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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요즘은 주인이 개에 맞춰 살아요, 펫 인테리어 주택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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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건축, 세계적 트렌드

국내에도 '반려견 전용 주택' 등장

전용 수영장에 온돌 대신 벽난로 인테리어

중앙일보

2012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개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Dogs)' 전시장에서 반려견과 함께 온 관람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개를 위한 건축'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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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MUJI’ 디자이너 하라 겐야를 비롯한 전 세계 스타 건축가들이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Dogs)’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네덜란드 건축그룹 ‘MVRDV’와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쓰요 등이 참여한 이 전시는 다양한 품종의 개를 건축주로 설정한 후 개를 위한 집이나 가구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반려견이 공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내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일본 도쿄, 2014년 중국 쓰촨(四川), 2015년 상하이(上海) 등 세계 곳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 건축가들이 반려동물을 위한 건축을 고민하고 이들의 전시가 전 세계를 순회하며 호응을 얻는 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주거공간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내 반려동물 산업 규모가 5조원(2018년 추정치)으로 성장한 지금, 반려견에게 먹일 것과 입힐 것에만 신경쓰던 개 주인들은 이제 내가 사는 공간까지 기꺼이 바꾸며 ‘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개를 위한 집, 구조가 다르다
안양의 한 빌라에서 반려견 여섯 마리와 살고 있는 애견미용사 강은영(34)씨는 2017년 3월 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으로 이사한다.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외진 지역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반려견 전용 주택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집들은 처음부터 반려견의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고려해 집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내 공용시설도 모두 반려견에게 맞췄다. 국내에선 ‘개를 위한 건축’이 본격화한 첫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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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주택 연구소가 시공 중에 있는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반려견 주택 외관.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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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던 중 이 단지에 대해 알게 됐다. 방음벽, 미끄럼 방지 바닥 코팅 등을 갖춘 데다 견종에 따라 필요한 인테리어 요소를 주문 제작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반려견과 함께 살지만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던 많은 문제를 건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입주를 결심했다.

2016년 11월 분양을 시작한 이 단지의 21가구 중 15가구는 주인을 찾았다. 단지 내 주택들은 외관은 통일성 있지만 내부 구조는 천차만별이다. 가령 래브라도 레트리버인 ‘봉숙이’네 집은 전기 콘센트가 바닥 가까이 붙어 있지 않고 허리 높이로 껑충 위에 있다. 봉숙이가 이빨로 전선을 물어뜯거나 코드를 뽑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올려 작업한 거다. 또 봉숙이가 집 안 어디에 있어도 견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거실과 안방 사이에 투시창도 설치했다. 체구가 작은 말티즈 ‘폴리’ 집에는 펫 도어(개구멍)가 있다. 화장실 문 아래쪽에 작은 사각 구멍을 내서 폴리가 밀어서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폴리는 화장실 문이 닫혀 있을 때에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볼일을 볼 수 있게 됐다. 영역표시 욕구가 강한 수컷을 키우는 집은 벽지가 얼룩지거나 뜯기지 않도록 나무 요벽을 덧대기도 한다. 장작을 때는 벽난로를 설치하는 집도 많은데, 이는 온돌 바닥으로 인한 화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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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전용 주택단지의 집들은 대부분 벽난로를 설치해 대류난방을 한다. 피부로 열을 발산하지 못하는 개들이 온돌 바닥에 장시간 누워 있다 보면 체내 열기를 배출하지 못해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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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반려견 생활이 편해질 거라는 기대 외에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거란 생각에 설레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개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하는 이웃들이 있어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일부는 개가 짖는다고 우리집 문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질러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전용 단지를 기획한 박준영 반려견주택연구소장은 “단지를 형성하면 위급할 떄 서로 어렵지 않게 돌봄 품앗이를 해줄 수 있어 부담이 크게 덜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부 산책로와 주택만 지어진 상태로, 올 5월이면 20만㎡(6만 평)에 달하는 부지 안 2.4km 길이의 산책로 군데군데에 배변봉투함이 놓일 예정이다. 반려견 전용 수영장은 이미 완공됐다. 단지는 입주자만 출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택배 벨소리에 놀라는 반려견을 위해 택배기사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택배함에 물건을 두고 가는 방식을 택했다.

