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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노르웨이 패러독스…석유로 석유를 퇴출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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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곽노필의 미래창]

전기차 보급1위·벌목 금지 등

세계 최고의 친환경정책 자랑

바탕엔 석유로 쌓은 국부펀드



한겨레

노르웨이의 북해유전시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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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사회복지를 자랑하는 북유럽 나라들은 환경보호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환경성과지수, 녹색경제지수 최상위권은 이들의 독무대다. 노르웨이도 그런 북유럽 국가 가운데 하나다.

노르웨이의 환경주의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가 전기차다. 올해 들어 노르웨이 전기차는 10만대를 넘어섰다. 지난 4월의 일이다. 5만대를 넘어선 지 딱 1년 만에 두배로 늘었다. 인구당 비율로 미국의 14배다. 올해 새로 등록한 승용차 3대 가운데 1대가 전기차다. 덕분에 인구로는 세계 100위도 안 되는 나라가 전기차에선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당당 4위다. 전기차에는 세금과 도로·주차장 이용료를 받지 않고, 버스전용로 주행도 허용하는 등 파격적 혜택이 큰 구실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6월 앞으로 삼림 벌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처음이자, 아직까지 유일하다. 팜유, 콩, 소고기, 목재 등 삼림 벌채로 만들어지는 제품도 정부·공공기관 조달품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의회는 2030년 탄소중립 달성을 결의했다. 이 역시 선진국 처음이다. 이전 목표였던 2050년에서 20년을 앞당겼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인 상태를 말한다.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파리기후협약도 주최국 프랑스를 빼고는 가장 먼저 비준을 마쳤다. 2025년부터 가솔린·디젤 엔진 차량 판매 전면 금지도 추진중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합의를 봤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 또한 세계 최초가 된다.

이런 일련의 행동과 조처들의 종착지는 석유 퇴출이다.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밀어붙이는 힘이 바로 유전에서 나온다. 아이러니다. 석유로 석유를 퇴출시키는 격이다. 사람들은 이를 ‘노르웨이 패러독스’라 부른다.

경작지가 3%에 불과한 노르웨이 경제의 주축은 원래 어업이었다. 지금도 노르웨이 하면 연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1970년대에 북해유전을 찾아내면서 대박이 터졌다. 현재 석유(가스 포함)는 수출의 절반,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경제의 핵심이다. 석유 생산량은 세계 15위이지만 수출은 5위다. 생산한 석유의 대부분을 수출한다. 전기의 95% 이상을 수력발전에서 얻는 까닭이다.

노르웨이는 석유를 팔아 번 돈을 차곡차곡 쌓아 세계 최대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석유판매가의 80%를 세금으로 가져가 만든 펀드다. 석유는 일부 계층이 아닌 국민 모두의 자산이 됐다. 국부펀드의 자산은 8900억달러에 이른다. 1000조원에 이르는 돈이다. 국민 1인당 2억원꼴이다. 1990년대 중반에 출범한 국부펀드의 목표는 ‘미래세대를 위한 부의 축적’이다. 미래의 인구 고령화와 석유자원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펀드엔 특별한 운용기준이 있다. 윤리 준칙이다. 독립적인 윤리위원회가 만드는 윤리 준칙엔 석탄 같은 화석연료도 포함돼 있다. 국부펀드는 올해부터 매출이나 전력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 투자를 않는다. 기존 투자금은 회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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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전용로를 달리는 전기차. 번호판의 ‘EL’이란 글자가 전기차임을 표시해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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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찬사만 쏟아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자국내 온실가스 감축보다 해외 탄소상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탄소상쇄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나무를 심거나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같은 친환경사업에 투자하는 걸 가리킨다. 나 대신 남을 시켜 목표를 달성하는 양태다. 정부 방침도 눈총을 받는다. 올해 초 노르웨이는 북해유전의 석유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새 유전을 가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 흐름과 어긋난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자기기만이라 비난한다. 열심히 땅속을 파서 석유를 캐 수출한다는 점에선 사실 노르웨이나 다른 석유부국들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뚜렷이 다른 게 있다. 석유로 번 돈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아낌없이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이미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에 10억달러를 지원했다. 인도네시아, 가이아나에도 연간 수억달러씩 기부한다. 지난 8월엔 국부펀드 등의 도움을 받아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기금을 운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비다르 헬게센 기후에너지장관은 이렇게 변호한다. “우리도 모순에 빠져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우리만큼 석유와 가스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려 애쓰는 나라도 없다.”

노르웨이는 국부펀드 덕분에 자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었다. 자원의 저주란 자원 확보를 둘러싼 이권다툼으로 집단간 충돌과 사회 불안정에 빠지는 걸 말한다. 노르웨이는 이권을 나눠갖는 대신 이를 국부펀드로 합쳐 미래 계획을 짜는 데 투자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힘의 원천이 민주주의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다른 석유부국들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긴 민주주의 지수에서 노르웨이는 단연 세계 1위로 꼽혔다. 선거 과정, 정부 기능, 정치 참여도, 정치 문화, 시민 자유도로 구성된 5개 항목 중 네 항목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바탕이 탄탄하다. 각 항목을 단단히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다.

<에너지혁명 2030>의 저자 토니 세바는 15년 안에 강력한 대체에너지가 부상하면서 석유시대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가장 강력한 대체에너지 후보는 태양광이다. 그때가 되면 노르웨이도 지금의 난감한 패러독스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녹색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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