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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도끼 상소’ 벌이며 ‘한글날 공휴일’ 만든 이건범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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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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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재미로 세공한 천리안을 가진 사나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두어 해 전, 한글날 기념식장에서 그를 보았다. 나는 그날 표창을 받는 지인의 하객으로 비교적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장내가 어두워지더니 점잖은 차림의 남자들이 한 줄로 들어와 비워두었던 맨 앞 열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한글 유관기관의 대표들인 듯했다. 다들 자리에 앉았는데, 유독 한 남자가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서 있었다. 캐주얼 바지에 재킷은 걸쳤지만 넥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새였다.

선두에서 내빈을 인도하던 안내직원이 부리나케 달려가 그를 제지했다. 행색으로 보나 행동거지로 보아, 내빈이 아닌 사람이 자리를 헛갈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안내직원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얘기를 건네는 듯했다. 안내직원은 그에게 앞 열의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켰지만 그는 얼른 자리로 가 앉지 못했다. 그때 알아보았다.

“아, 이건범이 왔구나!”

그는 나와 같은 대학 1년 후배다. 나라도 달려가 그 친구 손을 잡고 자리로 이끌고 싶었지만 엄숙한 식장 분위기에서 벌떡 일어날 수도, 고함쳐 아는 체할 수도 없었다. 그가 더듬더듬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휴우~’ 한숨이 나왔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검은 안경도 쓰지 않는 그가 맹인이라는 걸, 안내직원은 얼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건범(50)은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다. 한글문화연대는 국어운동 분야에서는 거의 유일한 시민단체로 손꼽힌다. 2013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는 이건범이 이끄는 한글문화연대의 공이 컸다. 2012년 그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한글날 공휴일 반대를 거두옵소서”라고 쓰인 펼침막을 걸고 ‘도끼 상소’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옛날 유생들이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릴 때처럼, 모형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도포에 갓을 쓴 차림으로 멍석 위에 엎드려 앉은 그의 사진이 신문에 나왔을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것 참, 이건범스럽네.”

엉뚱하고 기발하며 자유분방한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했다. 그는 두 번의 옥고를 치른 ‘386’ 운동권이었고 연매출 100억원대의 벤처사업가였으며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책 <좌우파사전>의 기획자였고 자신의 경험을 담은 <내 청춘의 감옥>, <파산> 등 7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다. 시국사범으로 옥살이를 하면서도 스포츠신문과 티브이(TV)가이드, 여성지를 차입해 키득거리며 읽고, 회사가 망해서 50억원의 빚을 졌으면서도 집 팔고 장애보험금까지 몽땅 털어 직원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해주었다는 소문 역시 “건범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이건범이 국어운동에 뛰어들었단 소식은 뜻밖이었다. 우리말 우리글에 그가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뭘까? 비장한 민족주의자도, 엄숙한 원칙주의자도 아닌 그가 한글지킴이를 자처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파란만장 롤러코스터 인생에서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글날 연휴를 앞두고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글문화연대 사무실로 이건범 대표를 만나러 갔다.

‘분자’, ‘분자’ 그리고 불순‘분자’

네댓 평 남짓한 공간에,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버섯 모양의 가리개 아래 그의 책상이 있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환한 조명 아래선 작업을 할 수 없어 설치해 둔 것이라 했다. 그는 시력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으로 동공의 측면을 통해서만 겨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도다. 그의 키보드엔 흰색과 검은색 자판이 섞여 있다. 글을 읽을 때는 모니터의 활자를 음성화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시각에도 그는 모니터 앞에 얼굴을 바짝 대고 이어폰을 낀 채 원고 작업에 열중이었다.

-바쁘시죠?

“아이고, 어서 오세요.”

그가 일어나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손을 어느 방향으로 내밀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그의 손을 끌어당겨 악수를 나눴다.

-최근에 한글 관련 단체들과 손잡고 한자병기 반대운동을 벌였는데 성과에 만족하세요?

