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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계파인 듯 계파 아닌 계파 같은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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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의 정치학 2000년대 들어 변화무쌍…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의 이익 위해 싸움만



#1 대구·경북(TK) 지역 정가에서는 최근 진박(진짜친박)-가박(가짜친박) 논쟁이 가장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대구 달서병이다. 남호균 청와대 민원비서관실 행정관이 사표를 내고 친박계로 소문난 조원진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조 의원은 재선 의원으로 원내 수석부대표직을 맡고 있다. 당·청·정 가교 역할을 하고 있어 ‘친박 수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부 친박계 인사 사이에서는 ‘과연 진박일까’라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박근혜 후보의 경선 캠프에서 활약한 데다 ‘문고리 3인방’(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남 전 행정관이 이 지역에 출마를 선언하자, 누가 ‘진박’이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이 지역구뿐만 아니라 다른 TK 지역구에서도 누가 과연 진짜 친박이냐를 놓고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2 11월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국가장이 국회에서 끝나고 난 뒤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새정치민주연합 친노(친노무현) 의원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친노 또는 범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다. 비노로 분류되는 의원은 이날 정책토론회에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지난 10월 29일 안철수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비노 의원들만 참석했다. 친노 의원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내에서 계파끼리의 ‘칸막이 현상’은 여당 대 야당에서도 보인다. 여야 의원이 함께 주최한 정책토론회가 아니면 최근 여당 의원의 정책토론회에서는 야당 의원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야당 의원의 정책토론회에서는 여당 의원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계파 내부의 끼리끼리 문화가 여의도 국회 내부에 칸막이를 하나씩 걸쳐놓은 형국이다.

총선 공천 받으려면 자신의 색깔 보여야

국회 안팎에서 이렇게 ‘누가 진짜냐’를 확인한다든지 끼리끼리 만나며 상대 그룹과 갈등하는 모습은 계파정치의 일단면을 보여주는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여당은 친박(친박근혜)과 친이(친이명박)가 계파 갈등의 중심축이다. 친박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놓고 ‘진박’과 ‘가박’이 각 지역구별로 경쟁하고 있다. 야당은 친노와 비노로 계파가 나눠져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은 자신의 색깔과 노선을 한층 더 분명히 하고 있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재당선되려면 우선 당의 공천을 확실히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파 수장의 구심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YS의 서거 이후 정치권에서는 다시금 계파정치가 부각됐다. 한국 정치 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계파가 상도동계과 동교동계이고, 한 축의 수장인 YS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한국 정치의 무대에서 계파정치가 1막1장의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1970~90년대 한국 정치를 풍미한 계파정치의 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양대 계파의 뿌리는 1955년 창당한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로 거슬러올라간다. 구파에는 윤보선·신익희·조병옥 등의 거물 정치인이 있었고, 신파에는 장면·박순천 등의 정치인이 있었다. 1960년 4·19 의거 이후 신·구파의 갈등은 정점에 달했고, 이후 이합집산이 이뤄졌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YS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신민당 대선후보로 맞붙으면서 이때부터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양대 계파의 산맥이 형성됐다.

1990년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이 통일민주당·공화당과 3당 합당함으로써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야당 내 경쟁관계에서 여야 간 경쟁관계로 바뀌었다. 당시 여당에서는 민정계-민주계-공화계라는 세 계파가 형성됐다. YS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서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당시 총재를 중심으로 거대 계파가 만들어졌다. 이 전 총재가 두 번 대선에서 실패했고 박근혜 대표 시대가 열렸다. 이후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가 형성됐다. 최근에는 친박계와 무대계(친 김무성계)로 양대축이 바뀌었다.

반면 동교동계는 DJ가 대통령이 되면서 정점을 지났다. DJ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차기 대권을 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계가 형성됐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친노 외에 DY계(친 정동영계)·GT계(친 김근태계)·동교동계가 있었고, 야당이 된 후에 친노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와 정세균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범친노가 주류를 형성했다. 친노계에 맞서 동교동계·김한길계·안철수계 등의 비노계가 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거의 30년간 계파정치의 정형을 보여줬다면, 2000년대 들어 계파정치는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것은 닮아 있지만 더욱 세분화되고 변화무쌍해졌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각각 YS와 DJ라는 카리스마적 리더십 아래 뭉쳐 있었다면 현재의 계파는 실제로 계파적 특성이 많이 약해졌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박계가 옛날의 계파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친노는 그 계파 특성의 절반을 갖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친이나 비노는 계파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해석이다.

YS와 DJ 같은 카리스마 리더십 없어

정치전문가나 정치인들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과거 계파정치와 현재 친박·친이, 친노·비노라는 계파정치의 큰 차이점을 대의명분에서 보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같은 옛날 계파정치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시대적인 대의명분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협력했다”면서 “하지만 지금 친박과 친이, 친노와 비노 같은 계파정치를 보면 대의명분은 보이지 않고 계파의 이익라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친노인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과거 상도동계나 동교동계 시절에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도동계였던 3선의 정병국 의원(새누리당)은 “과거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군사독재와 맞서기 위해 정치지도자들이 지역 출신 정치인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고 인간적인 관계로 결집했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하지만 지금의 계파는 아무런 대의명분이 없다”면서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에게 공천을 줄 사람만 바라보고 이들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할 뿐 국민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계파정치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정 의원의 주장이다.

