 50% 올랐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규제 완화 기대감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그동안 글로벌 금융사들이 해외에서 번 돈을 높은 세금 때문에 미국으로 못 들여왔는데, 세율 인하로 가져올 수 있게 돼 그걸 재원으로 인수·합병(M&A)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그만 규제 하나를 풀어도 연쇄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증세로 가고 경제민주화 입법 등 각종 규제로 묶으려고 하니 국내에서 돈을 안 쓴다. 대선주자들은 돈 안 들이고 한국에서 돈을 많이 쓰게 하는 공약을 내놔라. 그러면 일자리는 자연히 늘어난다.

[박재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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