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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기술혁신 뒤쫓는 것보다 어떻게 공존할지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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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인터뷰] 마틴 포드, 한국을 말하다

“인공지능의 제조기업 적용과

노사정 등 사회적 합의가 관건

잘못하면 불평등 악화된다”

“디스토피아 도래 막기 위해선

범죄방지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살상무기 금지해야”



한겨레

<로봇의 부상>을 쓴 기술비평가 마틴 포드는 인터뷰에서 한국이 인공지능 등 핵심기술의 제조업 적용과 불평등 확대로 인한 정치적 격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틴 포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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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나이 든 목수인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이 나빠져 실직하게 된다. 그는 정부로부터 의료비와 실업수당 등을 받으려 하지만 낯선 서류 양식과 경직된 관료제의 미궁 속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그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제출 서류만을 압박하는 수당 담당 여직원의 뻣뻣한 태도는 불합리한 영국 관료 시스템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발전하는 자동화 기술은 조만간 이런 문제의 싹을 잘라 버릴지 모른다. 영국 싱크탱크 ‘리폼’은 지난 6일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향후 15년 동안 영국 공무원 25만명을 대체하리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영국 정부는 매년 40억파운드(약 5조6천억원)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수당 담당 직원도 직업을 잃고, 인공지능 수당 담당 로봇 앞에서 다니엘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미래가 가져올 빛과 어둠이다.

한국이 부닥친 두 가지 문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고 있는 이런 기술혁신의 고향이 미국 실리콘밸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 등 한 손에 꼽히는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디지털 혁신과 파괴의 선봉에 서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지 오래다. 하지만 혁신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서 25년 일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창업자이자 저명한 기술비평가가 의문을 제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도 출간된 <로봇의 부상>을 쓴 마틴 포드가 그 주인공이다.

피할 수 없는 자동화의 빠른 진전에 대한 분석과 궁극적인 해법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책 <로봇의 부상>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매킨지에 의해 2015년 ‘올해의 경영서적’으로 뽑히며 기술혁신의 어두운 면을 경고한 탁월한 서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1일까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마틴 포드에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현명하게 맞이하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실리콘밸리 따라하기보다 (노사정의) 사회적 계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늘 인간의 일을 대체해왔다. 문제는 얼마나 짧은 시간에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느냐다. 우리는 그런 대대적인 기계 대체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가?

“그렇다. 전례 없는 파괴적 혁신으로 매우 광범위한 일자리가 위험에 처했다. 핵심기술은 인공지능이다. 한국 사람들은 인공지능 알파고 대 바둑 최고수 이세돌의 대결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다. 궁극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의 직업이 일정 수준 이상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변화의 시대를 맞아 대체로 실리콘밸리가 선도한 혁신을 뒤쫓는 ‘4차 산업혁명’ 정책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리콘밸리가 전세계가 흉내를 내고 싶을 만큼 특별한 장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혁신은 어디에서 처음 시작됐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현대의 기술은 어차피 빠르게 전파되니까. 더 중요한 질문은 ‘각 나라가 이 혁신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다. 즉, 각자 상황에 맞게 잘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어떻게 인공지능과 로봇의 중요한 발전을 나라의 경제적 척추인 제조기업들에 적용할 것인가? 둘째, 이 과정에서 노동자, 고용자, 정부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도출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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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내놓을 무인 수퍼마켓 ‘아마존고’의 홍보물. 인공지능으로 운영되는 매장이 확산되면 수백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아마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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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종이 먼저 영향을 받겠는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우선 제조업이 더욱 자동화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비스업종, 특히 패스트푸드나 판매점도 비슷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역시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보를 다루는 직종에 있는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자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향후 20~30년 동안 어떤 일이 펼쳐지리라고 보는가?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의 부상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는 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능력에 비해 하향 취업하는 이들)를 늘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높일 것이다. 이는 정치적 격변과 일부 시민 저항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그 전조다. 기술 발전은 경제적으로 많은 이들을 뒤처지게 만들었다. 다수는 불평등의 원인으로 세계화를 지목하는데, 나는 기술 발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본다. 우리가 적절한 대책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더 극단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누구 탓하기보다 공동 해결책을”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교육과 직업훈련 서비스를 받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각자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또 실업수당이나 의료보험 같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가 하나씩 마련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그 경우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급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아직 주류학계의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점차 주목을 끌고 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기본소득 실험을 이미 진행 중이다.”

-그밖에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인공지능과 로봇의 군사 분야 사용은 각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화학무기가 금지됐듯이 인공지능 무기도 금지해야 한다. 프라이버시도 중요한 문제다. 중국 정부는 어떤 사람이 범죄 가능성이 큰지 분석하는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했다. 정부가 이런 기술을 점점 더 많이 도입한다면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의 도래다.”

-우리나라에 별도로 조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노사정 등 사회 각계의 조용하고 솔직한 토론이다. 미국에선 이 문제를 둘러싸고 추한 정치적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일을 피했으면 한다. 대화의 초점이 (자동화 기술의 폐해가) “누구 탓인가”보다 어떻게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적절한 사회적 도입을 병행할 수 있는가로 맞춰져야 한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틴 포드는 누구?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 ‘솔루션-소프트’ 창업자로 25년 경력의 개발자다. 2015년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경영)으로 뽑힌 <로봇의 부상>을 쓰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고 과도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미래학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터널 속의 빛>(2009)을 포함해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뉴욕 타임스>, <가디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워싱턴 포스트> 등에 칼럼을 썼다. 이를 통해 그는 자본주의와 기술의 진보를 믿지만,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경제 시스템이 적응하기 위해선 미국 사회에 아직 생소한 ‘기본소득’ 같은 해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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