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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월간중앙 단독 인터뷰] 이정원 “검찰, 제대로만 하면 박근혜·우병우 구속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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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박영수 특검 특별수사관 이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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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들어가면 더 충격적 내용들 공개될 것

■ 박 전 대통령 죄의식 없어 보여

■ 토 다는 것도 질문도 용납 안 했던 최순실

■ 장시호는 부인만 하는 최순실 답답하다고 토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 122명의 매머드급 수사인력으로 압수수색 46회, 디지털 분석 모바일 기기 등 900대, 소환 인원 60여 명, 30명 기소 등 사상 최대 규모의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준비기간을 포함해 지난 3개월은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특검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난 3월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월간중앙은 지난 3월 13일 박영수 특검에서 특별수사관으로 활약한 이정원 변호사(48·법무법인 강남·사법연수원 38기)를 만나 특검 90일 동안의 수사 비화, 특검팀 내부와 핵심인물 등에 관한 뒷얘기를 들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 변호사는 “재판에 들어가면 더 놀라운 사실들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검찰이 제대로만 수사하면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수석 모두 구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후대에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수사백서 발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Q :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모습을 보고 어떤느낌이 들었나?

A :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입장으로 보여 몹시 당황했다.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한마디 말씀이라도 하셨어야 했다. 박영수 특검도 탄핵 직후 대통령이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고 해서 걱정을 좀 많이 하시더라.”




Q : “진실이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박 전 대통령 워딩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나?

A : “그 얘기 듣고 정말 황당했다. 저희가 조사하면서 보고 듣고 확인한 게 엄연히 있지 않겠나. 증거가 충분한 것만 엄밀하게 추려서 공소사실에 포함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각종 중대한 정보, 제보와 첩보가 많았다. 저뿐만 아니라 특검팀원 모두 ‘진실’ 운운하는 얘기에 어이없어 하지 않았을까.”




Q : 언론 보도가 안 된 내용도 많을 텐데, 진실은 뭔가?

A : “국정농단의 범위나 깊이 이런 부분은 우리도 놀랄 정도였다. 설마 하던 일들이 실제 벌어졌던 거다. ‘야, 이 정도였나?’ 싶은 것도 있다. 검찰 특수본 수사 때도 그랬지만 특검도 공소장이나 수사결과 발표 때 디테일은 빠지게 된다. 재판에서 조사받은 분들의 구체적 워딩, 감춰져 있던 증거 같은 것이 다 공개되면 더 놀라운 얘기가 있을 거다. 국민도 이런 부분을 잘 지켜보시면 ‘진실’이 무엇인지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을 거다.”




Q :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걸까.

A : “국민에게 진솔한 사과의 말씀이 없는 걸 보면 본인이 뭘 했고, 그 일들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왔는지에 대해 의도적이든 아니든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죄의식이라는 게 없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Q : 공이 검찰로 다시 넘어갔는데 박 전 대통령을 제대로 수사할까?

A : “의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건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과거 대검 중수부에 비해 현재의 특수본은 의사결정 구조가 상대적으로 복잡한 것 같다. 수사 보안문제도 어려울 수 있다. 대선국면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을 텐데 어려움이 있을 거다. 특히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수석을 수사하다 보면 검찰 조직 내부로 칼을 겨눠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제대로 안 하면 봐주기 수사했다고 비판받을 거다. 특히 탄핵 직후 공백기가 좀 있었는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탄핵 직후에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바로 치고 들어갔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Q :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 수사할까?

A :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없다면 법원도 영장 발부하리라고 본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머뭇거리면 검찰도, 법원도 오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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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팀의 윤석열(왼쪽부터) 수사팀장, 양재식·박충근·이용복 특검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2월 17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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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총 들고 막는데 어떻게 들어가나”


Q : 애초부터 박 전 대통령은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닌가?

A : “그랬던 것 같다. 영장 청구할 때 청와대 전체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장소와 자료 하나하나를 특정했었다. 청와대 관계자 입회하에 보안문서는 아예 손대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측은 보안문서가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안 된다는 건데 말이 안 된다. 보안문서라는 게 등급을 부여해서 특정 장소에 일괄적으로 보관하도록 규정이 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도록 관리했다면 그 자체가 법률 위반이다.”




