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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탐색] '정신병원 강제입원' 헌법불합치 결정 왜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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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다툼·병원 영리에 악용 소지… 입원 요건 더 엄격하게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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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이른바 ‘정신병원 강제입원’ 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본인 의사에 반한 정신병원 입원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이 제도가 가족 간의 재산권 다툼이나 병원의 부당이득 추구 등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입원 요건을 더욱 엄격히 규정하라는 취지다. 헌재가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현행법의 효력을 계속 유지시킨 만큼 향후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총 7만62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4.9%인 4만5863명이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 이뤄진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었다. 흔히 강제입원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가족 등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조항은 가족 중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치료나 입원을 거부하며 다른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지역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것을 막고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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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본인은 입원을 꺼릴 게 뻔한 만큼 보호의무가 있는 가족 등의 동의를 얻고 또 ‘질환이 심각하다’는 전문의의 판정을 받아 본인 뜻과 무관하게 병원에 입원시킴으로써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특정인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합법적 장치로 악용된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유산 상속을 놓고 다투는 가족 중 몇몇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결탁해 가족의 특정 구성원을 정신병자로 몰아 강제로 입원시키고 재산 분배를 위한 의사결정에서 배제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치매에 걸린 부모나 조부모를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킨 다음 재산을 빼앗으려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보호의무자 2인이 전문의와 공모하거나 또는 방조·용인을 받아 정신질환자를 억지로 입원시킬 수 있고, 이는 실제로도 종종 발생해 사회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부 정신병원은 입원환자 수를 늘리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기도 한다. 장기 입원환자가 많을수록 병원 입장에선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헌재도 “보호의무자와 의료기관 사이의 이해만 맞으면 얼마든지 정신질환자의 의사나 이익에 반하는 장기입원이 가능하다”고 문제점을 적시했다.

정부와 국회는 강제입원 요건을 한층 강화한 개정 정신보건법을 이미 만든 상태다. 내년 5월3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보호의무자가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서로 다른 기관에 속한 의사 2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현행법보다 기준이 강화됐지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 입원이 완전히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일단 “내년 시행 예정인 개정 법률의 위헌성은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개정 법률의 강제입원 요건을 재점검하고 필요하면 수정하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미한 환자라면 본인 판단에 따라 입원할 수 있지만 상태가 심각한 환자도 많아 본인 의사에 반한 입원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태훈·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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