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봉가리 '마리아 하우스']
아들이 부모님 위해 지은 집, 수녀 누이 두명도 함께 살게…
가족 구성원 각각 삶은 따로… 3m 통창에 마을이 쏙 들어와
김승회 서울대 교수 |
"아버지, 이제 실버타운으로 가시지요. (어머니가) 식사 걱정, 청소 걱정 안 하셔도 되는."
일흔둘, 연로한 연세에도 아버지께 삼시 세 끼 따뜻한 밥을 지어 올리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자수성가한 아들은 이렇게 제안했다. "싫다. 칠십 평생 산 데를 두고 어딜 간단 말이여? 눈 감을 때꺼정 여길 안 떠날 테여." 일언지하에 거절한 아버지. 대안은 오래된 시골 부모님댁을 허물고 바로 옆 터에 현대식 주택을 짓는 길밖에 없었다. 수녀인 두 누이도 몇 년 뒤 은퇴하고 함께 살 수 있는 집으로. 아들은 돈 들이더라도 좋은 자재로 제대로 짓고 싶어 유명 건축가를 찾아갔다. 김승회(49·경영위치 대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였다.
올 초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봉가리에 들어선 '마리아 하우스'의 탄생 배경이다. 사업가 이모씨가 부모님과 수녀 누이 둘이 은퇴 후 함께 살 집으로 김 교수에게 의뢰해 설계했다.
"아들이 부모 집 설계를 의뢰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더군다나 누님과 함께 살 집을. 가족애가 각별했지요." 이 집에서 만난 김 교수는 "노부모와 중년 자식의 동거라는 특수한 형태의 '가족 재결합'을 고려해 사생활 보호를 최대한 고려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주택 30여채를 설계하면서 '집의 전형(典型)'을 모색해왔다.
집의 첫인상은 시골로 갓 전학 온 세련된 서울 학생 같은 느낌이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한가운데, 수도권 신도시 주택단지에 있을 법한 현대식 디자인의 건물이 이페(목재의 일종)와 징크(아연판)로 외벽을 두른 채 서 있다. 연면적 362㎡(약 109평)의 2층 집.
지붕이 경사진,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2층짜리 작은 동(棟) 5개가 통로로 연결돼 한 집을 이루는 구조다. 앞쪽으로 한 동이 있고, 뒤로 네 동이 약간 둘쑥날쑥 배치돼 있다. 각각의 동에 부모님 방, 서재, 누님 방, 주방 등이 분리돼 들어가 있다. 한 집 안에 작은 집이 몇 개 들어 있는 형상. 이 작은 집들 사이로 통로와 중정이 생겼다.
최근 몇 년간 김 교수가 화두로 삼고 있는 "집은 집들이다"는 주택관을 충실히 실천한 집이다. "식구들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룹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아를 담는 집을 원하고 이를 구현한다면, 가족이 함께 기거하는 집은 '집들'의 집합체가 되는 거죠."
집 뒤에서 본 모습. 서로 다른 형태의 동(棟) 4개가 연결돼 있다. |
건축주는 오래 떨어져 살아 삶의 패턴이 다른 부모님과 누님의 공간을 완벽히 분리해주길 원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1층은 부모님 공간으로, 2층은 누님 둘의 공간으로 나눴다. 각 층에 주방과 화장실을 각각 배치해 서로 공간을 침범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 방엔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을 달아 한옥의 아늑한 느낌을 살렸고, 성직자로서 조용하고 검박한 생활이 몸에 밴 누님들 방엔 장식을 배제했다.
창호지 미닫이문으로 된 1층 부모님 방. 한옥의 개방감을 응용했다. |
그렇다고 닫힌 집은 아니다. 남쪽으로 높이 3m가 넘는 통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방마다 프레임이 다양한 창문을 둬 개방감을 추구했다. 창 덕분에 채광이 잘 돼 '밝고, 따뜻하고, 시원한 집'이라는 어르신들의 현실적인 바람도 실현됐다.
촌로(村老)들에게 개성 있는 디자인이 불편하진 않을까. "늘그막에 '명랑한' 집에 사니 좋잖소." 놀러 온 이웃에게 집을 구경시켜주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의 뒤로 중정에 어지럽게 널린 빨래가 나부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의 중정과는 어딘가 부조화다.
"솔직히 복잡하게 살림을 널어놓고 사는 시골분들 스타일에 맞는 집일까, 염려했어요. 그런데 너른 창으로 평생 사신 마을을 내려다보실 수 있어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만족합니다." 효심 가득한 건축주는 이 집을 "힘들게 사신 어머님에 대한 보답"이라 했다. 새가 노래하는 마을, 봉가리(鳳歌里)의 사모곡(思母曲)이다.
[화성=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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