Q : 영장 집행을 막는 경호원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무집행방해등으로 체포해서라도 진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A : “K2 소총 차고 물리력으로 막는데 그게 가능하나? 경찰 불러도 안 된다. (쓴웃음) 대통령이 ‘못 들어와’ 하고 버티는 건데 그걸 뚫고 강제로 들어가는 순간 험악하고 심각한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Q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도 협조요청을 했지 않나?

A : “한 것으로 안다. 황 권한대행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이 판단할 문제라는 식으로 피해갔다. 노(NO) 한 거다. 충분히 설명하고 조율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는데 꿈쩍도 안 했다.”




Q :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더라면 우병우 전 수석 건도 더 수월하게풀리지 않았을까?

A : “그래서 우리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을 중요하게 봤던 거다. 컴퓨터를 지우거나 해도 일단 확보가 되면 다음 스탭으로 나갈 여지가 생기는 거다. 또 일일보고 등 청와대 업무보고 문건이나 대통령 말씀자료 같은 공식자료는 함부로 지울 수가 없다. 증거 인멸에도 한계가 있는 거다. 압수가 됐다면 우 전 수석 건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 등 여러 의혹을 규명할 단서를 더 찾아냈을 가능성이 있었다.”




Q : 특검 기간이 연장됐더라면 어땠을까?

A : “사견이지만 탄핵 직후에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에 전격 나서지 않았겠나. 삼성 외에도 총수가 구속되는 기업들이 여럿 나왔을 것이고. 우 전 수석 수사도 탄력이 붙어 의미 있는 성과를 냈을 거다.”




Q : 대통령 대면조사 역시 불발돼 아쉬움이 남는다.

A : “처음엔 특검이 언론에 날짜를 유출했다고 의심하더라. 청와대 측과 대통령 대면조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중이라 굉장히 조심하는 상황이었다. 내부에서도 정확한 일정은 협상 당사자인 박 특검님 정도밖에 몰랐는데 우리 쪽에서 정보를 흘렸다고 하면서 틀어버리는데 답답했다. 피의사실이 아닌 수사 절차와 관련된 내용을 핑계로 조사를 거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Q : 다른 속사정도 있지 않았나?

A : “원하는 시간과 장소, 피의자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 조사 요구 등 청와대 측이 요구하는 건 다 받았다. 그런데 진술 녹화·녹음은 끝까지 거부를 하더라. 녹화가 부담스러우면 녹음만 하자는데도 안 된다는 거다. 혹여 나중에 딴 말씀하실 수도 있잖은가. 녹음조사는 양보할 수 없었는데 끝까지 못 받겠다고 해서 무산된 거다.”




Q : 조사를 받지 않기 위해 꼬투리를 잡았다고 보았나?

A :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Q :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 여론이60~70%로 높게 나온다.

A : “특검이 연장됐더라면 탄핵 뒤 구속 수사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조사거부에 압수수색도 막고, 증거인멸 정황도 있지 않았나. 원칙대로 영장 청구해서 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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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2월 18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조사실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우 전수석은 최순실을 아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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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우병우 전 수석은 영장이 기각됐는데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웠나?

A : “이석수 특별감찰관 내사 중단 압력, 수사 정보 유출, 세월호 수사 방해와 직권남용 등은 우 전 수석 밑에 실행자(행정관)들을 불러 조사해야 하는데 별 핑계를 다 대면서 피해 다니고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 분들이 우 전 수석 영장실질심사 때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서를 집어넣더라. 가족회사인 정강 관련 부분도 들여다보긴 했는데 특검의 수사 범위에 해당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제외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수사할 시간도 부족했다. 우 수석 건 뿐 아니라 다른 사건 관련자도 ‘왜 전화 안 받았느냐’고 따지면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는 핑계까지 댔다.”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수석을 수사하다 보면 검찰 조직 내부로 칼을 겨눠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제대로 안 하면 봐주기 수사했다고 비판받을 거다.”

우병우 부하들 끝까지 협조거부



Q : 우 전 수석 계좌에서 뭉칫돈이 나온 게 사실인가? 검찰 수뇌부와의 계속 통화한 부분도 나왔는데.

