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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출판노트] 송인서적 부도에 충격의 출판계… 재기 할 수 있게 용기 북돋워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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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 피렌체에 간 적이 있다. 잡지 에디터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젊은 여자가 홀로 해외 여행을 한다는 것은 꽤나 용기를 필요로 했다. ‘잡지와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줄까’, ‘내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목적지인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는 도시 전부가 하나의 예술 공간이다. 전 세계인들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에게서 영감을 얻기 위해 피렌체로 향하곤 한다. 피렌체는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이 15∼17세기 약 300년간 통치하며 문화예술을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다. 금융업으로 엄청난 재력을 쌓은 메디치가는 권력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전쟁 대신 아낌없이 서적 출판을 지원하고 예술가를 후원했으며 예술의 가치를 인정했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이었다. 오늘날 문화도시 피렌체의 명성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이야기를 바꿔 우리를 들여다본다. 2017년 출판계는 대형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로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20년 전에 이어 두 번째 도산한 송인서적은 59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문방구 어음으로 결제하는 구식 시스템을 이어왔다. 창고엔 먼지를 뒤집어쓴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라 한편에선 블랙리스트 소동이 벌어지면서 문화와 창조의 기반인 출판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책 한 권이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복잡하다.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업자, 영업자, 서점인, 사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책 속엔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 책을 읽는 독자의 생각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송인서적의 부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책의 미래를 내다본다. 송인서적 사태는 결국 낙후된 국내 출판유통의 문제다. 출판경영의 선진화를 슬기롭게 잘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은 딴 데 없다. 실의에 빠진 출판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자. 돈을 쏟아부어 예술과 학문의 꽃을 피운 메디치 가문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책 문화를 꽃피울 자질과 능력은 우리에게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출판저널 창간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출판의 미래를 희망한다.

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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