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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13년 전 오늘…유리천장 타파한 엘리트vs 정치싸움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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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첫 여성 헌법재판관 탄생…헌법재판소장 지명됐다 여야 갈등으로 철회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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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석 전 헌법재판관. 그는 2003년 8월19일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관으로 임용됐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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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19일 한국의 최초 여성재판관이 탄생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전효숙 당시 특허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순천여고를 나온 전 전재판관은 1973년 이화여자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판사로서의 커리어는 순탄했다. 당시 전 전재판관과 함께 일한 동료 판사들은 그를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으로 판결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특허법원 부장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한 보수지에서는 "우리나라 판사 비율이 11%가 넘는 상황에서 여성 헌법재판관이 임명된 것을 환영한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지명되기 5개월 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임명된 상황이었다. 여성 법조인의 법조계 '유리천장 깨뜨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전 전재판관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뜻밖에도 행정수도 이전 문제 때문이다. 이듬해 노무현 정부의 제1공약이던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인지를 가리는 판결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위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 전 전재판관은 다수 의견에서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판결 때문에 전 전재판관은 당시 야당 및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세력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년 8월16일 노 전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후임으로 전 전재판관을 지명한 뒤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진보 진영에서는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되는 것에 크게 환영했지만 일부에선 반발이 심했다. 노 전대통령이 2008년 임기를 마치는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인사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앉히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왔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절차적 문제. 전 전재판관이 지명되기 직전 헌법재판관을 사임한 것 때문이었다. 전 전재판관은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6년을 보장받고 후임 재판관 지명을 위해 청와대와 상의 후 사직했다.

조순형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헌법 111조에 명시된 '헌법재판소장은 국회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 한 사람을 지정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전 전재판관이 사임해 민간인 신분이라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한나라당도 조 전의원 논리에 동참했다.

이후 국회에서는 절차를 보완한 후 국회 표결에 붙일 것을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4개월 넘게 전 전재판관 임명건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여당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을 강해하려 하자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해 표결을 막았다. 결국 그해 11월 노 전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전 전재판관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행정수도 위헌 결정 후 전 전재판관은 서울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국회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을 정치로 풀기보다 헌법재판소에 무조건 맡겨서 해결하려는 자세는 헌법재판소에 부담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장 지명 철회 이후 사퇴의 변에서 "일부 의원은 독자적인 법리만 진리인 양 강변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보정한 절차도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임명동의 처리안 표결이 무산된 데 대해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 계속했다"며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뤄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 전재판관은 이듬해인 2007년 모교로 돌아갔다. 2015년부터 이화여대 법학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3년 여성 최초로 4기 양형위원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양형위원회는 양형 설정 기준을 정하거나 변경하기 위해 대법원에서 별도로 설치한 기구다.

이미영 기자 my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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