A : “내가 직접 수사한 부분은 아니지만 내용 일부는 사실인 것으로 안다. 돈 문제나 검찰 측과의 통화 부분을 특검이 다 규명해내지는 못했다. 이런 의혹들은 검찰 특수본이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Q : 우 전 수석은 특검에서도 최씨와의 관계를 끝까지 부인했나?

A :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하려고 가령 함께 골프 라운딩했다는 의혹 부분도 확인을 해봤다. 그런데 함께 골프를 친 프로 선수가 전화하면 끊어버리거나 아예 안 받는 등 협조를 전해 안 하더라. 의심 가는 정황은 있는데 확인이 안 됐다.”




Q : 검찰이 우 전 수석을 구속할 수 있을까?

A : “우 전 수석 지시받고 실행에 옮긴 사람들에 대한 조사만 잘 이뤄진다면 구속영장 청구해 발부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어쩌면 혐의가 더 늘어나 강한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Q : 특검 90일 동안 가장 큰 고비는 역시 삼성 이재용 부회장 수사때 아닌가?

A : “이 부회장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다. 내부에선 영장 발부를 자신했었다. 기각 직후에 ‘역시 삼성이구나’, ‘삼성이 세긴 세구나’ 하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수사가 탄력을 받아 쭉쭉 가던 상태였는데 수사동력이 확 빠질까 걱정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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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위한 국회의 법안 상정이 무산됐다. 심각한 표정의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날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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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장관들 이상으로 이재용 부회장 수사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A : “박 특검은 국정농단의 핵심이었으니까 피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영장 청구 직전부터 언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까지는 특검 수사를 응원하고 도와주다가 이 부회장 영장 청구와 관련해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이게 삼성의 힘인가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긴 했다.”




Q : 그래도 정공법으로 돌파했잖나?

A : “박 특검은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삼성에도 빚진 게 하나 없다. 이번에 수사 대상이 된 대기업 사외이사 해본 적도 없다. 현직 때 현대자동차, SK 등 대기업 수사 세게 하신 경험도 풍부하다. 한 재벌 회장이 ‘왜 박영수 안 챙겼느냐’고 직원에게 명패 집어던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리더라. (웃음) 박 특검은 대상이 누구든 국민만 보고 가는 건데 정면돌파할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Q : 이 부회장의 영장 재청구를 놓고 내부 논란은 없었나?

A : “영장 재청구 여부를 놓고 약간의 논의가 있었지만 이틀쯤 지나면서 내용 보강해서 재청구로 가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확 잡혔다. 수사 보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물이 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Q : 안종범 전 수석의 추가 수첩을 말하는 건가?

A : “추가 확보된 39권 수첩에 뇌물 혐의를 입증할 핵심 단서들이 많이 있었다. 또 삼성 관련자들의 녹음파일 등도 수사 보강에 도움이 됐다. 박 특검께서 평소에 ‘나는 수사 운이 좋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돌파구가 필요한 타이밍에 딱딱 맞춰 새로운 진술이나 증거물이 튀어나왔다.”




Q : 이 부회장 첫 영장청구 앞두고 특검이 멈칫거린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A : “영장청구를 두고 이론은 없었다. 다만 구속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혹시 영장에 빠진 게 없나 세밀하게 체크하는데 막판에 시간이 좀 걸렸던 거다. 또 이 부회장만 영장 청구할지 아니면 다른 삼성 인사들도 포함해서 할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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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핵심 피의자들이 사용한 대포폰도 화제였다.

A :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최순실, 정호성 등이 대포폰으로 통화를 자주 해온 것이 드러났다. 최씨는 많게는 대포폰 세 대를 수시로 명의를 바꿔가면서 사용했다. 본인이 단골로 대포폰을 개통하는데 이용한 휴대전화 대리점까지 다 현장 확인을 했다. 대부분 자신의 측근들 명의로 개통한 거다. 또 이영선 행정관이 차명으로 개통해 대통령을 포함해 사건 관련자들에게 건넨 대포폰만 70개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Q : 박 전 대통령도 지속적으로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A : “보안차원에서였다는데 이미 지급된 비화기(암호화된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굳이 대포폰을 여러 대 쓰셨다는 게…. 게다가 사건화가 돼 최씨가 독일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대포폰으로 지속적으로 통화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귀국 전 대포폰으로 박 전 대통령과 하루에 세 통 이상 전화를 한 부분도 있다. 최씨 혼자 판단으로 귀국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거다. 일단 급한 불은 꺼야 하니까 들어온 것일 테고 어느 정도 약속된 뭔가가 있었지 않았겠나.”




