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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명랑함을 잃지 말렴!"…황인숙 9년만에 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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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속속들이 하양/ 반드르르 매끄러운 반죽 덩어리/ 튕겨보고 눌러보고/ 손바닥으로 문질러도 보고/ 찰진 반죽 덩어리/ 두근두근, 이것은 실제의 감촉/ 아, 살의 감촉!" ('반죽의 탄생' 부분)

황인숙(58)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를 냈다. 2007년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후 9년 만에 엮은 시집에는 시간의 흐름을 무색게 하는 발랄한 상상력이 여전하다.

"너희 핏줄 속 명랑함을 잃지 말렴!" ('길고양이 밥 주기') 길고양이들에게 건넨 당부처럼, 시인은 분명히 존재하는 우수를 명랑함으로 가볍게 치환한다.

"그러고 보니 폐(肺)에도 달이 있고/ 장(腸)에도 달이 있네/ 쓸개[膽]에도 달이 있고/ 몸뚱이 도처가 달이로구나!// 간이, 부풀어, 오른다, 찌뿌둥/ 달처럼, 우울하게,// 달아, 사실은 너,/ 우울한 간 아니지?/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부분)

연합뉴스

황인숙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시인은 과장된 수사나 은유를 배제하고 웬만해선 감상도 드러내지 않는다. 절제되고 경제적인, 소박하면서도 명랑한 시어를 구사한다. 집 근처 산책길이나 일요일 저녁 시내버스에서, 맨밥에 돈가스 소스를 끼얹어 먹으며, 전구가 나가버린 화장실 안에서 떠올린 시상들이 결코 하잘것없지 않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걸터앉아/ 이를 닦는데/ 찰싹,/ 한 방울 물이 팔오금에 떨어져 부서진다/ 좌심방인지 우심실인지가 찌릿하다/ 천장이 새누나, 드디어 첫 한 방울/ 버텨낼 수 있었던 마지막 한 방울을/ 막 넘긴 천장에 대해 묵념하는데/ 투둑,/ 두번째 한 방울이 묵직하게 떨어져/ 머리카락을 적시며 귓가로 흘러내린다" ('장마에 들다' 부분)

1984년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시인에게 고양이는 상징을 넘어 시선을 공유하는 삶의 동반자와 같다. 10년 가까이 매일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러 돌아다닌다. 시집에서 감정의 진폭이 다소 눈에 띄는 경우는 거의 길고양이의 아픔에 공감할 때다.

동네 부녀회장이 길고양이 밥을 빗자루로 하수구에 쓸어버린다. 멀리 떠나지 않은 채 근처 자동차 밑에서 숨죽인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어미고양이를 지켜보며 시인은 말한다. "당신은 내게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당신도 좀 그렇다"('칠월의 또 하루' 부분)

"지난겨울 당신이 주동이 돼/ 지하실 문을 잠갔다/ 고양이들이 굶어 죽으라고/ 바깥에 나간 새 생이별을 한 어미고양이들이/ 그 안에 든 새끼고양이들과 좁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당신들은 흡족해하며 들었다" ('당신의 지하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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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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