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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수업 50분간 패스 연습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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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업그레이드 ③ 달릴 곳이 없어요

달리기 하기도, 축구 하기도 참 애매한 삼각형 운동장 8일 서울 신남중학교 운동장에서 4개 학급 130여 명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운동장은 좁아 100m 달리기 코스가 안 된다. [강정현 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중·고교 운동장에서 흰색 상의와 청색 바지를 입은 200여 명이 북적였다. 모두 체육 수업을 나온 학생들이다. 매주 월요일 2교시는 고교 네 학급, 중학교 두 학급의 체육 수업이 겹친다. 두 학교는 정규 축구장의 3분의 2 면적(5204㎡) 정도인 맨땅 운동장을 함께 쓴다. 체육관 등 실내 시설은 없다.

 수업이 시작되자 반별로 농구·핸드볼·배구·축구·배드민턴·멀리뛰기를 했다. 비좁은 운동장 탓에 경기 대신 패스 연습에 치중했다. 배구 토스를 연습하던 고2들은 친구와 부딪힐까 주변을 둘러보다 공을 놓치기 일쑤였다. 농구장의 고3들은 바짝 주차된 차들 탓에 코트의 절반만 썼다. 18일 오전 9시 기자가 현장 취재한 모습이다.

실내체육관 없어 축구·배구·농구 뒤엉킨 맨땅 운동장 1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중·고교 운동장에 6개 학급 200여 명이 모였다. 학생들을 양팔 간격으로 세워보니 운동장이 꽉 찼다. [변선구 기자]


 축구 연습을 하던 중1 최모군은 “형들이 맞을까봐 공을 맘껏 찰 수도 없다”며 “만날 패스 연습만 하고 언제 제대로 시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체육부장교사는 “배구·핸드볼·배드민턴은 실내에서 해야 효율도 좋고 부상도 적지만 체육관이 없어 어쩔 수 없다”며 “비만 오면 교실에서 동영상 시청을 해야 하고 마음껏 공 한번 못 차는 아이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곳처럼 체육 시설이 열악한 학교는 몇 곳이나 될까.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1만1000여 곳 중 전용 체육관을 갖춘 곳은 7.9%, 강당 겸 체육관이 있는 곳은 52%다. 나머지 40%는 변변한 실내체육 시설조차 없다. 운동장 사정도 열악하다. 천연·인조 잔디장을 갖춘 학교는 2027곳(17.6%)에 그친다. 수영장은 176곳(1.5%)만 있다.

 체육관·수영장과 잔디 운동장을 대부분 갖춘 미국과 1990년대 전체 학교 80%에 체육관, 초등학교 90% 이상에 수영장이 설치된 일본에 비하면 초라한 현실이다. 유웅상 교육시설환경연구센터 소장은 “장마가 길고 기온차가 심한 한국에선 체육관 등 실내체육 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설이 변변하지 못하다 보니 체육수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서울 양천구 A초교는 일주일에 3번 체육 수업이 편성됐다. 하지만 2주에 한 번은 운동장 대신 교실에서 이론 수업을 한다. 좁은 운동장을 여러 반이 번갈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교감은 “궁여지책으로 빈 교실을 간이 체육실로 개조했지만 공간이 좁아 농구대도 둘 수 없다. 스트레칭 때만 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학생 운동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의 조사에서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과 운동장이 있는 고층 학교 남학생의 하루 운동시간은 각각 84.6분, 124.8분으로, 40분 이상 차이 났다.

 경희대 전병관(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라면서 “공간과 날씨에 따라 제약받는 상황에선 스포츠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운동 효과도 반감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학생들의 체력은 저하되고 있다. 서울 지역의 남자 중학생 오래달리기(1600m, 2009년 9분23초) 기록은 10년 전에 비해 40초가량 떨어졌다. 제자리멀리뛰기(남고생)는 236.3㎝에서 216.8㎝로 짧아졌다.

 교과부는 올해 초·중학교 체육수업과 스포츠클럽 확대를 추진하면서 “시설이 부족하면 인근 사회체육 시설을 적극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학교장들은 “말처럼 쉽지 않은데 교과부가 탁상행정을 한다”고 부정적이다. 서울 강북의 B초교 교감은 “학생 전체가 모이는 체육대회를 열기 위해 구청에 운동장·체육관 대여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며 “어쩔 수 없이 올해는 체육 대회를 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양옥(서울교대 체육교육학 교수) 한국교총 회장은 “단기적으론 지자체와의 협조를 통해 학생들이 사회체육 시설을 활용하게 하고 장기적으론 열악한 학교 체육 시설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성시윤·천인성·윤석만·이한길·김경희 기자

성시윤.천인성.윤석만.이한길.김경희 기자 copip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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