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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지진이 부른 ‘저녁 8시’의 공포… “완전 전쟁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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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 지진 3차례 겪은 경주 내남면

지진 잇따라 겪은 내남면 주민들

저녁 8시만 되면 공포에 떨며

인근 주차장으로 대피 되풀이

땅만 울려도 고함지르는 손자·손녀

속이 아프고 메스꺼운 증상 호소

관광객 끊겨 생계위협 받는 상인들

영남 생필품·비상물품 판매 20%↑

원전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

천재지변이 인재지변을 만났을 때

재앙의 크기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한겨레

지난 22일 오후 경북 경주 내남면 용장리에 사는 정원화씨가 집 앞마당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열흘 전 발생한 지진 이후 그의 가족은 다시 올지 모를 지진을 두려워하며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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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달아 강진을 맞은 경주 내남면을 찾았습니다. 지진이 덮친 시간만 되면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마을 주차장은 주민들의 피난처가 돼 버렸고, 집 안에 들어가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차와 텐트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남면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원전과 그 원전의 위험에 대한 불감증을 강요하는 정부가 전쟁보다 큰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경북 경주 내남면 용장리 용장주차장에는 매일 저녁 8시만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든다. 주차장 바닥에 널찍한 돗자리에 모여 앉아 이불을 목까지 덮어쓴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모두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있다. 보통 지진이 없는 날이면 10명, 지진이 있으면 40명이 이곳에 모인다.

“3개월 동안 이카믄 우리 다 죽는다”

지난 12일 저녁 7시45분께 경주 내남면 부지리에서 진도 5.1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저녁 8시33분에는 내남면 화곡리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이어졌다. 일주일 뒤인 지난 19일 저녁 8시34분께에는 내남면 덕천리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들 진원지는 내남면 용장리에서 서쪽으로 2㎞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공교롭게 큰 지진이 저녁 8시를 전후해 일어나자 주민들 사이에는 ‘저녁 8시의 공포’가 짙었다. 지난 22일 저녁 8시 용장주차장에는 아주머니 4명이 미리 나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밤 11시까지 이곳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모이면 지진 이야기부터 꺼낸다.

“이게 뭔 꼴이고? 텔레비전 연속극도 몬 보고….”

“오늘은 머리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서 오바이트 날 것 같더라.”

“이게 언제까지 갈랑가?”

“26일에 큰 거 온다는데 맞능교? 어데는 24일이라 카던데? 영 불안해서….”

“갑자기 오는데 누가 알겠능교?”

“날도 춥은데 여기다 천막이라도 좀 쳐주지, 동사무소는 뭐 하노?”

“곧 초겨울일 낀데 지진 계속 나면 우리는 어디 가 있어야 되노?”

지난 12일 큰 지진이 왔을 때의 무서웠던 기억도 되새긴다.

“내가 마당에 있는 차에서 자보기는 처음이라. 5.8 왔을 땐 새벽 5시에 집에 드갔다니께.

“나는 그날 저녁에 식당에서 밥 먹고 있었는데 우당탕거리니 사람들이 테이블 다리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꼬.”

“나는 놀라서 맨발로 집 밖에 뛰어나갔다가 발이 시리버서 다시 집에 들어가 양말 신고 나왔다.”

“내가 우황청심원을 하루에 3개씩 먹는다니까….”

어둠 속에서 아주머니 3명이 나타났다.

“밥은 먹었능교? 집이 불안해가 여기 자꾸 나오네.”

“아까 뉴스에는 3개월 동안 이칸다 카던데?”

“야, 3개월이나 이카믄 우리 다 죽는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늘어나 곧 10명이 됐다. 맨 마지막에 온 10번째 아주머니는 자리를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친척들이 자꾸 전화 와서 괜찮냐고 묻는데, 괜찮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절단 났다고 할 수도 없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주 안강에 사는 오빠는 방 하나 줄 테니 나보고 오라카던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거 가서 머 하노.”

