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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팩트체크] 과장된 위기설…박근혜 정부발 북한 보도 오류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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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 종업원 20명 탈북하려다 막판 7명 포기”
“36년만에 북 당대회…외빈 없이 ‘나홀로 잔치’ 될 듯”
“대북제재, 북 전반에 타격…해외식당 20여곳 영업중단·폐업”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오후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보고를 마친 뒤 쏟아져나온 북한 관련 기사들입니다. 핵심은 ‘대북제재로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으며 전례없는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북관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보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겨레>가 27일과 28일 언론을 달구고 있는 국정원발 북한 보도들의 사실관계를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1. 집단 탈북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20명이 같이 행동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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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탈출 북한 해외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7일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명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은 통일부가 언론에 제공한 것인데, 이 장면이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통일부도 모른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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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간담회에서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의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과 관련해 ‘유인납치’라는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야당 의원들로부터 ‘총선용 기획 탈북’이라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었습니다. 국정원은 “종업원들이 자력으로 탈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실은 북한으로 돌아간 7명의 ‘류경’ 종업원도 탈북을 하려다가 막판에 포기했다’고 밝힙니다. 이 내용은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의 입을 통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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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사실관계를 따지기 전에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철우 의원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으로 돌아간 7명의 막판 포기’ 사실을 기자 브리핑에서 여과없이 공개한 게 적절했는지 여부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에게도 접근이 제한된 국정원 정보 공개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정보위 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해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사안의 경우 북한으로 돌아간 7명도 탈북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서 어떤 공익을 추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 알권리는 어떤 사실이 공개됨으로써 침해되는 이익보다 얻을 수 있는 공익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보장됩니다.

그동안 소위 ‘북한 인권’을 강조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에 비춰봐도 “7명이 탈북을 하려 했다”는 탈북 의사 공개는 매우 부적절합니다. 27일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7명의 탈북을 포기한 분들이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탈북 포기했던 7명은 어찌되나” 등 비판과 걱정을 섞은 반응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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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엔’이 ㅊ씨 등 20대 닝보 류경식당 여성 종업원 7명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진행한 단독 인터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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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팩트 확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류경’에서 근무하던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소속 20명의 지배인·종업원 가운데 이번 국내 입국을 주도한 지배인 ㅎ씨를 비롯한 13명은 5일 ‘류경’을 벗어나 한국행 여정을 시작합니다. 21일 보도된 <시엔엔>(CNN) 인터뷰를 보면 북한으로 돌아간 7명 중 식당 ‘수석 종업원’(조장)인 ㅊ씨는 “4월5일 지배인(ㅎ씨)이 나한테만 ‘사실은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모든 로정(이동 경로)은 국가정보원 팀장이 조직·지휘하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아무 이상 없이 남조선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ㅎ씨가) ‘20명을 나 혼자 데려갈 수 없으니 네가 도와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ㅊ씨는 “이런 사실을 부조장인 OOO 동무한테 알려줘 우선 3명이 피했다”고 말합니다. ( ▶바로가기 :‘북 송환’ 류경식당 종업원 “동료들, 지배인에 속아 끌려가”)

실제 <시엔엔> 인터뷰에 등장한 7명 가운데 3명은 지배인 ㅎ씨 등 13명이 닝보를 ‘탈출’한 5일 이들보다 먼저 사라졌지만, 이날 밤 북쪽 보위부 인사로 추정되는 남성 둘을 대동하고 닝보로 돌아왔습니다. (▶바로가기 : [더 친절한 기자들] 류경식당의 정체와 탈북의 재구성 ) ㅊ씨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팩트입니다.

북한은 이 보도 직후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내 “유괴납치·귀순강박 악행”이라며 국내 입국한 13명의 북한 내 가족들을 판문점 등으로 보낼테니 면담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통일부는 거부했습니다.

현재 북한에 있는 ㅊ씨 등 7명이 밝힌 내용의 진실을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신들은 ㅎ씨의 탈북 제안을 거부했고 ㅎ씨 등이 동료들을 속여 남조선행을 기획·실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국내에 입국한 13명은 입국 3주일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직접 탈북과 관련해 발언한 바가 없습니다. 통일부가 이들의 ‘집단 탈북’을 발표하면서 제공한 알록달록한 사진 한 장이 우리가 이들의 탈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물증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볼 때는 국정원이 “7명이 탈북을 하려 했다”는 탈북 의사까지 자신만만하게 밝히기엔 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2.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돼 당대회에 참석하는 외빈이 없다?

