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 날다 유리벽에 '쾅'…매년 3∼5만 마리 새, 충돌로 죽어

환경부, 버드세이버 효과 회의적…"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방음벽과 충돌해 죽은 황조롱이 (울산=연합뉴스) 2015년 3월 29일 울산과 밀양을 잇는 국도 24호선에서 발견된 황조롱이 사체. 이 새는 도로변 방음벽과 충돌해 죽은 것으로 보인다. 2016.5.26 [한국로드킬예방협회]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하늘을 날던 새가 투명한 시설물에 부딪혀 죽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각종 소음을 줄이기 위한 유리벽과 투명 방음벽이 급증, 애꿎은 새들만 희생하는 셈이다.

대책으로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인 '버드세이버(Bird Saver)' 부착이 장려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새들의 죽음을 막도록 정부와 자치단체, 민간이 통일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 "충돌로 죽는 새 한해 3만∼5만 마리"

시설물 충돌로 희생하는 조류 규모나 실태를 조사한 시도는 아직 국내에 없다.

환경부는 전국 12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로부터 매년 조류를 포함한 야생동물 구조 건수를 받아 취합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2개 센터가 구조한 조류는 약 6천 마리로, 한해 평균 1천 마리가 넘는다.

상당수는 유리창이나 방음벽 충돌로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는 2015년에 588마리의 조류를 구조했는데, 시설물이나 전선 충돌로 다친 것이 36.6%(215마리)로 구조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울산관리센터 관계자는 "어미를 잃거나 탈진하는 등 다른 원인도 일차적으로는 시설물 충돌 때문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그나마 이들 기관에 구조되는 새들은 모두 몸집이 큰 개체들이다.

충돌 충격으로 한 번에 죽거나 다쳐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새들도 적지 않다.

한국로드킬예방협회는 한해 차량이나 시설물에 부딪혀 죽는 야생동물이 30만 마리에 달하는데, 그 중 조류가 10%는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적게는 3만 마리, 많게는 5만 마리의 새가 시설물 충돌로 죽는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나 새매 등 보호종도 수두룩하게 포함된다.

◇ 유리에 붙은 맹금류 스티커 '버드세이버'…"효과 탁월"

충돌로 죽거나 다치는 새는 대다수 유리로 된 건물 외벽이나 투명한 재질의 방음벽에 충돌한다.

새로 생겨서 깨끗한 유리나 방음벽일수록 이런 사고가 잦다. 최근에는 유리·거울과 같은 건물 외벽이나 투명 방음벽이 늘어나는 추세다.

도로 확충으로 로드킬이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류와 시설물의 충돌은 '하늘의 로드킬'인 것이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고자 도입된 것이 버드세이버다. 독수리나 매 등 맹금류 모양의 커다란 스티커를 건물 유리나 방음벽에 부착하면 조류가 천적으로 알고 피하는 효과를 노렸다.

수년 전 울산시 북구 오토밸리로가 준공됐을 때 방음벽에 새들이 충돌해 죽는 사고가 빈발했다. 당시 북구는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버드세이버를 도입했다. 이후 죽거나 다치는 새들은 급격히 감소했다.

최근에는 버드세이버에 대한 인식이 확산해 공공시설물이나 일반 민간시설 시공 때부터 적용되기도 한다.

강창희 한국로드킬예방협회 대표는 "새들이 맹금류 모양을 보고 천적으로 인지하는 것인지, 단순히 깨끗한 유리창에 붙은 X자 모양의 장애물로 인식하고 피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버드세이버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새 아닌 사람 보여주기용"…버드세이버 무용론도

버드세이버가 유일한 대책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새들은 유리에 비친 하늘이나 투명 방음벽 너머로 보이는 산을 실제로 착각해 사고를 당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버드세이버를 부착하는데, 실제로는 몇ｍ 간격으로 드문드문 붙은 그림만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버드세이버를 붙여서 충돌 사고가 줄어든 사례도 맹금류 그림의 효과라기보다는 새들이 새롭게 생긴 시설물과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가 공중에 붙은 스티커 모양을 천적으로 오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버드세이버 회의론자들의 생각이다.

환경부도 버드세이버 효과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단체의 연구나 외국 정책 사례를 봐도 버드세이버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많다"면서 "오히려 가로 4인치, 세로 2인치 간격의 격자 형태로 선을 유리나 방음벽에 그려넣으면 새가 '내가 통과할 수 없겠구나'하고 인식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아직 조류 충돌 방지에 대한 인식이 넓지 않아 버드세이버가 유일무이한 대책으로 알려졌지만, 실효성 있는 대안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통일성·실효성 갖춘 정책 개발 서둘러야

조류 충돌을 방지하려면 투명도와 반사율이 낮은 재질로 건물이나 방음벽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건물주의 사유재산권 침해, 방음벽에 대한 민원 등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거지와 가까이 있는 방음벽일수록 사람들은 투명한 재질을 선호한다.

방음벽이 투명하지 않아서 주민들이 "하늘이 안 보여 답답하다"고 불만을 제기하거나, 방음벽 뒤편이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 장소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시설물 기능과 조류 보호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지만 쉽지 않은 실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항공기 안전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는 문화재청, 사유재산의 가치와 기능이 우선인 민간 등 주체별 이해관계가 달라서 통일된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면서 "앞으로 한국도로공사, 국토부 등과 합동회의를 개최하는 등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로드킬예방협회 강 대표는 "현재로선 효과가 입증된 버드세이버를 도로변 방음벽 등에 확대 설치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장기적으로 건축법이나 자치단체 조례에 건물이나 시설물을 건립할 때 조류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디자인 적용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26일 제안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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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방음벽에 부착된 버드세이버

유리창에 부착된 버드세이버 유리창에 부착된 버드세이버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25일 울산시 남구 옥동 울산대공원 앞 울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 유리창에 부착된 버드세이버. 버드세이버는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로, 조류가 이를 보고 피하도록 해 충돌을 예방하도록 디자인됐다. 2016.5.26 leeyoo@yna.co.kr

죽은 새매의 슬픈 눈 죽은 새매의 슬픈 눈 (울산=연합뉴스) 2015년 1월 25일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국도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매. 이 새는 도로변 방음벽과 충돌해 죽은 것으로 보인다. 2016.5.26 [한국로드킬예방협회] hk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