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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밀착카메라] 돈 없어 폐쇄되고 방치된 '서민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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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어린이 놀이터 안전점검이 의무화 되면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많은 놀이터가 문을 닫았는데요. 당수가 그대로 방치되거나 아예 용도가 바뀌면서, 아이들 놀 수 있는 공간도 그만큼 줄었습니다. 특히, 서민 주거 지역에서 문제가 더 심합니다.

밀착카메라 고석승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놀이시설이 설치돼 있었던 서울의 한 아파트 놀이터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휑한 모습인데요. 놀이터 안전점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서 시설을 모두 철거해 버린 겁니다.

놀이터 자리에는 운동시설 등 주민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해당 아파트 관계자 : 주민들이 생각 중이에요.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놀이터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편의시설을 만들려고 하고 있죠.]

안전 검사에 불합격한 전국의 놀이터는 모두 1500 여 곳.

일부 놀이터는 보수를 거친 뒤 다시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방치돼 있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 놀이터도 많습니다.

한 아파트 놀이터입니다. 폐쇄된 지 1년쯤 됐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아이들의 발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 바닥은 잡초로 무성하고, 놀이기구 역시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입니다.

주민들은 놀이터를 고치고 싶어도 딱히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파트 주민 : 새로 정비하려고 하면 돈도 없어. 형편이 안돼요. 구청이 하는 얘기는 '우리가 보조할 방법이 없다' 이러거든요.]

지방자치단체의 심사를 거쳐 아파트 보수 지원금 형식으로 일부를 보조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대구 서구청 관계자 : 놀이터에 대해서 지원하는 그런 것은 없고요. 아파트 지원 사업이라고 해서 선정되면 특정 공사에 대해 반 정도를 지원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있어요.]

특히 방치된 놀이터 상당수는 서민들이 많이 사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에 집중돼 있습니다.

한 소형 아파트의 놀이터는 빈약한 시설 탓에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폐쇄된 놀이터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놀이터입니다. 이 곳은 시설이 잘 돼 있어서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까지 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가 시설도 좋고 더 재밌어요. (동네 놀이터는) 더러워서…놀기가 좀 그래요.]

안전 점검을 통과한 놀이터도 곳곳이 문제 투성이입니다. 칠이 벗겨지면서 녹슨 시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쓰레기도 곳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노숙인들이 자리를 차지한 놀이터입니다. 잠들어있는 남성 옆으로 술병이 버려져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 : 놀이터가 기능을 잘 못하죠. 이게 많이 깨끗해 거예요. 그래도 이제 저희가 퇴근하면 주말 같은 경우에는 술 마시고…]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취한 남성이 다가와 횡설수설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 좋은 사람입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미안해요.]

이렇다보니 정작 아이들은 놀이터를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애들이 노는 공간인데 놀이터에서 (술 마시고) 그러면서 애들 많을 때는 분위기도 막 흐리고…]

전문가들은 놀이터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놀이 공간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이선영 팀장/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 : 친구들끼리 경쟁도 하고 원칙도 세우고 져보기도 하고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고요.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놀이터일 수 있거든요.]

학원이다 뭐다, 요즘 아이들 참 바쁩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마음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분명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입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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