“한자병기를 할 건지 말 건지 결정이 1년 미뤄진 것뿐이에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교육부의 원래 방침대로라면 2017년부터 초등학생들은 한자가 병기된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어 있었다. 작년 9월 교육부는 학생들의 ‘인문사회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1년 뒤인 올해 9월부터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확대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간의 무관심 속에서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한자병기 방침에 제동이 걸린 것은 한글문화연대가 중심이 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의 격렬한 저항과 반발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지난달 22일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발표하며 초등학교 한자교육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은 정책연구를 통해 내년 말까지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두 가지 가능성 다 있다고 봅니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접을 수도 있지만, 일단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다시 재개할 수도 있어요. 워낙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입김이 강해서.”

-한자병기를 해서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가르치는 게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 않나요?

“한자병기를 해서 뜻이 명확해진다면 모든 한자어에 한자를 병기하는 게 맞겠죠. 지난 8월 공청회를 할 때 국가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장이 주장한 게 그런 거예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초등학교 과학에 지질 분야와 관련된 전문용어가 43개가 나오는데 그중에 80%인 37개가 한자어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면 안 된다’고요….”

-그 말이 틀렸나요?

“저희가 다시 분석을 해봤어요. 중복되는 단어 빼면 한자어가 37개가 아니고 23개쯤 되는데, 중·고교 한문교육용 기초한자가 1800자거든요. 그 1800자 안에 들지 않는 글자가 35%예요. 1800자를 다 배워도 모르는 거죠. 예를 들면 ‘역암’(礫巖) 같은 단어가 그중 하난데, 이게 무슨 ‘역’ 자인지 아세요? ‘조약돌 역(礫)’ 자래요. 역암을 가르치려면 실제로 만져보게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역암이 형성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줘야지 ‘조약돌 역’ 자를 가르친다고 이해가 되나요?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를 한자로 이해하려면 도대체 애들이 몇 천 자를 공부해야 되냐고요? 그럼, 쉬운 한자로 된 말은 낱말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죠. 사회(社會)는 ‘모일 사’ ‘모일 회’, 회사(會社)도 ‘모일 회’ ‘모일 사’인데 한자를 알면 이 차이가 구분되나요? 인문(人文)이란 말도 마찬가지죠. 한자는 쉬워요. 근데 우리 국민한테 ‘인문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으면 몇 명이나 답할 수 있을까요? 저도 답을 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동음이의어 같은 게 있잖아요. 예를 들면 열도(列島)와 열도(熱島)처럼….

“어차피 동음어는 맥락을 가지고 이해해야지, 그 단어만 따로 떼어서 뜻을 전하긴 어려워요. 수학의 ‘분자’, 과학의 ‘분자’, 그리고 불순분자 할 때 ‘분자’가 있어요. 내가 ‘분자’라고 말을 하면 이 중 어떤 건지 상대방이 어떻게 알죠? 신통술이 아니고선 알 도리가 없어요. 구분이 안 되니 한자로 보여주자고요? 셋 다 똑같은 ‘나눌 분’에 ‘아들 자’, 분자(分子)예요. 결국 의미는 단어가 쓰이는 문맥에 의해서 전달되는 거예요. ‘인사(人事)과장님이 사장을 만나서 인사(人事)했다’ 한자는 똑같잖아요.”

-하하하, 진짜 그러네!

“저도 한자가 어떤 낱말 뜻의 실마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아요.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들이 좋아서 공부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고요. 근데 그게 초등학교 공교육에서 강제로 가르쳐야 할 만큼 중요한 거냐고요? 한자교육이 국가사회적인 요구라고 교육부에선 얘기하지만 난 명백히 사교육 시장의 요구라고 생각해요.”

‘도끼 상소’ 퍼포먼스 벌이며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든
유일한 국어운동 단체 대표
재미, 기발, 경쾌로
감옥과 기업, 엔지오 넘나들다

사업 실패 이후 시력 악화
지팡이 들고 다니는 장애인 됐다
‘빛나는 존재’ 되겠단 욕심이
실패의 원인 아니었을까
가벼워야 편견이 준다는 깨달음


한자병기는 사교육업체의 논리

-일선 학교에서 나온 요구가 아니고요?

