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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그냥 둥글게 살라고? ‘모난 돌’ 취급받아도 잘못 지적해야 세상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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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불편 꼬집는 ‘프로불편러 대회’

중앙일보

지난달 22~30일 열린 프로불편러 대회 포스터.


“아기 아빠인데 제가 똥 기저귀를 가는 게 대단하다는 얘길 들으면 참 불편합니다. 아기 엄마가 하면 당연하고 내가 하면 왜 칭찬을 받아야 하는 거죠?”

“세 살 아이를 키우며 재택근무 하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에서 놀면서 왜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느냐’며 뭐라 합니다. 저의 꿈과 목표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이런 현실이 너무 불편합니다.”

지난달 22~30일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가 주최한 ‘천하제일 프로불편러 대회’에는 스스로를 ‘프로불편러’라고 부르는 네티즌들의 생활 속 사연이 속속 답지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평소 불편하게 여기던 점을 올린 뒤 좋아요 등 공감을 많이 받은 사연을 뽑는 행사였다. 9일간 모인 사연만 820개. 공유 횟수도 8900건에 달했다.

이들 프로불편러는 스스로를 ‘감수성이 풍부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이나 행동, 약자가 느끼는 차별과 억압, 불합리한 사회 통념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붙이는 꼬리표로 통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온라인 게시물에 비판·불만의 댓글을 달면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면박을 받기 일쑤다. 자신의 불행을 어필하며 무조건적인 공감만 요구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온라인에서의 건전한 비판 문화 조성을 가로막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프로불편러가 된 이유도 다양했다. 여성이 몰카와 성폭행 범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사회가 싫었고, 아내가 남편 내조와 아이 양육을 도맡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이 불편했다. 명절이면 여성들만 음식을 하는 게 부당했고, 은근히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풍조도 불만이었다.

한 참가자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예쁜데…’란 말이 불편했다. 재해나 흉악범죄의 여성 피해자 생전 사진을 보며 ‘예뻐서 더 안타깝다’고 거리낌없이 말하는데, 덜 예쁜 사람이면 죽음도 덜 안타까운 건가”라고 ‘돌직구’를 던져 큰 호응을 얻었다. “여성은 정치와 경제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불편하다”거나 “경찰 도움을 받으려 해도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망설여야 하는 현실이 싫다”는 의견도 나왔다.

커뮤니티 측은 행사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존 관습과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굉장히 어렵게 돼 있다. 성문제뿐 아니라 정치·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이건 아닌데…’라고 하면 ‘모난 돌’ 취급받기 십상이다. 모두들 그냥 둥글게 살라고만 한다. 하지만 작고 하찮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로불편러의 등장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각박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부 프로불편러가 지나칠 정도로 불평을 늘어놓다 보니 건전한 비판을 하는 대다수 네티즌까지 똑같은 취급을 받곤 한다”며 “그렇다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침묵하는 것은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대우 호서대 교수는 “프로불편러들도 불만을 털어놓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논리적 비판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프로불편러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프로불편러에 대한 시선이 ‘괜히 토를 달아 분위기 흐리는 사람’에서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으로 바뀌어 나가길 기대했다. 그들은 말한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뀝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자 소망입니다. 불편한 일이 없을 때까지 우리는 프로불편러로 살아갈 것입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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