Q : 대통령 측은 대포폰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지 않았나.

A : “디지털포렌식을 해보면 사용자 동선에 맞춰서 수신지, 발신지가 정확하게 분석된다. 청와대 내에서도 업무동쪽에서 사용한 건지, 관저에서 사용한 것인지까지 명확하게 다 나온다. 관저에서 대통령 외에 누가 최씨와 통화를 했겠나.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을 부인하는 게 말이 되나.”




Q : 최순실씨는 조사받을 때 태도가 어땠나.

A : “하루종일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앉아 있더라. 어떤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번에도 진술거부권 행사하실 거죠’라는 얘기를 우리 쪽에서할 정도였다.”




Q : 최씨가 민주특검이 아니네, 강압수사 한다는 식으로 소리친 적이 있었는데.

A : “오히려 우리가 무서워서라도 매번 변호사 배석한 상태에서 조사했다. 조사실 문도 열고, 여자수사관까지 배치했다. 나중에 딴소리할까봐 녹음하자고 했더니 녹음은 거부하더라. 변론권 침해 주장도 하던데 조서 작성할 때 변호사가 옆에 계속 앉아 있는데 무슨 침해를 어떻게 한다는 얘긴지…. 특검이 협박성 발언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어이없었다. 가령 티타임 때 사실 관계를 솔직히 털어놓으라는 정도의 설득이 있는 거지 진술 거부하는 사람에게 뭘 강요할 수 있었겠나. 최씨 변호인 주장은 같은 변호사로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Q : 최씨가 초반에는 특검 소환 거부하다가 후반부에는 계속 나오던데.

A :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핵심은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인데 이재용 부회장 영장 내용이 모두 오픈되면 방어논리를 만들고 증거인멸 시도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최씨나 대통령 측에서는 특검이 확보하고 있는 구체적 내용이나 범죄구성 논리 등을 최대한 알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쪽에서 뭘 갖고 있고, 또 무슨 내용을 궁금해 하는지 등 세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겠지. ”




Q : 최순실 씨는 어떤 사람인가?

A : “주변사람을 굉장히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로 보였다. 굉장히 강압적이고, 일방적인데다 다른 사람 얘기는 거의 안 듣고, 토를 못 달게 했다고 한다. 질문도 용납하지 않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더라.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고. 주변사람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웃음)


문체부 직원들, 자료 뽑아놓고 기다리기도


Q : 블랙리스트 수사가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이 나오던데 문체부직원들이 잘 협조했나?

A : “두 번의 압수수색 중 1차 때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차 압수 직후에 내부 제보가 들어왔다. ‘어디에 어떤 자료들이 있는데 지난번에 못 가져 가셨다’고 하더라. ‘어느 컴퓨터에는 이런 자료 있으니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구체적 제보도 들어왔다. 덕분에 2차 압수수색 때 정밀타격이 가능했다. 제보대로 딱 그 자리에 가보면 아예 자료 뽑아놓고 기다리고 있더라. (웃음) 내심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했던 것 아니었겠나.”




Q :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특검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나?

A : “정부를 불편하게 한다고 좌파척결이라는 명분을 들이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어 충격적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는 많이 했는데 혐의는 끝까지 부인했다. 사고방식이 20~30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해야 할까. 머리 좋은 분이 이런 행위가 과연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몰랐다면집에 있는 CCTV 다 지우고, 자료도 다 폐기하고 감출 이유가 없었겠지.”




“한 재벌 회장이 ‘왜 박영수 안 챙겼느냐’고 직원에게 명패 집어던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리더라. 박 특검은 대상이 누구든 국민만 보고 정면 돌파할 것으로 판단했다.”