이 마을에 사는 정원화(71)씨는 닷새 전에 집 앞마당에 텐트를 쳤다. 옆집은 열흘 전에 텐트를 쳤다. 밤에는 여섯 식구가 텐트에 모여 잔다. 텐트 안에 전기장판을 깔고 이부자리를 갖다 놨다. 지진 소식을 알아야 해서 텐트 안에 텔레비전도 설치했다. 텐트 바로 바깥에는 휴대용 버너와 주전자를 준비해뒀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손녀는 저녁에 땅이 조금만 울리면 고함지르면서 마당에 나와 방에 안 들어가려고 해요. 손녀들이 자꾸 마당에 있는 차 안에 들어가 있으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밤에는 여기서 모여 잠을 잔다 이 말이요.”

마당에 텐트 치고 ‘비상체제’

정씨는 생수 몇 박스를 사다가 스타렉스 승합차에 실었다. 라면 몇 박스는 집 안에 넣어뒀다. 정씨는 현관문을 비롯해 집 안에 모든 문을 열어놓고 산다. 문을 닫아 놨다가 큰 지진이 오면 문이 찌그러져 안에 갇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 뒤편에 벽돌과 슬레이트로 지어놓은 창고는 지난 12일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수리는커녕 이젠 아무도 창고 쪽으로 가지 못했다.

“수도 없이 여진이 이어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땅이 떨리는데 이건 완전 전쟁인기라. 손녀들은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고 안 하요.”

그는 또 “텔레비전에서 자꾸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다고 하고 3개월 간다, 1년 간다라고 하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더 불안하다”고 했다.

이 마을 도로가에 있는 민속품 가게에는 남편 이규백(79)씨와 아내 윤말순(66)가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생수가 여러 박스 쌓여 있었다. 윤씨는 매일 저녁 밖에 나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몸이 불편한 이씨는 가게 입구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집을 빠져나오기 가장 쉬운 위치다.

지난 12일 지진이 왔을 때 이씨와 윤씨는 집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하고 서로 손을 잡고 방 안에서 떨기만 했다. 부엌에서는 찬장이 내려앉아 ‘와장창’하며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지나서 동네 사람들이 이씨와 윤씨의 가게 앞에서 “나오라”고 소리칠 때까지 그렇게 떨고 있었다.

“이렇게 1년을 살아야 할지 10년 살아야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이씨가 혀를 찼다. 그러다가 그는 아내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죽는 건 괜찮은데, 병신 될까봐 그게 걱정이제….”

경주 전체 인구는 25만900여명인데, 내남면에는 5200여명이 산다. 내남면에는 낡은 농가에 사는 나이든 주민이 많아 건물에 균열이 가고 무너지는 피해가 컸다. 주로 벽돌과 슬레이트로 집 옆에 붙여 지은 창고 건물이 붕괴하거나 심한 균열이 일었다. 농촌 특성상 이런 창고 건물은 허가 없이 지어진 것이 많다. 결국 피해 지원에서 제외돼 주민들은 발만 구르고 있다. 경주시가 추산한 피해액 131억원에서도 이들의 피해는 제외돼 있다.

경주 황남동 천마총 대릉원 옆에서 빵집을 하는 류아무개(47)씨는 가게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이곳은 진원지로부터 북쪽으로 7㎞ 떨어진 곳이다. 가게 기와지붕은 파란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지진이 계속 오니까 수리하지도 못하고 임시로 덮어놨다. 그는 저녁 8시만 되면 습관적으로 가게 밖을 나와 땅이 떨리지 않는지를 확인한다.

류씨는 “물과 안전모를 사러 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첫째 딸이 엄마에게 전해해 “물과 손전등 등을 배낭에 넣어 짐을 싼 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둘째 딸도 “안전모를 사놨다가 땅이 울리면 바로 쓰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라”고 당부했다.

류씨는 “지진이 하도 많이 오다 보니까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치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면서 조금 큰 소리가 나 놀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가게 밖을 뛰쳐나온다”고 했다.