“저희가 올 초에 초등국어교육학회를 통해 초등교사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전체의 66%가 한자교육에 반대했고 90% 이상이 학습 부담이 늘어나고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질 거라고 답했어요.”

-그런데 왜 한자병기가 추진된 거죠?

“전국에 한자지도자 자격시험이 한 83개쯤 돼요. 그중 국가공인이 10개 정도 되고요. 우리나라 국가공인 자격증이 99개 정도인데 그중에 한자만 10개죠.”

-그렇게 많나요?

“한자 관련된 교육 지도사를 양성하는 기관에서 그 장사를 계속하기 위해서 한자를 교과과정으로 집어넣자고 요구하는 거죠. 이걸 사회 변화의 큰 흐름 안에서 볼 필요가 있는데요. 1988년에 <한겨레>, <국민일보>, <스포츠서울>이 한글 가로쓰기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조선일보>가 한글 가로쓰기로 바꾸기까지 10여년이 걸렸거든요. ‘민간 주도의 문자혁명’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후로 한자 수요가 급격하게 떨어지니까 한자파들이 다시 살려내기 시작한 게 ‘급수 시험’이에요. 사교육업체들이 그때부터 초등학교 다니면서 교장들 상대로 영업하고 단체로 시험을 보게 했죠.”

-저희 아이도 그렇게 시험을 보긴 했어요.(웃음)

“몇 해 전, <소년한국일보>가 보도한 걸 보면, 한 해 150만명 응시자 중에 절반 이상이 초등학생이래요. 한자가 진짜 꼭 배워야 할 거라면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시험을 봐야 하잖아요. 거긴 수요가 없으니까 초등생, 심지어 유치원생 상대로 사교육업체들이 융단폭격을 하는 거예요.”

-그래도 무슨 근거나 논리가 있을 것 아녜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라는 단체의 대표란 분이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일본보다 떨어지는 건 국한문 혼용을 안 해서다. 그러니 혼용을 해야 한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이걸 모르면 문맹이고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나 한자를 안 가르쳐 아이들의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괴담’일 뿐이라는 게 이건범 대표의 주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만 15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은 읽기능력 부문 세계 1~2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하위 성적을 낸 건 55~65살의 한자세대 장년층이었다.

-한자병기 문제는 여기까지 하죠. 다음 주제로 넘어갈게요.

“잠깐만요,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아, 예. 말씀하세요.

“중요한 건, 한자병기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이에요. 우리가 한글전용으로 가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던 이유가 ‘한글로만 써놓으면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옛날부터 내려온 얘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1970년 한글전용을 처음 시행한 이후 1990년대 말까지 약 30년에 걸쳐서 사회적 실험을 해봤단 말이에요. 문자혁명을 한 건데, 이제 와서 ‘음, 해보니 역시 흠이 있는 글자야. 한자를 병기할 거야’ 하면 한글은 ‘부족한 글자’라는 인식이 생겨요. 그럼 앞으로 영어나 외국 글자를 혼용하는 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겠죠. 공문서나 신문에까지. 그건 사람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거예요. 물어보고 싶어도 주눅 들어서 묻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전 그런 경우를 몇 번 본 적 있어요.”

-어디서요?

“감옥에 갔을 때요.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절도로 1심 확정돼서 2심 항소하는 사람들이랑 방을 같이 썼는데, 다 ‘개털’(빈털터리 재소자를 뜻하는 은어)들이에요.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변호사도 없고. 이 사람들한테는 판결문도 너무 어렵고 검찰 기소장도 어렵고, 도대체 자기가 어떤 죄로 왜 벌을 받는 건지 해독하기가 어려운 거죠. 억울한 점이 있어도 자기를 글이나 말로 변호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 판결문, 공소장 같이 봤는데 내가 봐도 너무 어려워요. 대법전 하나, 국어사전 하나 사서 봐가면서 탄원서나 항소이유서 대신 써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한글문화연대 일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저희가 2000년 2월에 창립되고, 11월에 운영위원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 옛날 감옥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말이나 글이 사람을 얼마나 절망에 빠뜨릴 수 있는지, 자기가 자기를 변호할 수 없는 막막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감옥에서 읽은 한자 판결문
나도 어려워 사전 찾아봤는데
하물며 ‘개털’들은 어땠을까
눈은 날로 어두워졌지만
한글운동 뛰어들게 한 계기

