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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검찰 “천경자 미인도는 진품” 프랑스 감정단 결론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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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프랑스 감정단 방법에 의문

“진품에 적용해도 진품 확률 4%”

압인선 등 천 화백 제작기법 확인

두터운 덧칠 밑 또 다른 밑그림도

김재규에 전달 뒤 국가에 기부돼

명확한 이력 있는 것도 진품 증거

위작 주장 유족 측은 “인정 못해”

중앙일보

25년간 위작 논란이 이어진 고 천경자(사진)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검찰의 결론이 나왔다. 1991년 천 화백이 “내가 낳은 자식을 몰라볼 수 없다”며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말한 뒤 시작된 공방은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직접 위작을 했다는 인물(권춘식씨)까지 등장했지만 검찰의 최종 판단은 달랐다. 특히 유족 요청으로 프랑스에서 온 뤼미에르 감정단의 결과도 배척됐다. 뤼미에르 감정단은 지난 10월 “진품일 가능성은 0.00002%”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이 진품이라고 결론을 지은 근거는 서너 개로 요약되는데 위작자를 자처했던 권춘식씨의 진술도 그중 하나다. 권씨는 검찰에서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작품 수준”이라며 앞서의 주장을 뒤집었다. 검찰이 미인도를 보여주자 실제 작품을 처음 본 권씨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19일 “미인도의 ▶소장 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 감정 ▶전문가의 안목 감정 ▶위작자를 자처한 권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이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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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원 검사(왼쪽)가 19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소장 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등을 종합해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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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근거는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미인도의 소장 이력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77년 천 화백은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 오모씨에게 미인도를 포함해 그림 2점을 제공했다. 미인도는 오모씨의 아내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내에게 선물하면서 김 전 부장의 응접실에 전시됐다. 계엄사령부의 기부재산처리위원회 공문에 김 전 부장의 서울 보문동 자택에서 미인도가 국가에 기부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검찰은 “미인도가 문화공보부 등을 거쳐 8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입고된 이력이 파악된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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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과학적인 감정 결과도 제시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대표적이다. 미인도 속의 꽃잎과 나비 등에는 천 화백이 다른 작품에서도 사용한 압인선이 나타났다. 위작자 권씨는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었다.

천 화백의 독특한 채색 기법도 미인도에 나타났다. 수정과 덧칠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그림 밑층에 숨겨진 ‘다른 밑그림’이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내는 위작에서는 보통 발견되지 않고, 천 화백의 ‘청춘의 문’(68년) 등에 이런 밑그림이 나타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대검·국과수·KAIST의 디지털 영상분석에서 미인도의 밑그림을 발견했으며 이는 천 화백의 비공개 작품인 ‘차녀 스케치’(76년)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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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해 온 천 화백의 유족 측은 즉각 반발했다. 유족 측 배금자 변호사는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단이 작품을 촬영해 1650개 단층을 분석한 결과 미인도는 ‘장미와 여인’을 보고 제작한 위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뤼미에르 감정단은 세계적인 명화 ‘모나리자’의 표면 아래 숨겨진 그림을 밝혀낸 곳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뤼미에르 감정단의 보고서에는 1650개 단층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이 감정단이 제시한 비교 방법을 진품에 적용하면 진품일 가능성이 약 4%에 불과하다”며 비교 방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미술계는 ‘당연한 결과’라고 반기면서도 천 화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은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시끄러워 일반인이 고인의 작품세계를 깎아내릴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로써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가 지난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 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마리 관장 등 피고소인 5명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이미 국과수 등에서 진품으로 결론지었다고 주장한 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모(59)씨는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글=정재숙·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정재숙.송승환.전민규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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