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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메르스 예산은 ‘언터처블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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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4억원에서 내년 560억원으로 무려 1500% 증액



1545.9%.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 대응·대책 예산’의 증액률이다. 올해 예산 34억원에서 내년 예산 560억원으로, 526억원이 증액됐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진행되는 ‘계속 사업’의 경우 예산은 증액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증액률이 한 자리 숫자만 돼도 해당 부처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관련 예산은 무려 1500%를 넘는 증액률을 나타냈다.

어마어마한 증액률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이 예산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언터처블(untouchable)’ 예산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정부에서 내놓은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관련 예산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고 있어 이 예산은 국회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를 거쳐 예결위·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초 메르스 확산으로 신종감염병에 대한 대응·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예산결산소위원회 심사 참고자료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의 삭감 의견은 없다. 오히려 거꾸로다. 여당인 김재원 의원은 만성질환사업 등 예산보다 신종감염병 대응사업 예산을 우선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사업 개요에서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등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국가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대비하여 대비·대응체계 구축 및 운영을 통한 국민 건강과 보건 완전 도모’라고 적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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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바이러스제 확보에 511억 배정

신종감염병 대응·대책 예산 중 가장 많이 늘어난 항목은 항바이러스제 확보다. 올해 0원에서 511억원이 배정됐다. 약 300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확보하는 데 이 예산이 쓰일 예정이다. 두 번째로 많이 늘어난 것은 ‘신종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사업으로, 올해 12억원에서 내년 21억4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중증호흡기 질환 국가표준실험실 운영 예산은 올해 1억5000만원에서 내년 7억4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이 예산 항목에는 메르스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실험실 진단체계 유지 운영, 변이탐지 및 분석, 변이주 병원성 분석, 치료제 탐지 및 분석 등이 들어가 있다.

‘신종감염병 대응·대책’ 외에 역시 메르스 관련 예산인 ‘감염병 예방 관리’ 예산은 올해 52억원에서 내년도 124억원으로, 138.5%의 증액률을 보였다. 이 사업은 감염병 환자 발생 시 감시·역학조사·환자 관리 등의 신속 대응조치를 통해 2차 전파를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감염병 예방 관리’예산에는 상시 감시, 즉각 대응체계 구축에 26억원, 감염병 전문 콜센터에 12억원, 국제네트워크 구축 및 전문가 교류에 3억원이 새롭게 편성됐다. 감염병 관리 지원사업은 올해 19억6000만원에서 42억8000만원으로 늘어났다.

‘감염병 표준실험실 운영’ 예산은 올해 29억원에서 58억원으로, 102.6%의 증액률을 보였다. 주요 내역으로는 감염병 원인 병원체 진단 지원사업이 올해 13억9000만원에서 43억3000만원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안의 다섯 가지 재정투자 주요 방향에서 그 하나로 ‘감염병 예방·대응 역량 강화’를 꼽았다. 여기에는 감염병 유입 차단 및 현장 대응능력 강화, 진단체계 선진화 및 감염병 예방·연구 인프라 확충이 있다.

정부가 요구하는 예산보다 오히려 상임위 국회의원들이 증액을 요구하는 메르스 관련 예산도 있다. 시·도 감염병 관리본부 예산은 내년도 8억원으로, 올해 4억원에서 두 배로 늘었다. 예산결산소위원회 심사 참고자료에 따르면 일부 보건복지위 여야 의원들은 경기도 1개소와 신규 설치 2개소만 예산에 반영할 것이 아니라 전체 17개 시·도에 설치 및 지원이 필요하다며 60억원 증액 의견을 냈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당 부처의 예산요구액은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를 통과하면서 삭감된다. 보건복지위 의원들은 기획재정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예산안에 여야 의원들 동조

검역관리 예산도 비슷한 예에 해당된다. 내년도 예산안이 110억원이지만 일부 의원들은 의심환자가 발생한 경우 밀접 접촉자 파악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자동검역심사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17억3600만원의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자동검역심사대 설치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국립검역소 전산운영 예산은 내년 8700만원으로, 올해와 똑같았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해외감염병의 조기 차단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스마트 검역 구축 예산 반영이 필요하다면서 5억2100만원의 증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역시 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예산 증액 필요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중동지역 입국자에게 잠복기(14일) 동안 문자를 전송하고, 이들의 위험지역 방문 이력 정보를 병·의원에 제공하는 스마트 검역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예산결산소위원회 심사 참고자료에 따르면 신종감염병 입원치료 병상 확충 유지사업도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증액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사업은 메르스 확산 당시 화제가 됐던 음압격리병상을 확충하고 유지하는 데 지원하는 것이다. 올해 15억2000만원이던 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에 24억7000만원이 잡혔다. 김 의원은 증액 의견에서 당초 올해 추경 때 음압입원치료 병실 설치 단가가 계획 단가보다 높아 117개소가 아닌 100개소 설치로 변경됐는데, 계획대로 117개소 설치를 위한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관련 질병관리본부 예산은 또 하나의 이슈로 화제를 모았다. 메르스 확산 이후 역학조사관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부분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요구한 역학조사관 충원 인력은 모두 75명이다. 국회에 제출한 해명자료에서 복지부는 “정부 직제 개정 절차상 역학조사관 인력은 행정자치부와 협의 중에 있으며, 기획재정부 협의를 통해 인건비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면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행일에 맞춰 역학조사관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메르스 확산 이후 중앙 민간 역학조사지원단은 40명, 시·도 민간 역학조사지원단은 129명이었다. 이들이 기존 중앙 및 시·도 역학조사관 34명(중앙 16명, 시·도 18명)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메르스 사태가 끝나고 난 뒤 현업에 복귀했다. 현재 메르스 대응 역학조사 인력은 다시 34명뿐이다.

건국대 집단 폐렴 발생으로 국회에서는 내년도 메르스 관련 예산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복지위의 한 여당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최근 건국대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 원인 조사에는 역학조사관 3명(질병관리본부 2명·서울시 1명)을 파견했다”고 말했다. 예산 관련 한 전문가는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담배부담금 수입이 급증했다”면서 “질병관리본부 예산의 많은 부분이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출되는 만큼 내년도 예산에서는 비교적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액률 1545.9%의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 대응·대책 예산’은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출된다. 이 전문가는 “보다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서 질병관리본부의 많은 예산을 기금이 아니라 일반회계에서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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