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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의장·당지도부·상임위까지…국회의 갑은‘選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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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이하는 명함도 못 내밀어

지나친 서열화 정당정치 훼손


“초선과 재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재선과 3선의 차이는 엄청나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4ㆍ13 총선을 앞두고 부산지역 후보 유세에서 한 말이다. 선수(選數)에 따라 정해지는 국회의원의 권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국회의장부터 각 상임위원장은 물론이고 당의 지도부 인선까지 선수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이같은 선수에 따른 지나친 서열화가 정당 정치를 훼손하고 정치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각각 오는 3일, 4일로 예정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 출마 후보들은 모두 3~4선급이다.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 박지원 의원도 4선이다. 여야 3당의 19대 국회 마지막이자 현 원내대표들도 모두 3, 4선이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통상 3선 의원에게 돌아간다. 19대 국회 후반기엔 상임위 17곳 중 3곳을 제외하고 3선이 위원장을 맡았다. 국회의장에는 5선 이상이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주로 최다선 의원부터 하마평에 오른다.

물론 국회 직책이나 당지도부 자격에 선수를 규정한 성문법은 없다. 암묵적인 불문율이다. 정치권에선 “국회의원이 움직일 때 모든 기준은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더민주 한 보좌관은 “당직이든 국회직이든 무조건 ‘다선’이 기준”이라며 “(중진으로 분류되는) 3선 때 상임위원장을 한 뒤 선수가 높아질수록 원내대표, 국회 의장단 순으로 맡는 직급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다선이 ‘갑(甲)’이다. 그러다보니 법안 발의까지 선수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9대 한 재선의원은 “법안을 공동발의할 때 각 의원들은 보좌진들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하지만, 다선들이 급하면 초선을 직접 찾아와 ‘서명해달라’라고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당내외 인사권 등 영향력이 큰 다선들의 부탁을 초선들이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같이 선수에 따른 국회의원들의 서열화가 국회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민심의 반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회에서 초선 의원은 거의 존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새 인물이 당선되는 건 유권자가 정치의 변화를 원하기 때문인데 (선수의 서열화는) 그런 요구가 즉각 입법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보완 뿐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다선 의원이 공동발의 등을 요구하더라도 초선 의원이 소신껏 거부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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