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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중력파 발견돼도 '중력자' 정체는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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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 최후의 '비밀 입자'를 찾아라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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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데이비드 라이츠 박사가 중력파의 검출 성공 사실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라이츠 박사는 기자회견장에서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중력파를 검출했습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
("Ladies and gentlemen, we have detected gravitational waves. We did it!")

중력파는 물체가 움직이거나 중력에 변동이 생길 경우, 여기서 발생한 시공간의 요동이 파동(wave)의 형태로 전달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중력파는 중력이 있는 모든 물체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힘이 극히 미약한 관계로 검출이 어려웠습니다.

이번 검출 성공 역시 거대한 천체의 충돌과 융합이라는 '빅 이벤트'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36배, 29배인 두 거대 블랙홀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태양 질량의 62배인 블랙홀로 바뀌었는데, 36+29=65이니 이 과정에서 소실된 태양 3개 분량의 질량은 빛과 열, 그리고 중력파를 만들어내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사방으로 퍼져나간 13억년 전의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했고, 지난해 9월 14일 미국 워싱턴 주와 루이지애나 주 두 곳에 설치된 정밀한 검출기(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 LIGO)에서 거의 같은 모양의 파형으로 기록되면서 마침내 공식적인 중력파 검출 성공으로 발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확실히 중력파의 검출은 21세기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성취라고 불릴만 합니다. 여기에 비견할 만한 성취라면 지난 2013년 10월 6일 발표된 힉스 입자(힉스 보손)의 발견 정도가 꼽힐 뿐입니다. 더구나 중력파의 검출을 담당하는 관측소들의 정밀도는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여,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중력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바탕으로 블랙홀처럼 보이지 않는 천체들에 대한 질량 분석 등의 연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중력파는 중력의 변화에 따라 시공간의 왜곡이 전달되는 것이지, 중력을 전달하는 파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중력이 작용하는 중력장(gravitational field)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자기장의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중력을 매개하는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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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들과 태양은 중력으로 서로 묶여 태양계를 구성하고, 또 태양계는 수많은 다른 항성계와 더불어 거대한 우리 은하의 일부를 구성합니다. 그 우리 은하 중심부에는 막대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존재해 은하 전체의 중력의 구심점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구조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도록 하는 중력의 매개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인데, 물리학에서는 가상의 이 입자를 '중력자'라고 부릅니다.

빛(전자기력)이 광자를 매개로 전달되듯 중력자는 말 그대로 중력을 전달하는 입자입니다. 중력의 작용거리는 무한하기 때문에 이 가상의 입자는 질량이 없고 광속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현대 물리학의 초끈이론에서 이 중력자의 존재가 이론적으로 도출됩니다. 초끈이론에서는 스핀(입자를 몇 바퀴를 돌렸을 때 같은 모양으로 돌아오는지를 나타내는 값)이 2이고 질량이 0인 입자의 존재가 상정되는데, 마지막 빈 자리에 해당하는 이 입자를 중력자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만약 중력자의 존재까지 확인된다면, 힉스 입자에 이어 마지막 보손(boson)에 해당하는 미지의 존재가 제자리를 찾는 것이니, 그야말로 물리학 최후의 '비밀 입자'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상의 입자인 이유는, 중력자를 찾기 위한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4가지 힘, 즉 전자기력과 강력, 약력, 그리고 중력 가운데 중력은 가장 약한 힘입니다.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는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출하기 위해 길이 4km나 되는 거대한 진공터널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중력파가 거대한 은하단을 끌어당긴다고 보기에는 힘의 스케일의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가 중력자와 같다고 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밖에도 중력파와 중력자가 같지 않다는 '심증'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더 있지만, 지나치게 복잡해지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중력자를 찾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막막할 뿐입니다. 중력자의 질량을 0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력자의 질량에 대한 상한선만은 나와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른바 '무거운 중력자 이론'입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형목 교수에게 문의한 결과, 그 값은 질량이 매우 작기로 유명한 소립자인 중성미자(뉴트리노)의 질량 상한선과 비교해도 약 10의 20승(1000000000000000000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작은 값일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그러나 이 작은 값에 물리학자들은 재미있게도 '무거운'이란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작은 입자를 찾기 위한 정밀도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중력자의 직접적 관측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최후의 입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다만 '무거운 중력자 이론'은 지구와 달의 세차운동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중력장의 차이를 계산해 기존이론에서 예측된 값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검증이 가능합니다. 과거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 두고 온 반사경을 향해 지구에서 레이저를 쏘아 되돌아오는 시간을 높은 정밀도로 계산해서 그 차이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방법을 통해 중력자의 질량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얻게 된다면 또 한 번 의미 있는 성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력자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상엽 기자 scien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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