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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나홀로 사회’의 대선 표심은···‘1인 가구’ 대선 파워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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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전성시대 대선 파워로 떠오르다

1인 가구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다. 1인 가구 중 청년층은 대체로 투표율이 가장 낮고, 노년층은 보수여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동안 이들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드물었다. 하지만 조기대선을 치를 것이 유력해 보이는 19대 대선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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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권자가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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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낮춰줄 수 있는 후보 있으면 찍지요. 아, 동물병원비도.”

직장인 강지연씨(31)는 혼자 사는 ‘집사’다. 교회 집사는 아니고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고 해서 집사다. 개만큼은 아니지만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고 하는 월셋집 주인도 찾기 힘들다. 마음에 꼭 드는 방이 나왔지만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고 해서 월세를 더 얹어주고 살았던 적도 있다. 때문에 직장을 잡은 지금도 비싼 월세와 고양이에게 들어가는 돈 때문에 좁은 고시원에 살던 백수 시절보다 형편이 크게 나아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정작 본인은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 먹고 아파도 바빠서 병원 가기도 힘든데, 고양이는 비싼 간식도 사다주며 아프면 보험도 안 되는 비싼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 “가계부 보면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항목이 월세랑 ‘뿅뿅’(고양이)이한테 드는 돈”이라는 박씨는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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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말대로 한둘이 아니다. 1인 가구는 가구원 수에 따라 가구를 분류하면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가구 중 27.2%를 차지한다. 521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그동안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차례 알려졌지만 이들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드물었다. 1인 가구는 투표율이 낮고, 투표를 하더라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게 유지된다는 경향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1인 가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층이 청년층과 노년층이다. 청년층은 대체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연령대이고, 노년층은 보수여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조기 대선을 치를 것이 유력해 보이는 19대 대선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청년층의 투표율이 높아진 현상은 야권이 승리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다가오는 대선은 여야 모두 정치세력이 분열된 상태에서 맞붙는 선거가 될 가능성도 높다. 이전처럼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1대 1로 맞붙는 것이 아니어서 특정 연령대나 특정 지역의 충성도 높은 표심이 서로 다른 후보에게로 분산될 수 있다. 여야의 각 후보 모두 고정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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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이라고 믿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 됐다.

1인 가구의 투표율이 낮다는 분석도 실제 대선에서는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서울에서 1인 가구 수가 가장 많은 10개 동의 지난 18대 대선 투표율을 보면 서울의 전체 투표율인 75.1%를 넘는 동은 없지만 평균 투표율과의 차이가 3%포인트에 못 미치는 동이 6곳이었다. 이전 선거인 19대 총선에서는 30%대 투표율을 보였던 강남구 역삼1동(38.2%)과 논현1동(38.6%)도 각각 60.8%, 61.6%로 높아졌다. 주거이동이 잦아 지역 현안에 비교적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1인 가구가 총선과 같은 지역단위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낮지만,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낮다고 무시할 수준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1인 가구 투표율 저조, 대선서는 다를 수도

투표율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서울의 1인 가구가 야권 지지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1인 가구 수 상위 10개 동 가운데 8개 동이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이 앞섰다. 특히 관악구 신림동·대학동, 광진구 화양동 등 6개 동에서는 문 후보가 60%가 넘는 득표율을 보이며 서울 전역에서 가장 야권 지지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보수성향이 강한 ‘강남벨트’ 안에 자리 잡은 역삼1동과 논현1동도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이 60%가 넘는 주변 동들 사이에서 50%를 겨우 넘겨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이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서울 거주 1인 가구의 이런 특성을 전국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1인 가구 가운데 30대 이하의 비율이 47.9%에 달하는 데 비해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은 16.6%에 불과한 서울과는 달리,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강원(31.2%)에서는 30대 이하 비율이 31.8%로 27.8%에 달하는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전국의 1인 가구가 청년층 1인 가구가 집중된 대도시와 고령 1인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농촌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1인 가구의 두 축을 이루는 청년층과 노년층이 복지와 사회보장 정책 등 가장 사회적인 지원 필요성이 높은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청년층은 주거 불안정 문제와 일자리 부족·실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년층은 소득 급감과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사회관계망의 부족이 주요한 지원 과제다. 대책은 다르지만 복지 요구가 큰 만큼 정책적 대안을 얼마나 잘 제시하느냐에 따라 표심이 기울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늦출 수 없다.

