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탄핵심판의 날]헌재 탄핵심판 선고문 낭독 어떻게… 2004년 노무현 대통령때와 비교해보니
2004년 탄핵 기각에 “국민께 죄송”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 직후 당시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당 운영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동아일보DB |
2004년 5월 14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9명의 재판관이 들어서자 장내는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오전 10시 3분, 윤영철 당시 헌재 소장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시작한다”고 선언한 뒤 결정문을 읽었다.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압력을 행사했고 … 선관위의 위법 결정을 폄하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리인단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윤 소장이 20분간 탄핵 사유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낭독하는 동안 심판정의 긴장은 고조됐다. 윤 소장이 “이제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히자 주선회 당시 주심 재판관은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셨다. 이때가 오전 10시 23분. “파면에 필요한 재판관 수(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해 청구를 기각한다.”
63일간 정지됐던 노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권한을 회복한 순간이었다. 9명의 재판관이 대심판정을 빠져나간 시각은 오전 10시 28분이었다.
○ 심판정 소란 우려…마지막에 결론 밝혀
13년의 시차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11시 헌재의 결정 앞에 선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는 3개였던 반면 박 대통령의 경우 13개에 달한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문제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뇌물수수,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 국정 농단 사건 전반에 걸쳐 있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문 낭독 시간이 2004년 탄핵심판 때보다 3배가량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판관들은 이날 선고 직전 최종 평의를 열고 박 대통령 파면 여부에 대한 최종 표결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반 ‘몇 대 몇’의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반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재판관들은 선고 전날 평의를 열어 최종 표결을 했다. 결정 이유를 모두 읽은 뒤 마지막에 탄핵 인용 또는 기각을 밝히는 주문을 낭독하기로 한 것도 이 자리에서 정해졌다. 통상 다른 사건 심판에서 주문을 먼저 공개한 뒤 그 이유를 밝히는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심판정 안팎이 소란스러워져 결정 이유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부도 2004년 때와 같이 최종 결론을 후반에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당시 재판부는 소수 의견 공개 여부를 놓고 선고 전날까지 논의를 한 끝에 비공개를 결정했다. 주선회 주심 재판관은 선고 뒤 ‘찬반 숫자를 알려 달라’는 질문에 “죽을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재판관들끼리 약속했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관들 의견이 ‘6(기각) 대 3(인용)’으로 갈렸다는 추측은 제기됐지만 실제 표결 결과가 공식 확인된 적은 없다. 하지만 2005년 헌재법 개정으로 재판관들이 각자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게 돼 10일 선고에서는 이정미 권한대행이 각 재판관의 의견을 일일이 밝히게 된다.
○ 박 대통령 2004년 기각에 “국민 여러분께 죄송”
헌재의 결정에 정치적 명운이 달린 박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나온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대통령 탄핵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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