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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리아 알레포의 마지막 소아과의사가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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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29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의 대표적 반군 거점지 알레포의 병원과 민간인 마을이 폭격당해 최소 100명 이상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알레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소아과의사도 있었다. 내전이 발발한 지 5년만에 열린 유엔 주재 평화회담도 두달동안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던 휴전선언도 이번 공습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7일 알레포의 알쿠도스 병원에 여러차례 폭탄이 떨어져 환자와 의료진 등 50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어린이들도 희생됐다. 국경없는의사회와 국제적십자사가 후원하고 있던 이 곳은 어린이 전문 병원이었다. 의사 8명, 간호사 28명이 있었고 응급실과 집중치료실, 수술실까지 갖춰 내전으로 황폐화된 알레포에서는 ‘귀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 폭격으로 병원은 돌무덤으로 변했다. 2013년부터 이곳에서 어린이를 돌보던 알레포의 유일한 소아과의사 무함마드 와심 모아즈도 목숨을 잃었다. 알레포의 한 시민은 “내 아이를 돌봐주던 의사가 죽고 말았다”며 울먹였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AFP는 모아즈가 알레포 출신으로 터키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모아즈와 함께 알쿠도스의 어린이 병원에서 일한 동료 의사 하템은 “그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알레포에 남았고 이 지역의 유일한 어린이 전문 의사(소아과의사)였다”며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며 유쾌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일하던 치과의사 한 명도 공습때문에 사망해, 이곳엔 이제 6명의 의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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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시민들이 한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알레포|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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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는 자신들이 공습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현장에선 정부군 비행기를 봤다는 목격담이 잇따랐다. 러시아도 책임을 부인했다. 지난해 9월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뒤, 러시아 전투기는 알레포처럼 반군들이 장악한 도시의 민가를 주로 공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폭격은 병원에서 멈추지 않았다. 28일에는 병원 인근 지역에 다시 폭탄이 떨어져 20명 이상이 희생됐다. 같은 날 알레포 지역 중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민간인 마을의 제과점 인근이 박격포 공격을 당해 최소 14명이 숨졌다. 정부군의 공습에 대해 반군이 저지른 보복이었다. 29일에도 알레포 반군 거점지에 있는 또다른 병원이 폭격당했고, 반군도 정부 점령지의 한 사원을 공격해 10명 이상이 숨졌다. 러시아는 29일 “알레포의 러시아 총영사관이 28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총영사관은 2013년 이미 철수한 상태여서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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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폭격당한 건물 옆으로 한 남성이 아이를 안고 대피하고 있다. 알레포|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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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판 드 미스투라 시리아 유엔 특사는 “27일~28일까지 48시간 동안 25분마다 한 명씩 숨지고 13분에 한명씩 부상당했다”고 끔찍한 상황을 전했다. 오랜 내전으로 이미 물도 음식도 의료시설도 부족해 생사의 기로에 있던 알레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알레포 시담당자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알레포는 아포칼립스(세상 종말의 날)”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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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4월 시리아 민간인 희생자 발생 추이. 2월 27일 유엔주재 평화회담 결과 휴전이 선언된 후에도 민간인 사망자는 거의 매일 발생했다. 그래픽|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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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유엔 주재로 평화회담이 열릴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2월27일 휴전이 선언됐고, 3월15일에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지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군 철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반군이 내전종식의 조건으로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정부군은 다시 반군거점지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고 반군도 반격으로 응수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휴전상태’라고 주장했으나, 정부군이 반군거점지의 어린이병원까지 폭격하면서 이제 휴전은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정부군이 의료시설과 구호시설을 ‘전쟁수단’의 하나로 일부러 공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마을을 아예 말살시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와 국제적십자사는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병원 폭격을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유엔 주재 평화협상은 중지됐다. 아사드 정권은 다음 달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유엔은 “아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무차별 폭격을 당한 반군이 협상에 나올 가능성도 적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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