한자병기가 이해력 높인다고?
한글전용 30년 실험은
민간의 문자혁명 성공한 것
한자세대보다 한글세대가
읽기능력 좋은 게 그 증거


가벼움은 진지함보다 강하다

이건범은 두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1986년 구속되어 4개월간, 졸업 뒤 1990년에 다시 2년4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엄하고 부지런한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원래 공부보다는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있었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앞두고 체육특기자를 선발하는 ‘88 꿈나무’ 선발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운동신경이 빼어났다.

고1 때까지 전교 600명 중에서 150등을 하던 그가 공부에 맘을 두기 시작한 건, 대학의 사회체육과에 진학하고 싶단 포부 때문이었다. 체대생이 되려고 공부를 하다가 “성적이 너무 오른 게 탈”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체육과에 진학하겠다는 그를 뜯어말렸고 그래서 마지못해 택한 것이 ‘사회체육과’와 개중 비슷해 보이는 ‘사회학과’였다. 1983년 이건범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88 꿈나무’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쉽군요.(웃음)

“그러니까요. 내 꿈은 원래 사회체육과 가서 록밴드 만들어 대학가요제 나가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저항가요 부르면서 돌 들고 100m 질주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웃음)”

-그래도 전형적인 운동권 학생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 청춘의 감옥>에 써놓은 걸 보고 배꼽 잡았다는 사람이 많아요. 놀이터에 간 개구쟁이처럼 거기서도 장난치고 사람들 웃기고….

“저도 뭐 혁명, 이런 걸 생각하긴 했지만. 혁명하다 죽는 건 나중 문제고 죽기 전까지 일단 재밌게 살아야지 싶어서.(웃음)”

-책에서는 “자유롭고 불손하고 즐거운” 감옥생활을 얘기하면서 “가벼움의 힘”을 주장했던데, 가벼운 게 어떻게 힘이 되죠?

“옛날엔 많이 얘기했는데… (갸우뚱) 오래돼서 까먹었네. 뭐였더라?”

-하하, 진짜 가볍네!

“아! (생각난 듯) 이런 거예요. 가벼워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쉽게 쉽게 인정해야 편하거든요. 가벼우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요.”

-그러면서도 의리나 신뢰를 굉장히 중시하던데요?

“신뢰는 행복할 때 생긴다고 믿어요. 행복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의리의 바탕이죠. 우리는 늘 무거운 상처나 고통, 진지한 믿음을 기둥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사실 내가 살아가는 힘은 가벼운 행복, 사람들과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에서 나와요.”

-두 번째 징역에서 나온 이후 창업을 했어요. 가벼워서 생각이 바뀐 건가요?(웃음)

“감옥에서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내가 체육학과 못 간 것도 억울한데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자!’ 문화를 주제로 하는 그런 사업을 해서 모범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진보를 생각하면서 민주적인 기업, 더불어 사는 기업, 정말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기업, 상거래 질서를 지키는 기업…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이건범이 대학 동료들과 세운 교육용 소프트웨어 회사 ‘아리수미디어’는 승승장구했다. 한때 직원 120명에 연매출 1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 5일제’가 법제화되기 3년 전인 2000년부터 그의 회사는 주 5일제를 실시하고 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방침을 채택했다. 2000년 신년사를 대신해 이건범이 발표한 ‘신인간기업 선언’은 당시로선 신선한 파격이었다.