복지 사회보장 절실한 두 축, 청년과 노년층

앞으로의 선거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할 위력에 대해 먼저 반응한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2015년 4월 20대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1인 가구에 맞는 맞춤형 공약을 개발해 공략해야 한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냈다. 장경수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총선을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각 선거 지역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정책수요를 파악해 총선에서 맞춤형 정책공약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 지도부에 제언했다. 또 “1인 가구 거주자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안전체계 구축이 특히 요구된다”고 덧붙여 보수정당이 더 앞세울 수 있는 안전·방범 이슈를 선점하려는 전략도 보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 보면 지난 20대 총선에서 1인 가구 표심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1인 가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청년층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야권 지지를 보인 반면, 고령층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투표를 포기함에 따라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야권에서 1인 가구를 공략하기 위한 대책이 나온 것도 없었다. 총선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에서는 주거 불안정 문제를 개선하거나 청년실업 문제에 대응하는 등 개별 사안에 접근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 내용은 아니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는 공약과 정책을 만드는 것이 각 주자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1인 가구가 가장 흔하게 겪고 있는 주택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 노년 복지 문제는 당 차원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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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수도권편>을 통해 1인 가구의 특성에 따라 정책적 요구가 달라지는 점을 분석한 바 있는 손낙구씨는 특히 주거 문제에 관한 1인 가구의 정책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손씨는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동일수록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현상을 연구했다. 부동산 소유와 자가 거주 여부에 따라 투표 등 정치에 참여하는 행동까지 다르게 나타나는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손씨는 1인 가구의 비율이 더 높아진 지금에는 당시보다 주거 문제에 관한 정치적·정책적 요구가 더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손씨는 “1인 가구가 늘어난 것은 주택 문제로 고민하는 시민들 역시 늘어났다는 얘기이고,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자기 집 없이 세들어 사는 1인 가구의 월세부담은 더욱 커졌으니 이들의 요구가 다음 선거에서 주요한 쟁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의 대표적 문제인 주거 문제 외에도 전체 1인 가구의 막대한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정책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전의 2인 이상 가구가 나눠지는 것이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그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역할을 하던 공동체적 지원을 정부의 복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05년에서 2015년까지 10년간 1인 가구 증가세가 가장 급격하게 나타난 50대(139.7%)와 40대(79.2%)에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에 따른 이혼·별거 등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있었던 1인 가구에 대한 정책 지원은 청년과 노년을 중심으로 세워졌지만 1인 가구 비중이 커지면서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대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내부 집단의 편차를 감안한 새로운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인 가구 취약점 개선 요구 대선 때 분출”

퇴직 후 일자리를 잡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김일섭씨(55·가명)는 혼자 살기 시작한 뒤부터 위염이 도져 고생하고 있다. 퇴직 전 직장에서 영업 쪽 일을 맡은 이유로 접대 술자리에 불려다니며 심해졌던 위염이 퇴직 후 술을 줄인 한동안은 호전되기도 했다가 다시 도진 것이다. 김씨는 “혼자 있으니 먹는 거라고는 컵라면이나 분식집 김밥, 덮밥 이런 것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씨의 건강을 위협하는 증상이 위염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부인의 적극적인 권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상당히 호전됐지만, 김씨는 현재 직장이 있는 경기 평택으로 혼자 이사한 뒤 한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퇴직과 경제적 곤란, 그리고 새로운 일을 찾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함께 작용해서라고 김씨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와 다인 가구 사이의 정신건강 수준 격차는 중년층에서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만성질환율, 외래진료 횟수, 입원율, 우울증의심률과 같은 신체 전반의 건강수준에서 중년층 1인 가구는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자살 생각을 경험한 비율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세대별 1인 가구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중년층 다인 가구 구성원들은 전체의 3%만이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중년 1인 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13.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의 강은나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중년 1인 가구를 둘러싼 경제·건강·사회관계 등에서 부정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며 “중년 1인 가구의 자살위험을 낮추기 위한 정신건강적 개입이나 사회복지적 지원 등의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1인 가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취약점이 바탕이 돼 그에 대한 개선 요구가 대선에서 표심으로 분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청년층은 야당, 노년층은 여당이라는 흐름마저도 뒤바뀔 여지가 있다. 최근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 이면에 미혼 여성 1인 가구의 증가가 배경이 되고 있는 것처럼 생활정치의 측면에서 만들어진 집단적 요구가 대선국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과정에 이어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대선에서도 미혼 여성의 표가 결집된 모습을 보인 것도 1인 가구 표심이 잘 드러난 예다. 미국의 저술가 레베카 트레이스터의 책 <싱글 여성에 관한 모든 것>에 따르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어머니 세대와 달리 미혼 또는 이혼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여성들은 진보적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전통적 가족의 가치가 옅어지는 사이에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의 성평등 요구도 급증한 셈이다. 전상진 교수는 “1인 가구가 늘어난 변화는 촛불로 드러난 민심에 이어 대선에서 표심으로도 분출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으므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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