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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지훈의 미래세계] (3) 뉴욕 ‘하이라인’처럼…걷고 소통하는 ‘삶의 플랫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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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흥미로운 포럼이 열렸다. 스마트 시티,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주제로 다양한 미래 도시와 교통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이었다. 필자도 발표자로 나서 미래 도시의 단면들을 이야기했는데, 이런 주제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눈앞의 현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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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게 된 고가철로를 공원으로 재생해 ‘걸어다니는 도시’ 성공사례로 꼽히는 뉴욕의 ‘하이라인’. 많은 미래학자들은 기술발전과 가치관의 변화가 미래도시 형태에 영향을 미치고, ‘걸어다니기 좋은 도시’ 개념이 21세기형 도시 트렌드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욕시 공원관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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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핵심은 미래의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도시의 인구집중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미래 도시의 주도적인 형태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다. 일부는 메가시티(mega city,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초대형 도시)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구 50만명이 안되는 중소도시의 수가 크게 늘면서 이들을 연결하는 분산된 도시 인프라가 정착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SF영화들의 미래상은 인구 1000만~3000만명 정도가 초고층 빌딩들이 밀집한 지역에 몰려 살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이와 같은 메가시티가 많아진다는 주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압도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분산된 중소도시의 네트워크화가 더 현실적인 미래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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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울은 어떤 쪽일까? 기본적으로 서울은 인구 1000만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메가시티다. 그렇지만, 향후 서울의 발전방향에 대해 메가시티화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구 1000만을 넘기면서 전형적인 메가시티로 성장하던 서울은 최근 짧은 기간에 빠르게 분산화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엔 강북의 4대문 안에 집중되었던 다양한 도시 인프라가 강남 개발과 함께 강남-강북의 양대 도심체계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분당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경기남부 클러스터, 상암동 지역에서 고양시와 파주까지 연결되는 서북 클러스터, 구로와 광명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남서 클러스터 등 산업의 중심도 특성에 따라 분산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주거지역도 좀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 결과 약간 떨어져 있는 분산화된 도심을 빠르게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도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서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의 도시에서도 공통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제는 도시 규모가 계속 커지고 집중되기보다는 중심도시가 있고 그 주변의 중소도시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들 간의 연결과 네트워크가 활성화하는 형태로 도시 발전 양상이 바뀌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지방자치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며,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우에는 대형 도시가 성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최근 들어 분산도시가 활성화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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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의 경우 당분간 메가시티로의 발전양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을 높이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도시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는 도시집중화 현상이 주는 이득이 많다. 메가시티의 자연스러운 등장은 과거 도시 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현대적인 도시는 대체로 도로를 중심으로 건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이 자동차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운전을 덜 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확충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살기 좋다고 하는 도시들을 보면 자전거 이용이 편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이는 몇몇 나라들만의 경향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여기에 다양한 공유자동차 기업이 활성화되면서 아예 차를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이런 변화는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삶이 격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출퇴근할 때는 물론 가까운 식당에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가거나, 놀러갈 때 ‘차 없는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도시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 개념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워싱턴DC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도시들에서는 “걸어 다니는 도시” 개념에 맞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양한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차를 버리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시민들의 살이 빠지고,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하며, 도시의 전반적인 교통체증이 완화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량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줄고, 과거에는 몰랐던 도시의 명소들이나 공원, 소매점 등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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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중교통과 자전거, 걷기가 중심이 된 생활 패턴, 즉 “걸어 다니는 도시”를 지향하는 미국의 대도시들이 여럿 있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이 그런 도시들이다. 이들 도시는 “자동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믿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차량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16세가 넘으면 자유의 상징으로 운전면허를 땄고, 이를 축하하면서 1인 1차량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동차는 커다랗고, 비싸며, 위험한 인공 기계장치’라는 인식이 늘고 있다. 개개인이 차를 멀리하면서 건강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산은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유럽에는 오래전부터 걸어 다니기 좋은 도시들이 많았다. 중세 및 근대의 도시는 본래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소규모 시장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작은 상점과 레스토랑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걸어 다니기 좋은 도시’ 개념은 20세기 들어 자동차와 함께 광풍처럼 몰아쳤던 교외 베드타운과 다운타운 공동화 현상을 해결하고, 21세기형 도시생활 트렌드를 새롭게 만들어 낼 것이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인 가치관의 변화는 이처럼 도시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걸어 다니는 도시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성공사례는 아마도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일 것이다. 하이라인은 뉴욕 도심에 있는 길이 1마일(1.6㎞)의 공원으로, 1993년 개장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하늘 공원이다. 폐선이 된 1.45마일(2.33㎞)의 고가 철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서 2009년 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공원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에서 30번가까지 뻗어나가, 첼시 지구를 지나고, 재비츠 컨벤션센터 근처의 웨스트 사이드 야드(West Side Yard)에 이른다. 이 공원이 개장하면서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걷게 되면서 주변 상권이 발달하는 등 다양한 부수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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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비슷한 성공사례가 있다. 제주 ‘올레길’이다.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사람들이 오고 싶도록 디자인한 것이 대도시 생활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주고 있다. 큰돈을 들여서 아스팔트를 깔고, 자동차들을 위한 도로를 내고, 커다란 빌딩을 짓고 최첨단 클러스터를 만들거나 리조트를 유치한다는 멋진 계획은 사람들을 현혹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지역의 좋은 길들을 찾아내고, 걷거나 간단히 자전거를 빌려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매혹적이다. 여기에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유경제 등의 개념을 잘 엮어서 선사한다면 지속가능하면서도 경제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미래 도시를 그릴 때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도시가 가진 실질적인 가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라틴어로 평평한 땅을 의미하는 플라토(Plateu)라는 용어와 형태를 의미하는 폼(Form)의 합성어다. 보통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기 쉽도록 평평하게 닦아서 높인 땅을 말한다. 이런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차에 오르고 내릴 수 있으며, 사고 없이 기차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비행기에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는 터미널이나 배를 접안할 수 있는 부두 등도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모바일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통적인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쉽고 저렴하게 활용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수많은 공통요소들을 제공함으로써, 뛰어난 모바일 소프트웨어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렇다면, 도시를 플랫폼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종의 거대한 네트워크 형태를 갖는다. 이런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공통적인 요소를 잘 조율하는 것이 도시의 존재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도시도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도시를 플랫폼으로 본다면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도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관계를,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이끌어 나갈 것인지, 그리고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다. 어떻게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할 것인지, 환경 문제나 교통 문제, 응급대응 시스템, 상하수도와 쓰레기 처리 등과 같은 도시의 공통 인프라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을 것인지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이 플랫폼으로서 도시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미래의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인간중심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자본집약적인 건축물과 거대한 공사판을 만드는 정책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미래 도시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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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공학자이자 미래학자, 정보기술(IT) 전문가, 융합지식인이다. 교수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인터넷과 IT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거의 모든 IT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정지훈 |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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