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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자소서에 "대법관 아들"…좁아도 너무 좁은 법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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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로스쿨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 통해 입맛맞는 학생 선발…내부에서 반성하고 신뢰 회복해야]

머니투데이

이진석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이 2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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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시전형에 대한 교육부의 첫 조사결과가 10일 나왔다.

그동안 법조계 일각에선 입시부정에 대한 여러 소문이 나돌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교육부는 입학취소까지 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일부 사례에서 기재하지 못하도록 한 부모 직업을 언급하는 등의 문제는 드러났다.



로스쿨 학생 선발 반영 요소…리트+영어+학점+면접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선 먼저 법학적성시험(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 리트)을 봐야 한다. 이 시험은 8월 말에 있는데 성적은 한 달쯤 후에 발표된다. 이 성적과 자신의 대학교 학점, 토익 등 어학 성적을 기본으로 학교마다 자소서, 면접 등을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리트는 로스쿨 교육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소양을 측정키 위해 마련된 시험이다. 시험 과목은 언어 이해와 추리 논증, , 논술 세 과목으로 구성된다. 법학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어서 법에 관련된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리트 성적과 영어 점수, 학점이 정량 평가의 3요소다. 이것들은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로스쿨을 지원하는 학생이라면 학점이 좋은 경우가 많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주로 리트 아니면 자기소개서와 면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로스쿨에선 리트 점수를 신뢰하지 않는다. 법학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트가 법학에 대한 시험이 아닌 이유는 사시 유경험자와 무경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수험생들의 무리한 법학 선행 학습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정작 리트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잔뜩 뽑아 놨더니 법률 공부를 못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서울 소재 모 로스쿨의 특정 기수는 입학 때 장학금을 받았던 사람들 중 높은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학점, 리트, 어학 등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대부분 법학비전공자로 입학 때는 높은 등수를 차지했지만 정작 로스쿨 공부는 사시 유경험자 또는 법학 전공자들이 유리해 졸업 때는 그들이 상위권을 휩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로스쿨에선 변시합격률 경쟁 때문에 이미 법 공부를 한 사람을 뽑고 싶어한다. 사시 유경험자나 기존 법학 전공자 등이다. 그러나 법학 실력과 리트가 무관하다는 생각이 드니 결국 남은 건 자기소개서와 면접이다.

로스쿨들은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 정성평가 과정에 집중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한다. 젊은 학생들을 주로 뽑거나 학점이 높은 학생을 선호하는 등 취향은 다양하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매해 자신이 원하는 로스쿨에 그 전 해 어떤 학생들이 입학했는지 경향을 알아보는 것은 필수다. 학점이 낮은데 고학점을 원하는 로스쿨에 지원하면 떨어진다는 사실은 다년 간 실제 사례로 입증됐다.

자소서 부모기재 금지에도 위반 나와…"좁아도 너무 좁은 법조계"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서 학생들은 자소서에 부모의 이름이나 신상을 기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기재 금지가 고지됐음에도 지원자가 이를 위반한 경우도 7건이나 됐다. 현재 모든 로스쿨이 부모 기재 금지 등을 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로스쿨 도입 초기엔 입학 동기에 법조 집안임을 강조하거나 교수 자제인 것을 표시하는 것에 큰 문제의식이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고위층 자제들의 특혜입학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일부 로스쿨에서 자구책으로 외부 면접관과 부모 기재금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법조계는 다른 분야보다 좁은 사회다.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았지만 50대 이상 변호사로 한정하면 수 천명에 불과하다. 한 두 다리만 걸치면 지연이나 학연, 연수원 선후배 동기로 거의 다 아는 사이일 수 있다.

실제로 압력 행사 여부를 떠나 '제 아버지가 누구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을 알 가능성보다 모를 가능성이 더 많다면 굳이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법조계는 누군지 말하면 다 아는 구조다. 게다가 실제로 같이 만났거나 연수원 선후배 또는 학교 선후배로 엮여 있다. 지원자 입장에선 언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말만 하면 면접관이 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조계가 좁으니 서로 알고 있을 것이며 입시 부정이 있을 거라는 의혹이 힘을 발휘한다. 최근 '금수저, 흙수저' 논란도 마찬가지다. 법조계나 사회고위층 자녀가 금수저라고 불리며 로스쿨에 입학하기 쉬울 거라는 의혹이다.

신기남 의원의 아들에 대한 '졸업시험 압력'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아들은 졸업시험에 떨어졌는데도, 신 의원이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의혹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법조계도 의견 분분 "로스쿨 전면 재검토" Vs. "심각한 문제 없어"

이번 사안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의 조사·발표에 앞서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등 변호사 133명은 지난달 로스쿨 입시 전수조사 결과 중 대법관 자녀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들은 "전·현직 대법관 자녀가 로스쿨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을 기재했다면 '법조인 선발의 공정성'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은 성명을 내고 "부정한 방법으로 판사가 되어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데도 그것이 증명되기 어려워 그 억울한 국민들을 외면해야 할 수밖에 없는 제도가 로스쿨 제도라면 교육부는 로스쿨의 존재 의의부터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지 않나"라며 "법조인이 될 권리를 박탈당한 학생들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개인 SNS를 통해 "교육부가 발표한 24건을 제외한 5976건의 절대 다수의 자소서에는 그런 사항을 적지 않았다"며 "절대 다수의 합격자조차 도매금으로 마치 로스쿨생 전체가 '부정입학자'이고, 자소서에 '부모 신상이나 적는' 사람들로 몰리게 됐다"고 말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도 성명을 통해 "이번 조사 결과 로스쿨은 입시 비리 등 심각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며 "향후 입시 공정성을 기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게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욱 한법협 회장은 "비리가 있으면 초강경대응을 하려 했지만 실제 발표결과 비리로 볼 수도 없고 문제된 자소서는 극소수였다"며 "앞으로 로스쿨 입시를 주도적으로 감시·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부정입학 의심사례는 6000명 중 극소수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교육부의 정밀 감사나 검찰의 수사까지도 필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로스쿨 내부에서 반성하고 신뢰 회복해야

교육부 발표를 계기로 로스쿨 부정 입학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등에서 로스쿨 개혁작업에 손을 댔지만 특히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와 함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부모의 신상을 기재하지 말라는 것을 고지하지 않은 로스쿨이 2016년 기준 7개나 된다는 것도 국민의 눈높이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로스쿨이 부모 언급을 금지했다지만 7곳은 무신경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로스쿨 교수들이 사회에서 원하는 기준에 무관심했다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외부 면접관 의무화 등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입시불공정 의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또한 정성평가인 자소서나 면접 비중을 낮추고 절대평가가 가능한 항목의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로스쿨 내부 개혁이 더딘 경우에는 결국 정부에서 나서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이번 전수조사도 교육부에서는 경고 조치를 했다. 경고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다. 로스쿨 평가에 경고 횟수를 반영시키고 입학 정원 재조정 등의 강력한 조치와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로스쿨 커뮤니티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변협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자소서에 대한 교육부 지침은 없었고 제도가 처음 도입되는 과정에서 로스쿨 자체적으로 경험이 없다보니 문제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로스쿨도 도입 후 시간이 꽤 지나 내부 문제들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침소봉대하면 안 된다"면서도 "이번 조사가 로스쿨이 변화와 개혁을 하는 좋은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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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경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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