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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핵에 가렸던 ‘북 화학무기’ 국제 이슈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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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X 계기 국제사회 대응 주목…내달 예정 북·미 대화 무산

유엔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일종으로 규정한 신경작용제 VX가 김정남 피살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북한이 보유한 화학무기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화학무기는 그동안 핵무기 개발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198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위협이다. 북한은 화학무기에 대한 국제통제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로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화학무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가 된 것은 19세기 이후다. 화학공업이 발전하면서 치명적 독성물질이 계속 발견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했다.

화학무기는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나 비정규전에 효과적인 전술 무기로 간주돼 왔으나 VX와 같은 신경작용제가 등장하고 미사일 기술이 개발되면서 전략무기로 발전했다. 저렴한 제조 비용에 비해 살상능력이 매우 뛰어나 ‘빈자(貧者)의 핵무기’로 불린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해왔기 때문에 화학무기 분야에서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방백서에는 북한이 2500~5000t의 화학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의 군축 관련 비영리단체인 핵위협방지구상(NTI)은 북한의 화학무기 제조 능력을 최대 1만2000t으로 평가하면서 VX와 사린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의 화학무기가 특별히 국제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하지 않은 6개국 중 하나라는 점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1차 세계대전을 통해 화학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한 뒤 이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 자치지역에 화학무기를 살포해 5000여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중동지역에서 화학무기 사용 우려가 높아지면서 1997년 화학무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CWC가 탄생했다.

CWC는 세계 군축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평등 협정’이다. 화학무기 및 생산시설을 폐기하거나 평화적 목적의 시설로 전환하도록 하는 동일한 의무를 모든 가입국에 부과하고 있으며 강력한 사찰·검증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 협약에 가입한 190개국은 규정에 따라 화학무기 폐기 작업에 착수했으며 현재 이들이 보유한 화학무기의 80% 이상이 폐기된 상태다.

하지만 북한은 이스라엘·이집트·미얀마·앙골라·남수단 등과 함께 CWC 미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현재 가장 많은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가 국제통제 시스템 밖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생물무기협약(BWC)에는 가입했으면서도 CWC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CWC의 강제 사찰 기능 때문일 것”이라면서 “CWC 미가입은 북한이 화학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김정남 살해에 VX가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 및 확산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핵무기에 대한 우려와는 별도로 북한의 화학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음달 1~2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에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 등 북한 대표단이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가 이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함으로써 대화가 무산됐다고 지난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남) 암살에 VX가 쓰였다는 말레이시아의 발표가 비자 발급 거부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보도했다.

<유신모 기자·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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