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문학 결산
2016년 한국문학은 좋은 일, 꾸준한 작업, 추문이 뒤섞인 해였다. 좋은 일이란 소설가 한강이 영어권에서 주목받는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쾌거이고, 많은 소설가 시인들이 꾸준히 밀도 높은 작품들을 생산하는 가운데 하반기에는 문단 내 성폭력 사례들이 불거지면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로 발전한 사태를 일컫는 중이다. 문학의 쇠락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올 한국문학은 여전히 동력을 잃지 않고 분투한 한 해로 정리될 만하다.
소설가 한강이 연작소설 영역본 ‘채식주의자’로 5월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일은 한국문학의 세계무대 진출에 의미 있는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식물성 여자 주인공이 일상에 내재한 폭력을 못 견뎌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이 작품은 젊은 영국 여성 데버러 스미스가 한국어를 독학해 번역해서 또 다른 의미를 던져주기도 했다. 올해부터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은 작가와 번역자가 공동수상하는 틀로 바뀐 만큼 번역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수상이었다. 현지인이 스스로 한국어를 배워 번역을 하는 3세대의 출현에 주목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은 충분히 세계 독자들과 더불어 호흡할 만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도 제공한 수상이었다.
이들이 대중 독자들까지 사로잡는 역할을 했다면, 한승원 성석제 은희경 권여선 김숨 김탁환 윤대녕 황정은 김금희 백수린 최은희 같은 이들은 한국문학의 내실을 다지는 충실한 작업들을 지속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한승원은 신작장편 ‘달개비꽃 엄마’와 자선중단편집 ‘야만과 신화’, 한승원 문학의 뿌리가 흥미롭게 보이는 대담과 에세이 ‘꽃과 바다’를 같이 펴냈다. 권여선이 편집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커밍아웃’ 차원에서 제목을 지은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7개의 단편 어디에도 술은 빠지지 않거니와 각 작품들에서 술은 인간들이 빠진 깊은 수렁과 부조리한 운명을 애도하는 매개물로 작동한다. 찬사가 잇따랐고 상도 받았다. 성석제의 ‘믜리도 괴리도 없이’나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도 중진들의 내공을 잘 드러낸 작품집이었다. 김숨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한명’을, 김탁환은 세월호 잠수사 이야기를 ‘거짓말이다’로 펴내 현실의 민감한 아픔을 소설로 그려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움직임이 급기야 문예지들이 특별 좌담을 개최하고 문단의 구조적인 문제 성찰로까지 확산된 사실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수면 아래에서만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이 공론화되면서 문학과지성사는 문학 강좌를 아예 폐쇄했고 향후 재발 방지 논의는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가수 밥 딜런이 수상하면서 문학의 외연을 넓혔다는 찬사와 함께 문학을 희화시킨 이벤트라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문학이 더 이상 고전적인 영역에만 갇혀 있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상징한 사건이었다. 올해 국내에서는 소설가 이호철 송영, 시인 송수권 정완영, 해외에서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와 미국 작가 하퍼 리 등이 타계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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