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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고]촛불민심과 개헌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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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으니 조만간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개헌이며 지금이 적기인지, 개헌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된다. 개헌 시기를 놓고 대선주자들 의견은 갈린다. 개혁 열망을 이끈 촛불민심이 당장 개헌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을 구성하는 원리를 담는 최고법이다. 국가권력인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생각해 보자.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라고 국회에 입법권이라는 권력을 준 것이고 민복을 위한 복지행정을 펼치라고 행정부에 행정권력을 준 것이다. 또 법관이 공정하게 재판해서 국민 권익을 지켜주라고 준 권력이 사법권력이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수단일 뿐이다. 개헌은 권력을 어느 기관이 어떻게 행사하게 하느냐는 정부의 형태보다 기본권을 어떻게 더 잘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래서 개헌 논의의 핵심은 기본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개헌 논의의 추는 권력 형태에 기울어져 있다. 미래지향적, 지방분권과 통일을 향한 기본권 중심적 개헌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기본권 논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기본권은 국민의 복지, 생업이 걸린 직업의 자유 등 민생과 직결된다. 여러 영역에 걸쳐 있고 국민의 입장도 다양할 수 있어서 충분한 민의 수렴이 전제되어야 한다. 재정을 어디에 우선 분배할지, 기본소득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같은 문제는 녹록지 않다.

국회는 국민이 진정 어떤 개헌을 원하는지 공감대를 우선 형성해야 한다. 충분한 현실진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개헌특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논의했는지 모른 채 갑자기 개헌안을 접하게 될 것이다. 국회 본회의 통과가 순탄할지 모를 일이지만, 의결돼도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서 가결될지 의문이 든다.

기본권이 걸린 현안은 개헌만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미디어법 및 노동관계법 개정, 선거연령 18세 인하 등 선거법 개정,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법 개정 등은 당장 국회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면 할 수 있다. 개헌해도 헌법은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시행하려면 어차피 법률이 있어야 한다.

국회는 이 문제도 여야 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국정농단도 현행 법을 위반한 것이지 개헌만으로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

개헌보다 중요한 것은 법치의 실현이다. 정부 형태도 그렇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토론·설득·조정·타협이라는 의회주의의 성숙함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개헌특위에서는 들리는 얘기로는 분권형으로 간다고 한다. 이는 혼합정부(소위 이원정부)제다. 여소야대일 때 대통령이 속한 정파와 총리 내각이 속한 정파가 다른 이른바 동거정부가 나타나면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원정부제를 시행한 프랑스는 성숙한 의회주의로 잘 꾸려갔다고 평가된다. 과연 한국의 정치행태가 그러했는지?

개헌 여부를 떠나 국민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려면 침해된 기본권을 구제해주는 ‘보루’, 재판이 제대로 돼야 한다.

탄핵심판 선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국민들은 불안하다. 지금은 탄핵정국으로 불안한 국민들의 분열을 막고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급선무다. 연후에 차분히 시간을 두고 진정한 의미의 개헌을 이루는 것이 정도다.

지난겨울 추위 속에서도 촛불민심은 외쳤다.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참에 진정한 개혁이 되면 한국의 장래는 더 밝을 것이다. 한국을 발전으로 이끌고 국민의 옷인 헌법이 포근해지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정재황 세계헌법학회 부회장·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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