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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기자수첩]'내가 누굴까?' 천경자 미인도 26년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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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화가에게 작품은 핏덩이같은 자식이자, 분신이다. 고 천경자 화백(1924~2015)의 미인도 위작시비를 둘러싼 사연은 90년대 중반에 나온 이 소설의 제목과 꼭 같은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달 미인도를 고 천경자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이 선정한 전문가의 안목 감정 및 미인도 위작 시비 관계자 진술, 대검찰청 등 과학 감정 결론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프랑스 감정단의 위작 결론은 배척했다.

작가 본인인 천 화백이 아니라, 화상이 다수 참여해 내린 26년 전 감정 결론이 옳았던 셈이다.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 감정 의뢰를 받은 한국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 7명 가운데 4명이 화랑 대표였다. 한국화가는 2명, 미술평론가가 1명 감정위원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국내 미술품 감정은 여전히 화랑 관계자의 의견이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구조로 볼 수 밖에 없다. 화랑협회 제휴기관으로 2003년 감정 업무를 개시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 고위 관계자는 "감정위원 절반에서 3분의 2 가량이 화랑을 한다"고 말했다. 등기부등본 등 확인 결과 사내이사 5명, 대표이사 1명 등 임원도 화랑 대표다.

해외 선진국 감정이 협회 주도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국내 근현대 미술품 감정은 주주가 출자한 영리 목적 법인인 '주식회사' 감평원 주도로 이뤄진다.

미술계 안팎에서 "화랑업자가 감정을 병행하면 이해 관계가 개입될 수 있어 감정 결론도 오도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감평원 관계자는 "화랑주들이 그림을 현장에서 많이 취급하며 훈련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 감평원은 감정위원이 이해관계가 얽힌 작품이 있다면, 그에 대한 감정 참여도 못하게 한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옛 화랑 대표들의 판단은 물론 이번 검찰 발표가 또 다시 논란을 겪을 조짐이다. 검찰에 미인도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를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 고발한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천 화백 차녀)는 항고 의사를 밝혔다.

‘내가 나를 아니라는데’ 프랑스 감정단이나 검찰의 의견을 빌지 않더라도 망자가 된 천 화백의 심경은 어떨까. 참고로 ‘내가 누구인지 ~~’를 쓴 소설가 이인화(필명)는 최근 최순실사태 중 한 부분인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 속에 구속됐다.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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