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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어두워져야 무리지어 외출" 공포 시달리는 미국 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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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 후 이슬람혐오증 확산…'안전수칙' 공유하기도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플랫폼 끝에 서지 말고 가능하면 벽에 기대서세요" "어두워진 후에 여러 명이 함께 걸으세요"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세요."

다소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조언들은 최근 미국에 사는 무슬림(이슬람 교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거나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신도에게, 부모가 등교하는 자녀에게 당부하는 '안전수칙'들이다.

최근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서 무슬림에 대한 증오 범죄가 빈발하면서, 무슬림의 일상을 공포와 불안이 잠식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파리 테러 이후 미국 내 무슬림, 특히 히잡(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을 쓴 여성들은 각종 언어·물리 폭력의 표적의 됐다.

미국 내 이슬람 권익 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에 따르면 최근 뉴욕 브루클린에서 두 명의 무슬림 여성에게 한 남성이 접근해 팔꿈치로 밀치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들의 '사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

이 남성은 협박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이처럼 경찰에 입건된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증오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무슬림 여대생 페리다 오스만은 지난 24일 수업을 마치고 휴대전화 통화를 하면서 집에 가던 도중 얼굴에 누군가의 침세례를 받았다. 침을 뱉은 사람은 "테러리스트,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후 군중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안 그래도 그날 지하철에서 세 번이나 경찰의 가방 수색을 당했던 오스만은 "더이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듯한 끔찍한 고독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오스만은 그러나 그 사건을 어서 잊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혹시 경찰이 무시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고하지 않고 넘어갔다.

역시 뉴욕에서 태어난 무슬림 대학생 사메야 오마르헤일도 며칠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시험 시간에 늦어 달려가다 넘어졌는데 한 남성이 넘어진 그녀 옆에 담배꽁초를 던지며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오마르헤일은 "속으로 너무 겁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CAIR 뉴욕 사무소의 사디아 칼리케는 "9·11 테러 이후 무슬림 사회를 대상으로 한 반발심이 이렇게 커진 것은 처음"이라며 "두렵다"고 말했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유독 이번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증오범죄가 빈발하는 데 대해 무슬림 사회는 시리아 난민 수용안 등에 대한 공화당의 거친 반응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 무슬림에 대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 등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CAIR은 "이러한 발언들이 반(反) 이슬람 감정을 부추겼다"며 '이슬람혐오증의 주류화'라고 표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슬림 사회도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CAIR은 모스크에 철제 보호막을 설치하고 안에서 잠기는 빗장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모스크 공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팸플릿을 제작해 배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무슬림 여성이 반드시 알아야할 5가지 호신법' 등이 공유됐다. 이 안에는 아침에 옷을 입을 때는 위급한 상황에서 달아나기 편한 옷을 입으라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아랍계미국인협회의 린다 사르수르는 "이슬람혐오증이 미국의 무슬림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걱정스럽다"며 "쉽사리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아 오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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