류씨 바로 옆 가게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혀를 찼다. “자꾸 저녁 8시만 되면 지진이 나니까 별일이 없어도 그 시간이 되면 가게 밖으로 나와 보게 된다. 하늘이 하는 일을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나는 이만큼 살았으니 됐는데 우리 자식들이 문제지.”

거의 1시간 동안 지켜봐도 류씨의 가게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나면서 경주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손님 대신 지진이 올 때마다 전화는 폭주한다. 친정식구부터 친구까지 돌아가며 전화가 와서 안부를 묻는다.

“원래 이맘때 이 근처는 관광객으로 북적되는 곳인데 지금 둘러보면 사람이 없어요. 텔레비전에서 너무 보도를 많이 하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까지 되니까 누가 경주에 오려고 하겠냐 말이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사가 안되니까 상인들 생계가 어려워요.”



“불안해 몬 살겠다” 원전 반대집회

진원지인 내남면 부지리에 사는 주재준(79)씨는 땅이 흔들리면 낡은 자신의 집부터 둘러본다. 집 곳곳의 벽을 확인하면서 균열이 얼마나 더 생겼는지를 본다. 그는 지난 12일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벽에서 떨어진 액자에 왼쪽 눈 윗부분을 맞아 다쳤다. 그는 땅이 울릴 때마다 벽이나 선반에 있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을까 유심히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면 자신의 집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진 근처 마을회관으로 달려간다. 이 마을에는 낡고 오래된 집이 많아 주민들은 땅이 흔들리면 마을에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마을회관에서 밤을 보낸다.

부지리에 사는 주민 손일도(83)씨는 “우리 집은 옛날에 아주 허술하게 지어진 낡은 집이라서 12일 지진이 나고 문도 찌그러져서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집에 계속 있기 그래서 주로 밖에 돌아다니거나 마을회관에 와 있는다”고 했다.

경주에서 잇따르는 지진이 영남 지역을 흔들고 있다. 진원지에서 울산 시내까지는 직선으로 27㎞ 떨어져 있다. 대구 시내까지는 55㎞, 부산 시내까지는 66㎞ 거리다. 고리원전 1~4호기, 신고리원전 1~2호기가 몰려 있는 부산 기장군까지는 50㎞ 안팎이다.

영남 지역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이후 생활필수품과 등산용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주로 물과 라면 등과 같은 생활필수품과 배낭, 손전등과 같은 등산용품이 많이 팔리고 있다. 이마트 쪽은 “지진이 일어난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영남에서는 평소보다 생활필수품 판매가 55%, 등산용품 판매가 20% 늘어났다”고 했다.

지진 등 생활안전체험을 할 수 있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지난해 추석연휴 기간에 하루 평균 230명의 체험객이 방문했다. 하지만 올해 지진이 일어난 직후 추석연휴 기간에는 하루 평균 317명의 체험객이 이곳을 찾았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의 지난해 하루 평균 체험객은 287명인데, 올해 지진이 일어난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하루 평균 체험객이 350명으로 늘었다.

경주 양남면에는 월성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경주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이 몰려 있다. 진원지로부터 동쪽으로 27㎞ 떨어져 있다. 이곳 주민들은 지진이 날 때마다 원전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원전과 지진 때문에 불안해 몬 살겠다”면서 26일부터 마을에서 원전 반대 집회를 할 계획이다.

나아리에 사는 황분희(68)씨는 “이곳은 원전이 있어서 지진이 나면 주민들이 ‘원전에 무슨 일 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원전이 있는 곳에서 계속 지진이 나니 주민들의 불안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티케이’(TK·대구경북) 지역에는 인간이 만든 재해가 많았다.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올해 들어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라는 ‘정치적 재해’로 시끄럽다. 이제 경주를 뒤흔든 지진이 원전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고조되고 있다. 천재지변이 인재지변을 만났을 때 닥칠 재앙의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경주/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한겨레

최근 잇달아 지진을 겪은 경북 경주 내남면 용장리 주민 정원화씨가 비상 생수를 구입해 승합차에 보관하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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