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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어린이날 선물, 빌려서 주고 중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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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비 허덕’ 실속맘들 새 풍속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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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어린이 중고서점에서 엄마들이 자녀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고 있다. 성남=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전 경기 부천시 원미구 일대에는 강풍주의보가 발령됐다. 쉴 새 없이 부는 강한 바람 탓에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였지만 이곳에 있는 완구회사 손오공의 AS센터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장난감을 한 가득 들고 줄을 선 사람들은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부터 AS센터에 모여든 인파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고장 난 아이들의 장난감 ‘터닝메카드’를 수리하기 위해 찾아온 부모들이었다.

멀리 제주도에서 왔다는 강모 씨(38)는 “가족과 서울로 여행 온 김에 집에 나뒹구는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하기 위해 짬을 냈다”며 “비싼 장난감을 새로 사기에는 부담이 돼 수리를 해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손오공 관계자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평소의 2배가량인 하루 평균 150∼200명의 부모들이 AS센터를 찾는다”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새 제품을 구하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요즘엔 비용 부담 때문에 수리를 하는 알뜰 엄마, 아빠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젊은 부모들의 육아비용 부담이 크게 늘면서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해 다시 쓰고, 어린이날 자녀에게 중고 물품을 선물하는 ‘실속파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김모 씨(32·여)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한 온라인 장난감 대여업체에서 블록 장난감 한 세트를 빌렸다. 김 씨가 빌린 장난감은 시중에서 15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지만, 그는 2만 원 남짓에 장난감을 2주간 빌렸다. 김 씨는 “아이들 장난감이 고가(高價) 제품이 많아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대여서비스 덕분에 부담을 크게 덜었다”며 “특히 블록 같은 완구는 한번 완성하고 나면 바로 싫증을 내니 새것을 사주는 것보다 렌트해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행하는 유아용 전동차도 시중에선 30만∼40만 원을 호가하지만 빌리면 10분의 1 가격에 한 달가량을 쓸 수 있어 빌려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A어린이 중고서점에는 대여섯 명이 매장 곳곳을 돌며 중고 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겉표지와 속지 상태 등을 유심히 체크했다. 이들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온 엄마들이었다. 네 살짜리 아이를 둔 이모 씨(31·여)는 “요즘 아동전집은 20만∼30만 원이 기본인데 중고는 절반도 안 되는 값에 살 수 있다”며 “새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잘만 고르면 더 많은 선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서점 관계자는 “어린이날이나 생일 같은 기념일 선물로 중고물품을 구입하는 부모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며 “실속을 중시하는 젊은 부모들 사이에선 ‘선물=새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이미 깨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은 해마다 육아비용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공유 문화’에 익숙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현실에 맞는 현명한 소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유원모·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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