Q :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인식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A : “김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오기 이전과 이후의 청와대는 달랐던 것 같다. 그 이전까지는 이 정도로 심하게 국정농단이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비서실장이 오고 난 이후, 특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국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강압적 방식들이 동원된 것 아니겠나. 이분은 어떤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해결하는 방식과 패턴, 술수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과거 초원복집 사건 때도 그렇지만 핵심 논란거리를 덮기 위해 도청 문제로 엎어치기 하지 않았나. 세계일보의 ‘십상시 문건’ 보도 때도 문건 유출 과정만 문제삼아 그걸로 되치기했고. 본질은 슬그머니 가리면서 곁가지를 크게 문제삼아 분위기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리는 데 아주 능숙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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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장시호 씨에게서 최순실 씨가 사용한 제2의 테블릿 PC를 넘겨받았다. 최씨의 국정농단 혐의를 입증해줄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이규철 특검보가 취재진 앞에서 테블릿 PC를 들어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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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자택 압수수색 때는 어땠나?

A : “증거인멸을 한 흔적이 확인됐다. 김 전 비서실장 직접 지시로 보안업체가 와서 CCTV를 다 지웠다더라. 또 집안 곳곳에 문서 자료를 파쇄한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수사팀이 보안업체 불러다 CCTV 복원한 뒤에 누가 출입했는지, 집 밖으로 증거물 빼돌린 정황이 어땠는지 확인하느라 몇 달 치 분량을 눈 빠지게 돌려봤다.”




Q : 정호성 전 비서관은 어느 정도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나?

A :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명확히 알고 있더라.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잘못에 대한 인식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처벌받는 걸 나름 당당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Q : 정 전 비서관은 후회하는 심정을 나타내지 않았단 얘긴가?

A : “그때 못하도록 말렸더라면, 대통령에게 더 조언을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정도였다.”




Q : 수사대상 중 장시호 씨의 입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A : “장시호는 수사 초반부터 ‘이모(최순실)가 왜 저렇게 (다 부인)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얘기할 건 시원하게 하고 선처를 구해야지 계속 부인만하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입장이었다. 기억력이 좋고 머리가 참 영리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상황이 수습될지 나름대로 스탠스를 잡고 수사에 협조했다.”




Q : 조사받다 먹고 싶은 것 사달라던 장시호캐릭터가 독특한 것 같다.

A : “특검에 나오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 장시호는 조사받다가도 뭐가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수사 협조 잘하는데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뭔들 못 구해주겠나. 성격이 쿨한 데다가 솔직했다. ‘안(교도소)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오는 게 편하니까 자주 불러달라는 얘기까지 했다.”(웃음)




Q : 장시호 씨가 최씨 소유의 또 다른 태블릿 PC를 제출하는 등 수사협조로 ‘복덩이’로 불렸다고 들었다.

A : “처음부터 순순히 내놓은 건 아니다. 특검이 다 확인한 후 시인하고 협조한 거다. 삼성동 쪽에 최순실 씨가 독일에 가기 전 머물렀던 마지막 주거지가 있었다. 특검팀이 그곳을 탐문하면서 주변 CCTV를 확보했다. 영상 속에서 장시호 등 여러 사람이 박스에 물건들을 담고 옮기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 과정에서 장시호를 추궁했더니 태블릿 PC의 존재를 솔직하게털어놓았다.”


“이런 판이 벌어졌는데 내게 칼이 주어지면, 그 칼 휘둘러야지. 만약 칼을 못 잡는다면 그건 더 이상 칼잡이가 아니지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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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성격의 장시호 씨는 혐의를 무조건 부인하는 최순실 씨의 태도를 보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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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장시호 씨는 자신의 진술이 최순실에게는 배신으로 비치는 데 대한 부담이 없었을까?

A : “배신이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최씨가 무작정 부인하고 입 다물고 있는 데 대해 답답해 했다. 그리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련해 모든 책임을 장씨 자신에게 돌려버리자 황당해 하고 반감도 가졌던 것 같다. 자신이 결심하고 얘기한 부분에 대해 뒤돌아보거나 가슴 아파하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냉정하게 판단하더라.”