21세기 신인간기업 선언

우리는 기업이 한 개인의 것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기업이 이윤실현을 위해 온갖 부정과 불의를 자행하는 악의 화신으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논리를 충실하게 밟아가면서 부패와 부정과 편법의 유혹을 인간의 논리로 통제해낼 것이다.(하략)

재미 그리고 작은 성취

-그런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그 과정을 <파산>이란 책에서 소상히 밝혔지요. 사람들은 성공담은 잘 공개하지만 실패한 얘기는 실패를 딛고 재기했을 때만 털어놔요. 이런 시련도 있었는데 이겨냈다고….

“내가 잘되건 잘못되건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거나 지금의 나를 평가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글로 쓸 때는 무지 힘들었어요. 그때의 역사를 복기해야 하는데, 답이 안 나오는 거야. 내가 왜 망했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 끝에 찾아냈나요? 망한 이유를?

“내가 빨리 사람들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이요. 나 혼자만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잠깐 유보하고 일단 권력을 빨리 잡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거죠.”

벤처거품이 한창일 때 무리하게 사업투자를 하다가 외환위기 국면에서 철퇴를 맞고 그는 파산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집 팔고 가진 것 다 털어서 직원들에게 피해가 덜 가게 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업 실패와 함께 시력도 급격히 악화되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장애 1등급이 되어 받은 보험금도 청산 과정에 싹 털어넣었다. 마음은 후련했다. 집도 날리고 1000만원에 40만원짜리 월세방으로 나앉았지만, 이건범은 다시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몰두했다.

의미있는 책을 기획해 출판하고, 직접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고, 눈이 안 보여도 마라톤을 연습하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기리는 이소선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하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과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노래를 작사하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교육희망네트워크’에서 대안적 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한글문화연대’의 무급 상임대표로 3년째 일하고 있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력에도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열심이다. “맹인용 지팡이를 들고 나가도 너무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니 사람들이 등산용 지팡이라 생각하고 길을 안 비켜준다”고 푸념하면서 그는 껄껄 웃었다.

-젊어서 패기만만하던 사람도 나이 들어 노후 대비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건강도 예전만 못하면 의기소침해지거나 불안해하는데, 가끔 두문불출하고 혼자 처박혀 있고 싶을 때 없었어요?

“글쎄… 하루 이틀 정도?”

-(놀라서) 오십 평생 하루 이틀이라고요?

“고통스러운 날은 있었지만 혼자 있으면 사람 바보 될 것 같아서 사업 망했을 때도 아주 체계적으로 놀았어요.”

-체계적으로 노는 건 어떻게 노는 거예요?

“음악학원에 색소폰 등록하고 드럼 등록하고… 돈이 얼마 들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중국어학원도 다녔는데 나 빼곤 선생님도 수강생도 다 젊은 여성들. 하하하… 부담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망신 안 당하려고 열의를 불태웠죠. 장학금도 받았어요.”

-(진지하게) 인생이 그렇게 즐거워요?

“(망설임 없이) 재밌어요!”

-운동권에서 벤처사업가, 출판기획자, 작가, 국어운동, 복지운동… 끊임없이 동분서주 일을 만들고 다니는데, 어디서든 제일 중시하는 건 뭐죠?

“재미없는 사람들하곤 일하고 싶지 않아요. 재미있는 사람들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게 신나요.”

-재미있는 사람들?

“정치 성향 같은 거 상관없이 그냥 좀 깨어 있고 말귀가 통하고 유머도 알아듣고, 날 웃겨주기도 하고 나한테 많이 웃어주고, 서로 눈치 안 봐도 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욕심이 많죠. 재미있는 사람들하고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게 재미없는 사람들하고 이뤄낸 큰 성취보다 훨씬 즐겁고 자랑스러워요.”

이건범은 내가 만나본 시민운동 상근자 중 가장 ‘아마추어적인 전문가’다. 그는 스스로 궁금해서 해답을 찾아나서고, 사람이 좋아서 모임에 참석하고, 일이 좋아서 일을 한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명분과 대의가 아니라, 삶의 즐거움과 경쾌함이다. 그의 두 눈동자는 그래서 항상 우리가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을 향해 열려 있다.

녹취 박성희(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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