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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플라스틱통에 닭·돼지 매몰, 3년 지나도 미라처럼 안 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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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정부 AI·구제역 방역 매뉴얼

“6개월 내 액체화” 2014년 본격 도입

2~3년 후 열어보니 부패 거의 안 돼

생석회가 발효 미생물까지 죽인 탓

왕겨 넣는 공법으로 재처리 불가피

전국 726억 추가 비용 부담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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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아로면 AI 닭 매몰지. [합천=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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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경남 합천군 야로면의 한 조류인플루엔자(AI) 가금류 매몰지. 이곳은 2014년 3월 AI로 예방 살처분 한 3만3186마리의 닭 등을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저장조 20개에 담아 매몰한 곳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흰색 보호장구를 입고 땅에 묻힌 20개의 저장조 뚜껑을 열어봤다. 순간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가 마스크 사이로 새어 들어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약 3년이 지났는데도 당시 마대자루에 담아 매몰한 그대로 썩지 않은 상태였다. 자루 표면으로 닭의 외형이 울퉁불퉁 튀어나왔고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아 마치 미라처럼 보였다.

구제역 매몰지 상황도 거의 비슷했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의 한 구제역에 걸린 돼지 매몰지를 찾아갔다. 간이 건 물에 들어가니 땅 위로 솟은 저장조가 보였다. 이 저장조에는 2015년 2월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돼지 100여 마리가 담겨 묻혀 있었는데 역시 썩지 않았다.

침출수 막으려 전국 726곳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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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거의 연례행사처럼 AI와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저장조에 가금류나 소·돼지 등을 대규모로 살처분해 매몰했지만 2~3년이 지나도록 부패가 진행되지 않고 미라처럼 남아 있는 것으로 본지 취재에서 드러났다. 정부 방역매뉴얼(SOP) 등에는 ‘저장조에 매몰한 가축은 6개월이면 액상으로 변한다’고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용진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관리과 사무관은 “당시 상황이 긴박해 사체 분해 속도에 대해 정교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거나 별도의 영향평가 없이 저장조를 도입하다 보니 이 같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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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조 매몰 방식은 2012년부터 도입됐다. 기존 AI나 구제역 발생 시 주로 사용했던 매몰 방식은 일반 매몰법이었다. 5m 깊이로 땅을 판 뒤 대형 방수비닐을 깐다. 그 위에 AI나 구제역 균을 죽이는 역할을 하는 생석회를 뿌린 다음 자갈 등으로 공기층을 만든다. 다시 그 위에 가축 사체를 넣고 이어 부패를 촉진하는 발효 미생물을 뿌린 뒤 흙으로 덮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사체가 썩으면서 나온 침출수가 주변 토양과 지하수를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문제가 지적됐다. 이 때문에 2011년 나온 것이 ‘호기호열 매몰법’이었다. 일반 매몰법과 방식은 비슷하지만 사체 중간에 왕겨(벼껍질)를 넣어 공기 순환과 침출수를 흡수하는 역할을 보탰다. 하지만 이 방법도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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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침출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안으로 FRP 저장조 매몰법이 등장했다. 저장조를 사용해 침출수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한 것 외에는 생석회를 깔고 자갈 등을 넣어 공기층을 만든 뒤 사체와 발효미생물을 넣어 뚜껑을 닫는 일반 매몰법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 방식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이 방식은 2014년 이후 이달까지 전국적으로 매몰지 1203곳 중 726곳에 적용됐다. 같은 기간 살처분된 4865만여 마리의 닭과 소·돼지 중 2279만여 마리가 FRP 저장조에 매몰됐다.

그러나 당초 정부의 설명과 달리 저장조 안에 담긴 가축 사체들이 시간이 많이 흘러도 썩지 않으면서 재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가축매몰지 정상화 지속가능 포럼’의 안경중 사무총장은 “매몰 과정에 뿌린 생석회가 AI나 구제역 바이러스뿐 아니라 발효미생물까지 죽이면서 부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재처리비 처음보다 5배 넘게 들어

정부 방역매뉴얼에 매몰지는 3년이 되면 관리기한이 종료된다. 농사 등 다른 용도로 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2년 더 관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땅 소유주 등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보통 3년이면 관리기간이 끝난다. 2014년 1월부터 매몰한 곳은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관리기간이 종료돼 착착 재처리를 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재처리 비용이 만만찮다. 합천 매몰지의 경우 2014년 처음 매몰 때 든 비용은 3404만원이었다. 그러나 3월 재처리 기한이 되면 호기호열법으로 재처리하면 비용이 5배 이상(1억5700만원)이 든다. FRP 방식으로 매몰한 전국 726곳의 재처리 비용은 약 726억원으로 추산된다. 충북 진천군의 김광진 산림축산과 팀장은 “ 1억 넘는 비용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합천·이천·진천=위성욱·김민욱·박진호 기자 we@joongang.co.kr

위성욱.김민욱.박진호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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