계파를 운용하는 방식에서도 과거 계파정치와 현재 계파정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최진 소장은 “과거 계파정치에서는 협력과 경쟁의 구분이 명확해 투쟁할 때는 투쟁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계파정치에서는 경쟁과 협력의 경계선이 모호해 항상 싸우는 느낌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과거에는 야권에서 투쟁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내고 빅딜을 함으로써 ‘정치’가 가동됐지만 지금은 큰 싸움은 없고 작은 싸움만 있어 단지 발목잡기나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병국 의원 역시 옛날과 비교하면 협력과 경쟁의 방식이 달랐음을 지적했다. 정 의원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투쟁의 대상인 군사독재 세력과도 대화를 하고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면서 민주화라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지금은 같은 당내에서 의원들끼리 밥을 먹지도 않는다”면서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출발점인데, 아예 교류가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 계파정치의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인사들도 있다. 특히 야당 일각에서는 YS나 DJ의 리더십을 부러워하고 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지금 친노와 비노의 갈등을 보면 문재인 대표가 그만한 리더십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계파 갈등의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기정 의원은 “리더십이 문제가 아니라 팔로어십의 문제”라면서 “대표로 뽑히면 대표를 따라줘야 하는데, 계속 흔들면서 야당에서는 계속 지도부가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는 상황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YS나 DJ 같은 계파 수장의 리더십을 정점으로 한 계파정치는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계파정치의 장점인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상대당과의 정치협상과 당내 설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계파정치의 단점인 계파 이익을 둘러싼 충돌 양상만 부각되고 있다. 최진 소장은 “군사독재 시절에는 이에 맞서려면 야당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문재인 대표 같은 경우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냥 밀고나가고만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의 표현에 의하면 문 대표는 ‘카리스마가 없는 지도자가 카리스마를 발휘하려 한다’는 것이다. 야당 지도자의 리더십이 현저하게 약화됨으로써 총선에서 참신한 신인 정치인의 등장이 어려웠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옛날 YS나 DJ가 발탁한 신진 정치인들은 후에 대통령과 국회의장, 그리고 대통령 후보, 당내 중진 같은 유명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계파 간의 이익 다툼으로 이들 ‘신선한 정치인의 수혈’이 더 이상 이뤄지 않게 된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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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참신한 신인 등장 어려워

군사독재시대에서 민주화시대로 바뀜에 따라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수직적 리더십에서 서서히 수평적 리더십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앞으로는 YS나 DJ 같은 특별한 지도자가 또 나와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제는 대통령 후보든 당 대표든 YS나 DJ 같은 카리스마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기대치를 낮추고 합리적 리더십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역시 계파 수장의 리더십은 현저히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진 소장은 “김무성 당 대표나 서청원 최고위원이 있으나 계파 장악력은 많이 떨어졌다”면서 “(친박계는) 최고 리더인 박 대통령에게 의지하고 있긴 하지만 정치력 부족으로 답답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명예교수는 “친박도 청와대에 의지하는 것이지 더 이상 계파라고 할 수 없다”면서 “대통령 임기가 다하게 되면 결국 친박계도 모래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김 정치는 YS의 서거로 일단락됐다. 정병국 의원은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지역에 중심을 둔 계파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정 의원은 “상대적으로 지역주의 정당이라는 문제점을 남기긴 했지만 YS는 화합과 통합을 유언으로 남기고, 이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화합과 통합이 한국 정치의 앞으로의 과제라는 것이다.

갤럽이 11월 24~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김을 포함한 3김정치에 대해 ‘좋은 영향’은 59%이었고, ‘좋지 않은 영향’이 20%에 불과했다. 3김의 영향력 역시 우리나라 정치에 ‘여전히 남아 있다’가 54%, ‘이제는 없다’가 39%(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전화조사원 인터뷰, 응답률 17%)였다. 아직도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3김정치가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YS가 서거하기 한 달 전인 지난 10월 중순쯤 <내일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3김시대의 정치’와 비교에서 응답자의 24.0%만 ‘나아졌다’고 답했다. 32.0%는 ‘나빠졌다’고 답했고, 35.7%는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3김정치가 낳은 계파정치는 최근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는 상황이다 보니 존속 여부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진 소장은 “공천에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을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계파정치는 장점보다 폐해가 더 크다”면서 “계파는 앞으로는 공부하는 그룹이나 연구모임 등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돈 명예교수는 “이제 계파정치는 끝내야 한다”면서 “계파보다 정책과 정치철학으로 연대하는 합리적인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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