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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졸았다고 장관 처형…공포에 떠는 북한 엘리트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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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태영호 공사 망명 뒤 본보기 숙청

김정은, 체제 이탈 용납 않겠다는 뜻

냉·온탕 오가는 즉흥적 통치스타일

“엘리트층 망명 줄이을 가능성도”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다시 공포정치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공개처형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내각의 핵심 장관인 교육상과 농업상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게 29일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교육상은 김정은 주재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끌려나갔다. 농업상은 농업정책에 대한 부진을 이유로 ‘반혁명’죄를 쓰고 처형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와 맞물린 처형 시점이 주목된다. 태 공사의 한국행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해외 공관원과 주재원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과 함께 동반 가족의 평양 소환을 지시하는 등 직접 대책을 챙겼다. 평양 권력 핵심 엘리트들의 체제이반이나 이탈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뜻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권력 내부의 엘리트 세력에 대해서도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신호탄 성격의 본보기식 처형”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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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과 군부에 머물던 처형 대상이 내각 전문부서로까지 확대한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에 대한 숙청과 이듬해 12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등 김정은 집권 5년간 이뤄진 숙청은 대개 당의 핵심이나 고위 군인에 한정됐다. 이번 처형은 내각의 전문관료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경고란 얘기다. 식량난 악화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질 경우 노동당 정책부서는 물론 내각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7년 서관희 농업담당 당비서와 김원진 농업위원장을 숙청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식량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정부 당국의 평가다. 한동안 호전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다시 악화됐다는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보고서에서 7월 북한 취약계층 45만7000여 명에게 지원한 식량이 379t에 불과(1인당 하루 27g)했다고 밝혔다. 2011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왔다. 한 탈북자는 “북한 가족과 통화했는데 최근 산자락에 조성한 다락밭에 김정은 지시로 묘목을 심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식량 걱정이 더 늘고 체제 반감이 커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즉흥적 통치스타일도 공포정치가 계속되는 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장에서 그는 책임자인 이병철 군수공업부 부부장과 포옹하고 맞담배를 피우는 신임을 보였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간부는 졸거나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처형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할 때도 이런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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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박 대통령 "북 도발시 자멸로 이어지게 응징"



공개처형과 엘리트 탈북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언급에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의 성격은 예측할 수 없다”는 식의 공개발언을 했고, 체제 균열이나 자멸까지 지적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민생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동요 가능성이다. 평양에선 공개처형을 비롯한 공포정치가 번져가면서 누구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 체류 엘리트의 경우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권력 핵심축이라던 이른바 ‘빨치산’ 혈통마저 체제를 등지고 한국행을 택하는 현실 때문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해외에 체류하는 북한 공관원이나 무역기관 간부들이 제 발로 한국이나 서방의 외교공관에 걸어들어오는 망명 사태가 더 나타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이영종 기자 lee.youngj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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