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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강남패치' 뒤엔… 기업회장 외손녀 향한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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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신상 폭로 SNS '강남패치·한남패치'… 운영자 잡고 보니 20代 여성들]

- 회사원 24세女 개설 '강남패치'

클럽서 '금수저' 보고 박탈감, 헐뜯는 글 올리면서 활동 시작

유흥업 종사자 등 무차별 폭로

- 무직 28세女 개설 '한남패치'

성형수술 부작용 심해 우울증… 의사에 앙심 품고 남성들 혐오

경찰, 페이스북 협조 받아 검거

조선일보

지난 5월 초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 '강남패치'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강남패치라는 이름은 유흥가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 지역과 연예전문매체인 '디스패치'를 합성한 것이다. 이 사이트는 특정 남녀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들이 강남 유흥업소 종사자나 해외 원정 성매매 경험자 등이라고 주장했다. 외제차와 명품, 고급 아파트 등을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다른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샀던 사람들이 이 사이트의 표적이 됐다.

강남패치는 "이들은 '금수저'나 성공한 사업가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학력이 낮은 비행 청소년이었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쳤다"고 주장했다. 이 사이트에 공개된 남녀 100여명의 신상은 10만명이 넘는 팔로어(follower)들을 통해 삽시간에 SNS와 인터넷으로 퍼졌다. 김지호 경북대 교수(심리학)는 "매우 선정적인 내용이지만 위선자 고발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죄책감 없이 루머를 퍼 나른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패치가 인기를 끌자 유사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6월 21일 등장한 '한남패치'는 젊은 남성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인터넷 속어인 한남충(한국남자벌레) 이름을 딴 한남패치는 성매매와 데이트 강간을 했다는 남성들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사이트들에 올라온 게시물은 대부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헛소문이었다. 경찰은 30일 강남패치 운영자 정모(여·24)씨와 한남패치 운영자 양모(여·28)씨를 체포해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강남패치 운영자 정씨는 단역 배우와 쇼핑몰 모델 등으로 일하다 3개월 전부터 임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자주 다니던 서울 강남의 클럽에서 알게 된 중견기업 회장의 외손녀 A씨에게 질투심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정씨가 클럽에서 들은 소문을 바탕으로 A씨를 헐뜯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 강남패치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정씨에게 네티즌들의 제보가 쏟아졌고, 정씨는 제보받은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이트에 올렸다.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씨는 "훼손될 명예가 있으면 날 고소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에도 "신상을 폭로당한 사람들이 특별히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지만,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경찰에 당부했다고 한다.

한남패치 운영자 양모(여·28·무직)씨는 자신을 성형수술한 남자 의사에 대한 앙심 때문에 범행을 했다. 양씨는 지난 2013년 6월 30대 의사 B씨로부터 광대뼈를 깎아내는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이 잘되지 않아 5차례 재수술을 받았다. 양씨는 B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B씨도 양씨를 맞고소했다. 양씨는 법정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 증가와 불면증, 우울증을 얻게 됐다. 그러던 중 양씨는 강남패치를 보고 "B씨처럼 비양심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남자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남자들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며 한남패치를 개설했다고 한다.

정씨와 양씨는 외국 회사인 인스타그램의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국내 경찰에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인스타그램 운영사인 페이스북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제시했다. 페이스북 측이 정씨와 양씨의 회원정보와 IP(인터넷주소)를 경찰에 제공하면서 이들의 꼬리가 밟혔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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