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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홍석경의 한류탐사] 시장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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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17년에 한류는 더 이상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단어이다. 2000년대 아시아를 휩쓸던 그 열기가 가라앉았고, 그동안 너무도 많은 곳에 차용되어, 이제는 그 본래의 의미조차 흐려져버린 듯하다. 명동에서는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고, 전 세계 동아시아학과의 한국어 지망생이 현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빌보드에 진입하는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 이런 현상들이 당연한 현실이 되어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뉴스 매체들은 이러한 일반화된 현실이 역풍을 맞을 때에야 반응한다. 한국 드라마 수출 곡선이 완만해진다거나, 사드 문제로 중국 정부가 한국 연예인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한국 드라마 방송에 차질이 생길 때, 그리고 일본의 혐한류 시위로 인해 시장 위축이 예상될 때, 한류는 뉴스가 된다. 우리의 현실 인식은 미디어 시스템의 이러한 작동 원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현상인 한류에 대해 여러 가지 미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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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생태와 더불어, 한류를 문화현상으로 직시하는 걸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시장 중심적 사고다. 문화적 영향은 수출시장의 크기로 가늠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특히 동아시아 밖에서 일어나는 한류현상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한 콘텐트 소비와 소셜미디어가 매개하는 팬덤현상에 기초하기 때문에, 어떤 경제지수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한류현상에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한류 콘텐트 수출 곡선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모순이다.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에 문화의 영향력은 훨씬 장기적이고 전방위적이며 이벤트성을 넘어선다. 굳이 한류 발전에 관계되는 경제적 요인을 논하자면, 사드나 혐한의 경제효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과도한 PPL이 드라마의 질을 저하시키고, PPL이 용인되지 않는 국가로의 수출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전망이 훨씬 논리적이다. 외롭고 찬란한 신 ‘도깨비’는 한국의 텔레비전 스크린에서는 빛날지 모르지만, 드라마 스토리 속에 광고를 교묘하게 녹이고 있기 때문에, PPL을 금지하는 유럽 국가들에서 방송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경제로 보이지 않는 한류 이야기를 해 나갈 예정이다. 가능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약력
서울대 불문과 졸업, 프랑스 그르노블대 박사, 보르도 3대학 교수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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