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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여적]오스카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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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별들의 잔치’였다. 높이 34.5㎝, 무게 3.4㎏의 황금빛 남성 나상(裸像)인 오스카가 전 세계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하지만 백인 위주로 수상후보작을 선정하면서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인종차별의 장(場)’이 됐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89년간 영화인들에게 수여된 2900여개 오스카 트로피 중에서 흑인이 가져간 것은 30여개에 불과하다.

1964년 <들백합>에서 열연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53년간 아카데미는 단 7명의 흑인 남성 배우에게만 수상을 허락했다. 흑인 여우주연상은 2002년 <몬스터 볼>에서 열연한 핼리 베리가 유일하다. 흑인 영화인들이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할만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백합처럼 흰 오스카를 지지할 수 없다”며 시상식 불참을 선언한 영화인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올해 시상식에선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배우가 남녀 조연상을 받으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문라이트>에 출연한 마허샬라 알리가 남우조연상,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화이트 시상식’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풍자와 비판이 이어졌다. 반(反)이민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가슴에 파란리본을 단 영화인들도 적지 않았다. 시상식 사회자 지미 키멜은 “현재 국가가 분열돼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덕택에 인종차별 얘기는 이제 안 나올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또 트럼프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비난한 것에 빗대 “CNN이나 뉴욕 타임스 기자가 있는가? 나는 가짜 뉴스를 싫어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극우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정치에 집중해 (시상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스카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작품상이 <문라이트>가 아닌 <라라 랜드>로 잘못 발표된 것은 영화인들이 본업보다는 정치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참으로 오지랖 넓은 대통령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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