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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사설]3·1절 98년에도 이루지 못한 선열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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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98돌을 맞았지만 선열들 앞에 우리는 한없이 부끄럽다. 일제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대 강국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치 중이다. 남북은 분단됐고, 70년이 지나도록 소모적인 긴장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전 세계가 냉전을 끝낸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현장으로 남아 있다. 남북이 상생과 호혜의 정신으로 분단사에 종지부를 찍기를 염원하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일본은 과거사 반성은커녕 가해국으로서 책임을 외면하고 갈등만 키우고 있다. 과거 범죄행위에 대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고 한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 시대를 열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분명히 묻고 동아시아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실제는 거꾸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를 외면한 채 굴욕적으로 이루어진 한·일 합의는 국익을 손상하고 시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지난 25년간 진정한 사과를 요구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은 일본 정부가 범죄행위에 대한 직접적,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국가배상을 하는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선열들은 한 세기 전 3·1운동으로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해 일제의 폭압과 맞섰다. 대한민국은 자주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선포한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는 순국선열들의 피땀 어린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일 잔재의 완전한 청산 등 과거사 정리를 통해 ‘악의 유산’을 쓸어내지 못했다. 해방 이후 구체제를 말끔히 청산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존(自尊)을 높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지배하는 역사의 왜곡에 짓눌려 살고 있다.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구체제 유지를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어둡고 긴 터널에 있다. 선열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국정농단이라는 유례없는 역경을 겪고 있다. 그 어이없는 파문은 가뜩이나 갈 길 바쁜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맹목적인 반공과 냉전논리,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념으로 뭉친 수구·부패세력은 아직도 역사의 물꼬를 수십년 전으로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3·1운동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한민족 최대의 민족운동이었다. 그때 들고나온 태극기가 지금 독립된 나라에서 탄핵반대 운동의 상징으로 둔갑했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훼손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세력을 옹호하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건 국기(國旗)모독이다. 광복회는 28일 “태극기를 시위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탄핵반대 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역사적인 3·1절에 성조기를 들고나올 계획이라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선열들이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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