반려견을 위한 이색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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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이 전선을 물어 뜯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콘센트 위치를 높였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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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과 거실 사이에 창을 내 반려견과 주인이 어디에 있든 서로를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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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가 얼룩지거나 뜯기지 않도록 나무 요벽을 덧댔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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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후 집에 들어가기 전 여기서 반려견 발을 씻기면 현관을 청소할 필요가 없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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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문을 여느라 손이 부족할 때 리드후크에 개 목줄을 걸어두면 반려견이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다. 우상조 기자




'나는 개 집에 산다'
개를 위한 건축이 사업화한 사례는 반려견 전용 주택단지가 처음이지만 펫인테리어에 대한 욕구는 그 이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개박사’로 알려진 이웅종 천안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는 그대로 주인의 소비 패턴에 반영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마당에 개집을 지어주고 쇠사슬로 묶어 기르던 존재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가족이 됐고, 이젠 개를 위한 방을 따로 마련하는 집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면서 “개가 쓰는 물건이나 가구를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여기고 심사숙고해 구매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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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디자인팀 ‘아틀리에 바우와우’가 ‘개를 위한 건축’ 전시에 출품한 가구. 다리가 짧은 견종인 닥스훈트가 주인과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진 '개를 위한 건축'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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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아도 반려견이 원하는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주는 펫도어.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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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관련 상품 수요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의 박현진 반려동물 담당 MD는 “예전에는 주로 사료ㆍ간식 위주로 팔렸다면 최근 몇년 사이 인테리어 제품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견이 소파나 침대에 쉽게 오르도록 돕는 펫계단의 매출은 2016년 전년 대비 88%, 2017년 두 달 동안 전년 동기간 대비 91%가 늘었다. 방문에 설치하는 펫도어 매출은 각 기간 106%, 212% 증가했다. 내가 사는 공간, 내가 쓰는 가구에 변형을 가하더라도 반려동물의 편의를 지켜주려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다.

베들링턴테리어와 웰시코기 등 반려견 여섯 마리를 키우는 엔지니어 김정한(49)씨는 “나는 강아지 집에 얹혀 살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는 2015년 용인시에 2층 전원주택을 지으며 모든 인테리어를 반려견들에게 맞췄다. 개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1층 바닥 전체를 타일로 깔았다. 대소변 등 오물이 튈 경우에 대비해 벽 중간까지도 타일을 올렸다. 손님이 왔을 때 개들이 들어가 있는 방에는 유리로 된 문을 달았다. 방에서 나오지 못하더라도 주인을 볼 수 있으면 불안해하지 않는다. 개들은 천장이 막혀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여섯 마리가 각각 들어가 잘 수 있는 펫하우스를 주문제작했다. 애견 목욕시설인 하이드로배스와 드라이룸도 갖췄다. 마당에는 1.8m 높이의 울타리를 세워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

셀프 펫인테리어, 어렵지 않아요
반려동물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지만 여건상 집 구조 변경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땐 시중에 있는 가구를 색다르게 배치하거나 리폼하는 정도로 변화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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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일반 가구인 사각수납함을 계단처럼 배치해 캣워크를 만들고 선반을 각기 다른 높이로 달아두자 훌륭한 고양이 놀이터가 됐다. [사진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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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다섯 마리를 키우는 이미진(45)씨는 거실에 정육면체 모양의 수납함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려 캣워크를 만들었다. 벽걸이 선반 높이를 각기 다르게 달고 위에 아무 물건도 두지 않았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오르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냉장고 바로 옆에 캣폴(봉)을 설치해 냉장고 위에도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본인이 직접 만든 시설도 많다. 방문 하단에 구멍을 내고 천 커튼을 달아 고양이 전용문을 만들었고, 나무 의자 다리를 잘라 재조립하고 이불을 덮어 두니 훌륭한 고양이 동굴이 됐다. 이씨는 “반려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인테리어하면 키우는 주인의 생활도 편해진다”며 “함께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백수진 기자 soojinpe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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