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성 독가스인 VX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52년 영국의 화학자 라나지트 고시 등은 인산화염 살충제를 연구하다가 진드기 살충에 효과적인 물질을 찾아냈다. 곧 출시됐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3년 만에 중단했다. 그러나 이 물질을 눈여겨보는 쪽이 있었다. 영국군이었다. 생화학무기로 거듭난 물질은 ‘VX’라는 암호명을 얻었다. 사담 후세인은 훗날 유엔무기사찰단에 “이라크도 한때 VX 개발계획을 세웠지만 생산에는 실패했다”고 증언했다. 이라크를 침공한 다국적군은 이라크 내 VX 생산시설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VX가 1994년 12월12일 전쟁터가 아닌 엉뚱한 곳, 즉 일본 오사카의 백주 대로에서 테러용으로 쓰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옴진리교 사건이다. 사교집단인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경찰 스파이’라고 지목한 28살의 회사원이 희생자였다. 아사하라의 사주를 받은 일당 4명은 출근하고 있던 회사원의 뒤통수에 ‘VX’ 가스를 뿌렸다. 쓰러진 회사원은 10일 만에 사망했다. VX가 개발된 후 42년 만에 발생한 세계 첫 번째 독살사건이다. 일본경찰도 처음엔 감쪽같이 속았지만 옴진리교가 자행한 일련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피살된 김정남의 얼굴에서 VX 성분을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단 10㎎만 피부에 닿아도 치명적이라는 VX를 어떻게 감쪽같이 뿌릴 수 있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