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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NOW] 추석 앞두고… 며느리가 '사이버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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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자고 갈건지 투표하라"… 늘어나는 SNS 고부 갈등]

시어머니와 카톡 잘하는 방법 인터넷에서 수시로 올라와

며느리들 "SNS에도 매너 있어", 부모 세대 "친해지고 싶은데…"

결혼 7년 차인 박모(여·38)씨는 지난달 말 '카카오톡'을 탈퇴하고 다른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텔레그램은 서버에 대화 기록이 남지 않아 보안을 중시하는 사용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신저다.

박씨가 카카오톡을 그만둔 것은 보안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박씨의 시어머니는 추석이 다가오자 며느리들과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각자 언제부터 며칠간 자고 갈 것인지 투표해 달라"고 했다. 박씨는 원래 이번 추석에 시댁과 친정에 각각 한나절씩만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시어머니가 만든 '카톡 투표'에는 '자고 가지 않음'이라는 항목은 없었다. 박씨는 "평소에도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마다 시어머니께서 '어디 다녀왔냐'고 꼬치꼬치 물어보셔 불편했는데 추석을 앞두고 시어머니의 카톡 지시가 급증했다"면서 "'회사 방침'이라고 말씀드리고 시어머니가 쓰지 않는 텔레그램으로 메신저를 옮겼다"고 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가 '고부(姑婦) 갈등'의 새로운 무대로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와 카톡 잘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시어머니의 감시를 피하려고 카카오톡을 나와 시어머니가 모르는 제3의 메신저로 '사이버 망명'을 떠나기도 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과거 고부 갈등은 주로 대면 접촉이나 통화에서 비롯됐는데, 최근에는 'SNS 고부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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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에 사는 임모(여·36)씨는 최근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친구의 페이스북 글에 '대박'이라는 짧은 댓글을 단 것이 화근이었다. 시어머니가 이 댓글을 보고 "그렇게 부러우면 굳이 안 내려와도 된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고, 임씨는 "오해시다"며 해명하기에 바빴다. 임씨는 "아직 추석이 일주일도 넘게 남았는데 '명절 증후군'이 SNS를 타고 더 빨리 온 것 같다"라며 "'업무용 SNS'도 모자라 이제 '가족용 SNS'까지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했다.

'SNS 고부 갈등'의 기본 원인은 50·60대의 SNS 이용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50대 스마트폰 이용률은 2012년 31.4%에서 지난해 81.9%로 늘어났다. 60대 이상 연령층의 이용률 역시 같은 기간 6.8%에서 32.1%로 뛰었다. 카톡 같은 SNS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50대 비중도 2014년 36.7%에서 지난해 60.5%로 늘어났다.

며느리들은 "부모님 세대가 'SNS 매너'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SNS를 사용하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모(여·31)씨는 "SNS를 하다 보면 친분 정도에 따라 '이 정도까진 말을 꺼내도 불쾌해하지 않겠다'는 감(感)이 생기는데, 어른들은 가끔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분 정도를 무시하고 아무 말이나 꺼낼 때가 있다"라며 "상대의 반응을 별로 챙기지 않는 것도 어른들이 SNS를 할 때 보이는 특징"이라고 했다.

반면 부모 세대들은 '서운하다'는 입장이다. 사위·며느리와 격의 없이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SNS를 하는 건데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서모(여·65)씨는 "며느리에게 SNS로 말을 걸 때는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나름 '용기'를 내는 건데 며느리들은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다"며 "기껏 생각해서 뭔가 조언을 했는데 '네' 한마디만 돌아올 때 섭섭하다"고 했다. 며느리 셋을 둔 김모(여·69)씨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참 뒤에야 마지못해 응답하는 며느리들을 볼 때면 '그냥 시댁과는 어떤 형태로도 엮이기 싫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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