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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민이 검증하는 2017년 나라예산] (2) 신축할 어린이집 수는 줄이면서 ‘출산장려 광고’ 예산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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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출산·취업 대책…모호한 미래성장

시설 확충 예산 157억 삭감…TV·웹툰광고에 40억 편성

청년실업 대책 ‘실패’ 지적에도 ‘취업패키지’ 예산 증액

경향신문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어린이집 확충예산이 37.6% 감액되는 등 정부의 출산대책이 부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습을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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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년차 최유준씨(37)는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다. “준비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으냐”는 부모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최씨는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 출산을 망설이고 있다. 은행 대출금도 갚아나가야 하는 형편에 분윳값, 병원비는 물론 학원비, 등록금 등 미래 지출도 큰 걱정이다. 최씨는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생활이 여유로워진다는 느낌이 없어 자녀 계획은 더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150조원 넘는 돈이 들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2014년 기준)인 출산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2010년 723만6000명이던 전국의 초·중·고등학생 수는 올해 588만2000명으로 줄었다. 6년 만에 광역시 인구에 해당하는 학생이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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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예산네트워크가 분석한 문제예산 50선을 보면 저출산 관련 예산안 곳곳에 문제점이 드러난다. 정부는 ‘불용액이 많다’는 이유로 내년도 ‘저소득층 기저귀·조제분유 지원사업(문제예산 36번)’ 예산을 올해(230억1000만원·추가경정예산 기준)보다 절반 이상(56.5%) 줄였다. 박근혜 정부 주요 국정과제인 이 사업은 당초 최저생계비 150% 이하 저소득층 영아(0~12개월) 가정에 기저귀를 제공하고 취업·질병 등으로 모유 수유가 어려울 경우 조제분유를 지원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 기저귀 제공 대상을 중위소득 40%(최저생계비 100% 수준) 이하로 조정하고, 조제분유 지원도 산모 사망, 항암치료, 에이즈(HIV) 등으로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경우로 범위를 좁히면서 대상자가 크게 줄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지원 범위를 줄여놓고 불용액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어린이집 확충 예산도 올해 302억3400만원에서 188억5100만원으로 37.6% 감액했다. 공동주택 리모델링이 19곳에서 75곳으로 늘어나며 14억원 정도 예산이 증가했지만 새로 짓는 국공립 어린이집 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 157억1600만원으로 삭감됐다. 반면 TV광고·웹툰을 통해 출산·육아 가치관 변화 등 국민 인식을 전환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내용의 ‘저출산고령사회 대비 국민인식개선 사업(문제예산 29번)’은 9억2000만원 늘어난 40억원으로 편성됐다. 네트워크는 “육아 관련 시설 조성에는 소극적이면서 저출산을 국민 인식 개선으로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년실업 대책도 마찬가지다.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온갖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실패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네트워크가 “청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한 ‘중소기업청년취업인턴제(문제사업 46번)’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를 통해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청년의 60% 이상이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에도 1년 내 그만두는 것은 급여, 열악한 근무여건 등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성공패키지 지원사업’은 불용액이 600억원을 넘어섰는데도 내년 예산은 올해 3135억원에서 3405억원으로 늘어났다. 질 낮은 일자리에 편중됐다고 지적받은 ‘해외취업 지원사업’ 예산도 452억4800만원으로 44억2500만원 증액됐다. 청년과의 소통, 정책자문을 위해 설치된 ‘청년위원회(문제사업 4번)’ 사업은 올해보다 2억원가량 감액된 43억원이 배정됐으나 불필요한 홍보·행사 사업이 많아 추가 감액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박용호 현 청년위원장이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초원 복지소사이어티 연구원은 “‘일자리 사업 전반(문제사업 50번)’에 걸쳐 불용액이 많고 사업관리가 부실하다”며 “정부는 임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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