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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런 ‘헬조선’…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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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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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년공감, ‘청년불만 스테이지’ 행사 열어

‘88만원세대’→‘삼포세대’→‘헬조선’까지

“서로 돕는 친구 많아 아직 지옥은 아냐”


몇번을 쳐도 딱지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의미의 신조어 ‘헬(hell)조선’이 쓰인 딱지는 청춘들이 자주 다니는 서울 신촌 길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청년들이 어깨가 빠질 듯이 내려치고 내려치자 딱지가 하나둘 뒤집어졌다. 딱지 뒷면에 적힌 ‘헬조선은 뒤집어졌다’ ‘최저시급 1만원’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방지법 제정’이라는 글귀에 청년들은 박수를 쳤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문화공원. 2030청년공동체,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등 14개 청년단체가 모인 ‘청년공감’이 ‘청년불만 스테이지’ 행사를 열었다. 청년들은 대출을 받아야 다닐 수 있는 대학, 취업 실패, 최저시급 아르바이트에 힘겨워하면서도 ‘헬조선을 뒤집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만 무대’에 오른 대학생 김현지(20)씨는 등록금이 없어 제적당한 선배 이야기를 했다. “학교 게시판에 등록금이 없어 제적당하게 됐다는 선배의 사연을 보고 돕기 위해 만났다. 선배는 ‘대학을 더 다니는 것은 나에게는 사치다. 지금 도움을 받아도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도움을 거절했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김씨가 이날 선배 이야기를 꺼내 놓은 이유는 ‘헬조선’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다. 김씨는 “선배는 도움을 거절하면서도 ‘평생 못들어본 따듯한 말을 해줘 고맙다’며 앞으로 다른 친구들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끼리 작은 돈을 모아, 학교에서도 나라에서도 돕지 않는 친구들을 돕기 위한 작은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했다”며 “서로 돕고 싶어하는 좋은 친구들이 많은 사회는 아직 지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생 한대윤(20)씨는 수능을 친 뒤 2년동안 서빙, 설거지는 물론 대형마트, 사무실 등에서 갖은 알바를 섭렵했다고 했다. 한씨는 “중요한 다른 일들을 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일을 놓을 수 없다”면서도 “짬을 내서라도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면 우리 미래를 좀 더 낫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88만원세대’에서 ‘삼포세대’를 거쳐 ‘헬조선’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 문제가 주목받은 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날 행사를 연 청년공감은 ‘청년문제 해결을 다시 한 번 스스로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지훈 청년공감 대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청년문제를 자주 얘기하지만 이번 노동구조개혁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정작 청년의 미래 노동을 불행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공감은 지난 한 달여 동안 대학 캠퍼스 8곳을 돌며 재벌의 곳간을 열어 청년 일자리를 만들라는 취지의 ‘재벌돼지 다이어트’ 퍼포먼스를 하거나, 취업 준비생이 몰린 서울 노량진을 찾아 ‘청년 헬조선을 뒤집자’ 캠페인을 벌였다. 대구, 광주, 부산 등을 돌며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계획도 세웠다. 유 대표는 “우리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듯 절망만 하는 포기한 세대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간절히 바라는 세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헬조선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청년공감은 지난 한 달 동안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통해 청년들에게서 받은 이야기를 엮어 노래 ‘청년병’을 만들었다.‘청년병’은 한국 청년들의 우울한 현실이 마치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의미의 은유적 표현이라고 한다. 20여명의 청년들은 ‘청년병’을 부르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조금만 더 견뎌봐 언젠가 좋을 날 올거야. 친구들도 걸린 청년병 언젠가는 자연스레 낫길 바라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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