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정세균 직권 종료 후 표결

댓글 10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자정 넘자 “장관 돌아가라” 차수변경

정진석 “날치기 독재”거센 항의

심야까지 고성·삿대질 주고받아

중앙일보

24일 0시30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표결을 위해 야당 의원들이 줄을 서 있다. 투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진행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23일 자정까지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를 감행했고 표결을 진행하려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치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투표자 수 170명, 찬성 160명, 반대 7명, 무효 3명.” 24일 0시55분 국회 본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고 선포했다. 무소속 홍의락 의원을 제외한 야당 의원 전원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다. 재적 의원 129대 171(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이라는 수적 열세 앞에 새누리당은 무력했다. 앞서 본회의장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장시간 답변을 유도해 시간을 끄는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라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지만 표결을 막지는 못했다.




정 의장이 23일 자정,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의 대정부질문 도중 산회를 선포하고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해 24일 회의로 차수 변경을 선언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합의 없는) 차수 변경 무효”라고 고함치며 단상에 올라가 20분가량 실랑이를 벌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런 날치기 독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정 의장은 “국회법 77조 의사일정 작성은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라고 돼 있는데 협의는 합의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표결을 강행했다. 정 원내대표는 가결 직후 “이 시간 이후 모든 국회 파행 사태의 책임은 야당들이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라며 대치 정국의 시작을 선언했다.

이번 해임안 가결로 다수의 힘을 과시한 야당과 소수당으로 전락한 여당이 서로 민낯을 확인했다. 처리 과정에서 여야는 고성과 삿대질,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며 난장판 국회를 만들었다. 20대 국회는 개원 117일 만에 여야 대치라는 벼랑으로 내몰리게 됐다. 당장 26일 시작되는 2016년 국정감사와 이후 내년 본예산안 심의 일정마다 사사건건 부딪히거나 파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안을 거부하는 경우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여당인 공화당이 반란을 일으켜 오치성 내무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가결했을 때도 수용한 것을 포함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회가 가결한 장관 해임건의안 5건을 거부한 사례가 없어서다. 한나라당이 다수 야당이던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수용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야당이 다수 의회권력을 행사하는 첫 카드로 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것은 대통령을 직접 견제하겠다는 의도”라며 “박 대통령도 ‘여기서 밀리면 국정 주도권을 잃는다’는 위기감에 거부할 경우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충돌로 국정 마비를 초래하고 결국 양쪽 모두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3당인 국민의당은 재적 과반 요건인 해임건의안 가결의 캐스팅보트로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21일 더민주·정의당이 해임건의안을 함께 제출할 때만 해도 국민의당은 서명하지 않고 빠졌다. 다음 날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소위 대화를 위해 북한에 줬던 돈(대북 송금)이 핵 개발자금이 됐다”며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대북 송금 사건을 정면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러자 DJ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원내대표 등은 소속 의원들에 전화를 돌려 해임건의안 찬성을 독려했다고 한다.

◆자정까지 사상 초유의 ‘필리밥스터’ 공방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는 국무위원들이 장시간 발언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2월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연상케 했다.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는 의원의 발언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되고 초과할 경우 마이크가 꺼지지만 답변자의 발언시간에 제한이 없는 점을 이용해 새누리당이 해임건의안 표결을 늦추려 한 것이다.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정부 관계자를 소집해 답변 늘리기를 지시하는 것을 의원과 당 관계자들이 목격했다”며 “사상 초유의 정부 필리버스터”라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거야 실력행사…김재수 해임건의 한밤 통과


오후 7시 새누리당 의총에서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식사를 하러 가면서 정회도 시키지 않아 국무위원들이 식사도 못하고 답변 자르기, 윽박지르기를 당하며 질의에 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후 7시50분쯤 본회의장으로 돌아온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상에 있던 정 의장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무위원은 인권도 없느냐. 식사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냐”고 고함치자 정 의장은 “새누리당 의총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냐.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할 권한이 있지만 국무위원은 필리버스터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결국 정 의장이 이를 수용해 30분간 정회한 후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무위원들 밥을 주라고 단상을 점거하는 상황에 자기들도 웃더라. 필리밥스터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글=이충형·이지상·안효성 기자 adch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이충형.이지상.안효성.강정현 기자 adche@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