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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자신의 존재도 의심해야 하는 미래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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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vs 현실, 명확히 구별해 낼 수 없어..
..인간 인지능력, 스스로 뛰어넘을까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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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생각해 보자.

만약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내가 본 것, 들은 것, 주변 사람과 환경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더 나아가, 내가 인간이 아니고 가상현실 속 캐릭터라면?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서 “당신은 사실 인간이 아니고 가상현실 속 캐릭터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물리적 감각을 가진 자신이 가상인물이라고 쉽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슬프고 웃고 행복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가진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니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영국 시간으로 22일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유명 과학교육자이자 방송인 빌 나이(Bill Nye)는 최근 방송에서 "정교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이라면 인간은 결코 실제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천체물리학자이자 대중과학운동가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도 한 콘퍼런스에서 "가상현실을 구별 못 해낼 확률이 높다"며 동의했다. 같은 자리에서 테슬라 모터스 CEO 엘론 머스크(Elon Musk)도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엘론 머스크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인지능력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있어도 어차피 인간은 인지할 수 없다.

만약에 태어나서 한 번도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외부세계의 존재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이가 스스로 외부세계를 상상하거나 인식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인간도 이와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 인지능력의 본질적인 한계로 그 밖의 세계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인간의 인지능력을 의심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그 의심 끝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결론 내렸다.

데카르트는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진짜인지 의심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조차 '악마의 속임수'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가정도 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것들을 제외하다 보면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명확한 진실이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명확한 진실이 하나 남았는데, 그것은 '의심하고 있는 주체인 자신의 존재'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주체인 나는 존재한다'라고 확신했다.

고도로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한 세계가 온다면 모두가 데카르트처럼 끝없는 의심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의 결론과 모순되게 생각하는 주체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물리적인 감각들도 가짜일 수 있기에 그 누구도 스스로 진짜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의 물리적 특성이나 정신적 영역 모두 재현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지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자기 존재조차 의심하는 세상이 인류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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