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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the300 레터]3·1절 태극기게양 망설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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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태극기 수난시대Ⅱ]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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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보수였어요?" 함께 여당 출입을 하고 있는 동료 기자가 물었다. 영문도 모른 채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그 기자는 말없이 기자실 내 자리 한 켠에 꽂아둔 태극기를 가리켰다. 최근 한 집회 취재 때 참석자가 손에 쥐어준 태극기였다. 내가 보수주의자여서 태극기를 꽂아둔 것인지 기자들 사이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참을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태극기를 소중히 해야한다고 배웠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태극기를 훼손해서는 안 되며 태극기가 훼손됐을 때에는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어 버려야 한다'고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 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지난 11일 태극기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가 집회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보도를 접한 이후 집회 취재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맞을까봐 태극기를 소중히 다룬 것은 아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저 아무렇게나 버릴 수가 없어 꽂아둔 태극기는 내 정치색을 그렇게 규정했다.

태극기는 어느새 특정 정치세력의 상징이 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주말마다 집회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스스로를 '태극기 집회' 또는 '태극기 부대'라고 칭한 후부터 태극기는 한 세력의 상징이 됐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흘러가자 이에 반발하는 세력도 등장했다. 지난 18일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봉사단체 '노란리본공장속'는 태극기에 노란리본을 달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시민에게 나눠준 노혜경 시인은 "태극기는 결코 박사모나 기타 수구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태극기는 나라의 국격이고 자존심"이라며 "지금처럼 태극기가 곤욕을 치른 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극기가 특정집단의 상징으로 쓰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는 폭주족들이 3·1절, 광복절만 되면 태극기로 두건을 만들어 머리에 쓰거나 망토처럼 두른 뒤 온 거리를 질주했다. 그 때도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태극기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3·1절을 맞아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 마저 올해는 유독 부담스럽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탄핵 기각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춰질까봐서란다. 그야말로 태극기 수난시대다.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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