국정원은 간담회에서 ‘북한이 36년 전 열린 6차 당대회에 118개국 177개 사절단을 초청했던 것과 달리 아직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사절단 초청 동향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외국대표단 초청 때 내세울만한 경제 성과가 마땅치 않고 제시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이 여의치 않은 데 더해 대북 접촉을 꺼리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이번 당대회는 집안 잔치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도 최근 “대북 제재 영향으로 당대회 자금 조달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분야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기자들에게 “2월11~13일 김영철(통일전선부장) 등이 라오스 등을 방문했지만 뚜렷한 당대회 초청 외교 동향이 파악되고 있지 않다. 대북 제재 국면에서 외교적 입지가 축소됐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7차 당대회는 오는 5월6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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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언급한 북한의 6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10일 개막했습니다. 10월10일은 북한 노동당창건일로, 북한이 가장 성대하게 치르는 행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서 1·2·5차 당대회 땐 외빈 초청이 없었고, 1956년 열린 3차 당대회와 1961년 4차 당대회에 참석한 외빈은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의 공산당 대표들이었던 점을 볼 때 6차 당대회는 당 창건일과 겹쳐 외빈이 많이 초청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알고보면 당대회는 당비서 추대,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당 중앙위원회 사업을 평가, 당규약 개정 등을 하는 ‘집안 잔치’가 맞습니다.

베이징 소식통은 <한겨레>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에게 “6차 (당대회) 때는 중국 쪽이 참석을 했지만, 5차 땐 북이 초청도 안 했다”며 북한이 중국 당국자들을 초청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베이징의 한반도 전문가는 김 특파원에게 “중국이 18차 당대회 한다고 해도 조선을 초청하지 않는다. 이건 원래 당 대회 성격이 그런 것이다. 조선 내부 사정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국가전략상 경제정책상 필요에 의해 중국과 교류할 필요가 있다면 실무급 교류를 통해 중국 쪽에 통보를 할 것이다. 그건 공개되지 않겠지만, 그건 어차피 당 대회 같은 기회에 지도자급을 초청해놓고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북·중 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북한이 중국 쪽을 초청한다고 해도 중국이 초청에 응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국정원이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축소됐기 때문에 당대회 초청 동향이 파악되고 있지 않다’고 분석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식으로 포장하기 위한 국정원의 아전인수식 보고로 보입니다.

3. 대북제재 때문에 해외의 북한식당이 줄도산?

국정원은 또 “해외 북한식당은 방문객이 급감하고 경영난이 심화하면서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지의 식당 20여곳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각국의 동참으로 제재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 내용을 전하면서 “해외에 있는 북한식당의 주 고객인 한국인의 발길이 끊기며” 나타난 결과라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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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순 북·중관계에 정통한 외교부 당국자가 기자들에게 중국 내 북한식당에 대해 설명했던 내용을 보겠습니다. 이 당국자는 “실제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 이용 고객들은 다 (중국) 현지인들”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들이 앞다투어 ‘한국인이 발길을 끊어 북한식당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과장된 보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중국) 현지인들도 북한에 대한 반감과 최근 (중국의) 경제 불황을 이유로 해서 북한 식당 방문이 줄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경기가 예전만큼 좋지 않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비싼 북한식당을 찾는 빈도가 줄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식당들이 폐업하는 게 중국 쪽의 제재나 단속 혹은 북한 정부의 철수로 인한 것이라는 당시 보도들에 대해서도 ‘단순히 경제적 이유로 인한 폐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내 북한식당의 경우 중국 내 조선동포가 자금을 대고 북한이 요리사와 종업원을 보내 이익을 배분하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불황으로 북한식당을 이용하는 중국 현지인이 줄어드는 데다가 제재 분위기가 겹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한 달 여전 설명입니다. 당시 중국 내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대북제재 영향이 전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북제재 영향만을 강조하는 국정원의 설명과는 분명히 온도차가 있습니다. 또 대북제재로 국외에 있는 북한식당 출입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공무원 또는 정부의 ‘자제요청’을 받아들이는 한국민 정도로, 외국인의 경우 북한식당을 출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각국의 동참으로 제재 효과가 북한식당 운영과 직접 결부돼 나타났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북한 관련 뉴스들, 액면 그대로 다 믿기에는 허술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팩트가 확실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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