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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출만이 살 길? 국책기관들도 커지는 회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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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Weconomy | 정책통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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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분기마다 내는 경제전망 보고서에 딸린 ‘주요 경제현안 점검’ 주제를 보면 2015년 이래 수출·보호무역·저유가 등 수출입 이슈가 주를 이룬다. 중앙은행의 현안점검 동향은 정책 관점에서 볼 때 보호무역 대두와 반세계화 흐름이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이슈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수출·개방·자유무역’을 경제의 동력기관이자 제1의 경제정책으로 추구해온 정책당국으로서는 큰 시련을 맞은 채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세계화 성찰’ 보고서


최근 반세계화 흐름과 자유무역 질서의 후퇴 경향 속에 대외 개방과 자유무역협정(FTA), 무역 의존 경제정책을 성찰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는 물론 산업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수출의 낙수효과 부재’, ‘외국인직접투자기업의 낮은 생산성’, ‘자유무역협정의 국내 산업 생산효과 미약’ 등 비판적 실증분석을 제출하고 있는 게 예사롭지 않다. 바야흐로 ‘세계화에 대한 불만’ 논의가 한국에도 상륙하는 양상이다.

필두에는 엘지(LG)경제연구원이 있다. 연구원은 지난해 가을부터 ‘반세계화’와 ‘세계화의 그늘’ 등을 주제로 다섯개의 관련 보고서를 내놓으며 세계화에 대한 재검토를 정책 의제로 던지고 있다. 심순형 선임연구원은 “세계화의 혜택보다 불만이 더 큰 주목을 받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심화의 주범으로 세계화를 지목하고 대외개방정책에 불만과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각국마다 표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민중진영에서 주로 내걸었던 반세계화가 더 넓은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원의 보고서들은 “성장률 둔화와 양극화 추세를 감안할 때 우리 역시 머잖아 선진국처럼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의문과 도전에 나서는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재검토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수출 충격’이 배경


산업연구원은 2015년 말 내놓은 ‘금융위기 이후 산업정책’ 보고서에서 “수출 증가율의 현저한 둔화는 우리가 지향해온 수출 의존적 성장모형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해외 투자·해외 생산 확대가 이제 국내 투자·생산과 보완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수출한국’을 주창해온 국책연구기관의 ‘시각 교정’이란 점에서 사뭇 흥미롭다. 그동안 질주해온 수출 편향적 성장정책에 의구심을 던지는 보고서들이 나오는 배경에는 1960년대 산업화 도상에 들어선 뒤 우리 경제가 요즘 처음으로 맞닥뜨린 ‘2년 연속 수출 둔화’가 자리잡고 있다.

개방을 통한 성장 정책을 설파해온 한국개발연구원도 ‘고용효과와 낙수효과의 동시 부재’ 상태에 이른 수출을 요즘 들어 복잡한 심경으로 대면하고 있다. 연구원이 2015년 말 펴낸 ‘국제무역과 한국 제조업’ 보고서는 “2000년대 한국 수출은 개도국과 특정 품목에 집중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수출품이 국내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며 “특정 지역의 경제 상황과 세계적 경기 부침이 수출 영역을 매개로 우리 경제 발전과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개방과 경제발전’ 보고서는 “(실질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100%를 넘은) 무역개방도가 120% 이상으로 늘어 해외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오히려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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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에서도 파열음


경제의 글로벌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국내외 직접투자도 검토 목록에 올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국내 외국인직접투자기업의 기업성과’ 보고서는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의 성과가 비교 대상인 국내 기업에 견줘 높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고용에서는 성과가 더 낮다”고 실증분석했다. 임대료 지원, 법인세 감면, 현금 지원을 앞세운 외국인직접투자 유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은행도 2015년 보고서에서 “과도한 현지 생산 확대는 국내 투자와 고용을 제약하면서 성장 기반을 약화시킨다. 자유무역 확대와 신흥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해외 생산 이점도 줄어들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생산기지를 국내로 유턴시킬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세계화가 빚어내는 파열음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한은이 지난해 낸 ‘자유무역협정의 국내 산업 파급효과’ 보고서는 “제조업의 경우 우리 기업 현지법인이 한국으로 제품을 파는 매출효과는 커지는 반면, 국내에서 생산된 중간재·최종재를 해외 현지법인이 매입하는 효과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자유무역협정이 모기업의 연결재무제표상 이윤 증가에 주로 영향을 미칠 뿐 국내 기업의 생산활동을 직접 증가시키는 효과는 신통치 않다는 뜻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2000년대 후반부터 해외 진출 기업의 생산시설이 국내 제품 수출을 대체하는 역효과가 커지고 있고, 현지 기업마다 중간재를 외국에서 조달하면서 ‘해외 생산에 따른 국내 중간재 수출 확대’라는 보완효과조차 약화되고 있다.

한국의 선택은?


우리나라 산업화는 사실상 수출의 역사였고, 한국 경제는 세계화의 중심부에 깊숙이 편입된 상태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의심할 나위 없이 ‘전 지구적 흐름’이었던 세계화에 갑자기 제동이 걸리면서 ‘수출·개방 최우선’ 정책은 큰 도전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경제에 드리운 ‘세계화의 그늘’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 세계화의 열패자가 된 산업과 계층이 갈수록 두터워지면서 ‘개방·수출 정책 기조’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할 공산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정책당국으로서는 옵션이 별로 없는 곤궁한 처지다. 우리 경제팀은 여전히 수출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경제부처는 올해 합동업무보고에서 “부동산시장 둔화 등 내수가 빠르게 식고 있어 수출 등 대외부문에서 경제 활로를 찾는 노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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