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북적북적‧왁자지껄' …촛불이 바꾼 시민들의 일상

댓글 1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족끼리 집회 참여 이웃과 소통 ‘공동체 마당’

불꺼진 구도심도 환하게 밝히며 ‘촛불특수’도

뉴스1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충경로 사거리에서 열린 '제4차 전북도민 총궐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2016.12.3/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주=뉴스1) 김대홍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주요도시에서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일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작은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시국에 대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지고 촛불집회가 열리는 토요일 저녁에는 구도심의 상권이 크게 활기를 띄는 등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적인 주제를 놓고 부모와 자녀 사이, 세대 간의 간극도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가장 큰 변화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의 촛불집회 참여 시민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3일 오후 전주에서 열린 3차 집회에 참석한 김진석씨(44·전주시) 부부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뉴스1

2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오거리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시국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촛불로 다른 초에 불을 밝히고 있다.2016.11.23/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 참석해 이웃가족과 소통을 하다

김씨 가족은 지난달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시간을 내 참석한 터였다.

김씨는 “가족회의를 통해서 집회에 참여하자는 의견을 모아 아이들이 준비한 피켓을 들고 서울과 전주 집회에 참석했다”면서 “다소 쌀쌀한 날씨 때문에 아이들이 감기에 들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참여한다고 말해 큰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고미희씨(38·전주시)의 경우는 가족 3대가 참여했다. 고씨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TV를 통해 본 친정어머니께서 ‘나도 가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일부러 시골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가족들끼리 집회에 참석해 친척이나 이웃, 직장동료 가족들을 현장에서 상봉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소도시라는 특성 탓도 있지만 집회현장에서 지인들을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푸는 모습은 흡사 전통시대 마을 축제가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송화섭 전주대학교 글로컬창의학과 교수는 “전통시대에는 대보름과 유두( 流頭 ), 한가위 등의 세시풍속을 통해 마을과 마을,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는 커뮤니티 센터가 존재했는데 산업화 과정에서 대부분 소멸되고 말았다”면서 “이번 촛불집회는 정기적으로 한 지역 공동체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 서로 소통하고 신명을 풀어내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그것이 재현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단순히 축제로 보기보다는 참여한 시민들이 서로의 목적의식을 공유하면서 집단적인 의사표출의 마당이라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된 현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뉴스1

3일 오후 5시30분께 전북 전주 객사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을 위한 제4차 총궐기에서 중학생 동창이 함께 촛불집회에 동참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2016.12.3/뉴스1 © News1 박아론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계층과 세대의 벽, 촛불이 허물어 내리다

집회현장에서 자유발언대에 오르는 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 변화도 눈길을 끈다.

중고생과 대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같은 또래로서 느끼는 박탈감을 그들의 언어로 토해낸다.

50대의 한 시민은 청소년들의 발언에 함성으로 호응하면서 “게임이나 즐기고 나 외에 다른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 어리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아이들의 생각이 참으로 올곧다는 것을 느꼈다”고 감격했다.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전북시국회의 관계자는 “자유발언 신청을 받으면 청소년들의 참여가 압도적으로 많다”면서 “그만큼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을 반증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이렇게 조리를 갖춘 생각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다”고 말했다.

반대로 기성세대의 주장에 청소년들도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3일 열린 집회에서 40대 후반의 한 여성이 무대에 올라 “세월호가 발생했을 당시 아무도 모르는 7시간의 비밀을 벗겨내는 것이 내가 촛불을 든 가장 큰 이유”라며 “아무런 죄도 없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아야 했던 생떼 같은 아이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여성이 감정에 북받쳐 연설이 끊길 때마다 청소년들은 ‘괜찮아’를 연호하며 힘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기성세대의 언어에 거부감으로 맞서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뉴스1

비가 내린 30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세이브존 앞에서 민주노총 전북본부 조합원들이 총파업 대회 중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2016.11.3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꺼리던 시국과 정치담론, 식탁으로 내려앉다

지향하는 이념이나 견해의 차이로 인해 정치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모임 자리에서 금기시되는 대화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그런 대화의 장애물마저 걷어냈다.

중고생들이 모인 자리나 주부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도 더 이상 정치이야기나 시국을 주제로한 대화는 꺼리는 주제가 되지 않게 됐다.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당에 둘러 앉아 자연스럽게 어제와 오늘의 뉴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종전에는 식당에 켜 놓은 텔레비전의 채널 선택권도 식당 업주에게서 손님에게로 옮겨갔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식당을 하는 권모씨는 “종전에는 내가 틀어놓은 TV채널을 바꿔 달라는 요구가 없었으나 최근 들어 손님들이 요구하는 채널이 많이 늘었다”면서 “연예나 오락 프로그램보다는 뉴스 채널을 더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1

5일 오후 전북 전주시 노송광장로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을 위한 전북도민1차총궐기'에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6.11.5/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도심 상가 “매일 저녁 촛불집회 열렸으면”

전주지역의 경우 전북도청이 서부신시가지로 옮겨가면서 중앙동과 경원동, 다가동 일대는 ‘죽은 상권’이 됐다.

간혹 한옥마을 관광객들이 일부러 다리품을 팔아 넘어오지 않으면 저녁 장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매주 토요일 저녁 촛불집회가 마무리 되는 시간이 되면 엄청난 손님들로 성시를 이룬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언 몸을 녹이며 늦은 식사와 술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로 인해 주변 상인들은 ‘촛불 특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뉴스1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충경로 사거리에서 열린 '제4차 전북도민 총궐기'에 참가한 전라고16회 동문들이 촛불로 닭을 끓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2016.12.3/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닭과 함께 맥주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평일 저녁에는 손님들이 있지만 주말의 경우에는 거의 빈자리가 많은데 촛불집회 이후에는 성수기 못지않게 손님들이 찾는다”면서 평소에 비해 매출이 거의 다섯 배에 달한다고 귀뜸했다.

인근에 있는 식당의 업주도 “촛불집회가 시작될 무렵 식재료를 준비하지 못해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들을 돌려보냈다”면서 “주말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왁자지껄한 이런 분위기를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감도 못 잡겠다”고 웃었다.

집회장소 인근에서 분식을 파는 한 상인은 “장사가 잘되고 못 되고를 떠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모습만으로도 재미를 느낀다”면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하루 빨리 촛불집회가 끝나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이런 분위기가 솔직히 싫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95minkyo@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