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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뒤끝뉴스] 금융사기범 발 붙이지 못하는 은행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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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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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업은행은 서울 한 지점에서 보이스피싱으로 빼돌린 1,200만원을 찾으려는 40대 남성을 경찰과 공조해 현장에서 붙잡았습니다. 은행 직원의 순발력 있는 대응이 빛을 발한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금융사기범을 잡아내기 위한 은행의 촘촘한 보안시스템이 사기범을 붙잡는데 한몫 했습니다. 이날 붙잡힌 남성은 본인 통장을 금융사기범에게 빌려준 대포통장 명의인이었는데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입금한 돈을 찾아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챙길 생각이었던 겁니다. 대포통장 명의인이긴 하지만 해당 계좌의 예금주인 만큼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거죠.

그러나 이 남성은 은행 직원에게 출금을 요청한 지 10분도 안 돼 곧바로 기업은행의 금융사기 모니터링 시스템(FDS)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이 시스템은 평소와 다른 유형으로 이뤄지는 은행거래를 실시간으로 포착해내는 장치인데요. 쉽게 말해 갑자기 큰 금액이 입금되거나 평소와 다르게 입ㆍ출금이 반복되는 거래는 금융사기로 이어질 이상거래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일단 은행 거래를 중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이 시스템이 대부분의 사기유형을 잡아낼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작업도 마쳤습니다. 또 이상거래가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본부 모니터링 담당자에게 거래 내역이 전달되도록 하고, 은행 창구서 돈을 찾거나 할 땐 반드시 이 담당자의 승인을 거치도록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금융사기범들이 피해자 계좌에서 가로챈 돈을 대포통장으로 옮기는데 성공하더라도 결코 이 돈을 인출할 수 없도록 이중 삼중의 방어막을 친 셈이죠. 이 남성은 평소와 달리 자동현금인출기(ATM)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만 원의 돈이 계좌로 들어온 정황이 FDS에 의해 포착되면서 결국 꼬리가 잡혔습니다.

올해 기업은행은 이런 식으로 경찰과 공조해 올 1분기에만 금융사기범 13명을 현장에서 붙잡는 공을 세웠습니다. 지난 한 해 현장에서 금융사기범을 검거한 실적이 총 17명에 그쳤던 걸 고려하면 현장 검거 비율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겁니다. 대포통장 발급비율은 2014년 하반기 0.15%에서 올 1분기 0.04%로 급감했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금융사기의 매개가 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통장개설 때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한 덕분입니다. 최근엔 현장에 나타난 금융사기범을 신속히 잡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업무협약(MOU)도 맺었습니다.

물론 아직 자화자찬할 단계는 아닙니다. 금융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져 은행들이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사기범들이 이 틈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동안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은행 대책이 금융사기범의 뒤를 쫓아가는 경향을 보이다 보니 금융사기 피해를 키운 측면도 있습니다. 은행들이 FDS 시스템을 본격 도입한 건 지난해 초부터입니다. 2014년 말 한 시중은행에서 1억원이 넘는 돈이 무단 인출되는 금융사고가 사회문제로 번지자 그제서야 행동에 나선 겁니다. 아무쪼록 과거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보안이 아니라, 금융사기범보다 더 앞서 나간 대책으로 금융사기범을 현장에서 붙잡는 실적이 쭉쭉 올라갔음 하는 바람입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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