Q : JTBC가 입수한 최씨 테블릿 PC를 놓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조작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A : “디지털포렌식을 해 보면 테블릿 PC에 누군가 나중에 어떤 파일을 일부러 옮겨 넣었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 조작이 된 것인지 다 분석된다. 조작해도 감출 수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작성자가 누군지, 누가 사용했는지, 장소는 어디인지까지 다 나오기 때문에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장난질을 할 수가 없다. 테블릿 PC 조작설,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떼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Q : 최순실 씨 재산 추적도 했는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A : “차명재산 부분까지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됐는데, 한계가 있었다. 특별법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가령 1970~80년대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돈의 흐름을 추적하려면 금감원, 국세청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두 기관에서는 영장을 요구했다. 너무 오래돼 공소시효도 지났고, 땅 거래 자체만 갖고 범죄로 엮을 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영장을 받겠나. 특검법에 보면 특별검사는 직무 수행에 있어 필요한 경우관계 기관으로부터 자료제출과 수사활동 지원 등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장을 이유로 기관 협조가 되지 않더라. 의심스럽거나 불법적인 거래로 판단돼 추적을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돈 흐름을 파악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Q : 특검 내부 얘기를 들려달라. 박영수 변호사가 특검 제안을 받고고민을 많이 하던가?

A : “특검법 발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을 때였는데 하루는 ‘특검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내게 묻더라. ‘특검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으셔야죠’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Q : ‘운명으로 생각했다’는 말인가?

A : “‘이런 판이 벌어졌는데 내게 칼이 주어지면, 그 칼 휘둘러야지. 만약 칼을 못 잡는다면 그건 더 이상 칼잡이가 아니지’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칼 못 잡으면 칼잡이가 아니지”


Q : 정치권 일각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윤석열 검사 영입을 밀어붙였는데.

A : “그때도 박 특검께서 ‘나는 윤석열을 데려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말씀드렸다. ‘데려다 놓으면 수사 잘할 것이고, 정도를 걷는 검사인지 아닌지를 수사 결과로 보여주면 명예회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박 특검님 생각이었다.”




Q : 평소 윤 검사를 많이 아꼈던 모양이다.

A : “‘윤석열이가 진보인사도 아니고 소신 있게 수사 잘하는 친군데, 국정원 댓글사건 이후 계속 좌천돼 고검 전전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하시더라. 현 정부에서 좌천당한 사람에게 대통령 관련 수사를 맡기면 보복 수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오히려 박 특검은 ‘특검이 정권 눈치나 보고 제대로 수사 못하면 그게 더 문제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Q : 이 변호사는 특검 참여 제안받고 망설이지는 않았나?

A : “박 특검과 6년 넘게 같이 일해오다 보니 이분 스타일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눈빛만으로도 ‘특검 준비되면 들어오라는 말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사건 수임 더 안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Q : 가까이서 지켜본 박 특검은 어떤 사람인가?

A :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는 분이고 존경할 만하다. 몇 년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업이사 시절, 변협 내에 지자체 세금낭비조사위원회를 기획해 일한 적이 있었다. 내가 쓴 보고서를 보고 빨간 펜으로 그어가며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분이다. 혼이 난 적도 있는데 꼼꼼하게 일 챙기는 스타일, 후배 배려하는 모습 등을 보면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Q : 과거 특검처럼 흐지부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했나?

A : “박영수 특검만은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조직 장악력, 수사의지, 풍부한 특수수사 경험 등 이만한 분이 없다고판단했다. 작심하고 칼을 빼면 큰 성과를 낼 것이라는 예상도 했고.”




Q : 파견 검사는 어떻게 뽑았나?

A : “윤석열 팀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 윤 팀장과 특검보들 의견이 반영됐다. 현직 검사들 중에서 참여를 희망했던 분이 매우 많았던 것으로 안다. 특수수사 하는 칼잡이라면 누구나 큰 사건 수사를 해 보고 싶어하지 않겠나. 특검 지지 여론도 높았고 검찰이 수사를 많이 해놓은 상태여서 수사환경이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희망자가 많아 가려내는 작업이 꽤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




Q : 따로 인선 기준이 있었나?

A : “박 특검께서 세 가지 기준을 말씀하셨는데 첫째가 성격 모나지 않고 인화할 수 있는 인사, 둘째는 수사보안 잘 지킬 수 있는 입이 무거운 인사, 마지막으로 특검 성과를 발판삼아 뭔가 딴짓할 인사는 배제한다는 원칙이었다. 특별수사관 역시 이런 기준에 맞춰 수사지원단 어방용 단장과 상의해서 뽑았다. 평판과 형사사건 경험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두루 고려했다.”




Q : 윤석열 수사팀장은 특검보 신분이 아닌데 어떤 역할을 했나.

A : “파견 검사 전체를 총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팀 간 커뮤니케이션이 안되거나 혹은 내부 정보가 친정(검찰조직)으로 흘러 들어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없도록 윤 팀장이 검사들을 딱 틀어쥐고 맏형 역할을 하면서 수사를 독려했다.”


응원 댓글 보고 울컥해 잠 못 들기도
중앙일보

국민의 지지 여론은 특검에 큰 힘이 됐다. 특검 사무실에 화환이 배달됐고,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격려의 글을 적어 붙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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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90일 동안 팀원들끼리 가끔 술 마시실 기회는 없었나?

A : “박 특검이 금주령을 내려 술 먹는 일은 없었다. 박 특검 자신도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한 번은 박 특검, 특검보, 수사관 몇 명이 삼겹살을 먹은 적이 있는데 속으로 소주 한잔 생각은 간절했지만 딱 식사만 하고 끝났다. 그 자리에서 누구 한 사람 소주 한잔만 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웃음)




Q : 수사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박 특검에게 접촉 시도는 없었나?

A : “아예 사용하던 휴대폰을 착신정지해 놓았다. 내부용으로똑딱이 휴대폰 하나를 따로 개통해 사용하셨다. 그마저도 전화기 꺼놓을 때가 많았다. 기업이나 정치권, 법조계 인맥들이 많아 여기저기 고공에서 박 특검과 어떻게든 통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겠나. 이것저것 물어보면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전화를 꺼 놓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빗거리가 될 만한 것이 없도록 다 차단하면서 지냈다.”




Q : 특검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실감했나?

A : “응원차 직접 찾아오시는 분도 많았다. 편지나 선물, 꽃다발도 적잖이 왔고. 책을 사서 보내거나 직접 만든 양초, 떡 같은 먹을거리를 보내주신 분도 있더라. 다 반송조치를 해야 하는데 주소 불명이거나 보내온 쪽에서 거부를 하면 난감할 때도 있었다. 간혹 만능 특검이라고 여겼는지 본인들 억울한 사연 해결해달라는 진정서도 날아왔다. 그만큼 특검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으로 생각한다.”(웃음)




Q :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A : “부모와 아이가 손잡고 와 인증 샷도 찍고 포스트잇에 글귀 남기고 가는 분들이 많았다. 아이한테 교육적 차원에서 설명도 하는 장면이 참 인상 깊더라. 특검 관련 기사 밑에 달린 응원 댓글들 읽으면서 울컥 북받쳐 잠이 안 올 때도 여러 번 있었다.”




Q : 수사 끝나고 전체 회식을 했다던데.

A : “수사기간 통틀어서 전체회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00명 넘게 모였는데, 특검팀원부터 청소아주머니, 엘리베이터 잡아주시고 하던 방호원, 용역직원들까지 다 참석했다. 회식장소도 보안사항이었다. (웃음) 식사하면서 처음으로 박특검이 따라주는 소주를 다들 한 잔씩 받았다.”




Q : 수사 끝난 직후 박 특검이 특별히 한 얘기가 있나?

A : “해단식 하는 날 박 특검님이 ‘여러분~’하더니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더라. 목이 메고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고 참석자 모두 눈물이 핑 돌았다. 박 특검이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더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딱 이렇게 얘기하고 끝났다. ”




Q :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한 말씀.

A : “이번 특검을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백서를 검토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국민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언론보도 내용을 참고해 수사에 활용한 부분도 많았는데 언론에도 감사 드린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대한민국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글·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신승민 인턴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고성표,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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