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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하이파이브!" 유기견들 노약자 도우미로 제2의 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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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로 보는 세상]

경기 화성 도우미견 나눔센터 가 보니, 60여마리 도우미ㆍ치료견으로 맹훈련

청각ㆍ지체장애인과 독거노인에 큰힘
한국일보

경기 화성 마도면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훈련사가 동물매개 치료견 훈련을 받고 있는 누리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화성=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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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경기 화성 마도면에 위치한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훈련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훈련을 받고 있는 갈색 푸들 몽실이(1세)가 폴짝폴짝 뛰며 신이 났다. 송민수 훈련사가 초인종을 누르니,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다시 돌아와 송씨의 다리를 건드린다. 청각장애인에게 누가 찾아온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임무를 잘 수행한 몽실이는 한아름의 칭찬과 간식을 받았다.

몽실이는 원래 유기견 출신이다. 올해 초 경기도 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송 훈련사가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후보로 발탁했다. 소리에 민감한 데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몽실이는 3개월간 ‘앉아’ ‘기다려’ 등 기본적인 복종훈련과 배변훈련을 마쳤고, 얼마 전부터 본격적인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훈련에 돌입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초인종이 울리면 문으로 달려가 확인한 다음 주인에게 돌아와 발을 구르거나 매달리고,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가슴에 올라타서 깨워준다. 가전제품의 알림 메시지까지도 알려주는 그야말로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어주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가운데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수신호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한다.

송 훈련사는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집에 가서는 보청기를 빼고 있는 경우가 많고, 빛을 통해 초인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업무를 보는 동안에는 확인할 수 없다”며 청각 도우미견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들이 강아지와 생활하면 활동 범위도 넓어지고 성격도 더 적극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훈련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 주눅이 들거나 기계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학습을 통해 소리를 좋아하게끔 교육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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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마도면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의 송민수 훈련사가 센터의 시범견으로 활동할 은별이와 훈련을 하고 있다. 화성=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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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300㎥규모의 도우미견 나눔센터에는 유기견 출신 60여마리가 도우미견으로 변신하기 위해 맹훈련 중이다. 경기도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 26곳에서 건강, 사람과의 친화력 등 기준에 적합한 3살 미만의 유기견들을 선발해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동물매개 치료견으로 키워낸다.

나눔센터가 설립된 지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 그간 훈련시킨 175마리 가운데 173마리가 서울 경기 인천 지역 장애인, 독거노인 등의 일반 가정으로 입양됐다. 동물매개 치료견으로 한 마리가 활동 중이며 청각장애인 보조견 한 마리는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여운창 도우미견 나눔센터 팀장은 “훈련도 이겨내야 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력도 요구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도중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기본 복종훈련을 마치고 분양된 개들이라 꼭 도우미견 타이틀이 없어도 장애인, 독거노인,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소년들의 반려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센터가 훈련된 개를 분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개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느냐’다. 그러다 보니 실제 유기견들이 새 가정을 찾았다가 나눔센터로 돌아오는 경우는 8%도 되지 않는다. 또 기본 훈련이 되어 있는데다 나눔센터가 1주일간 배변훈련이나 환경적응 등에 대해 상담해주고, 1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입양 후 관리를 하는 점도 개들이 다시 버려지지 않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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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센터에서 사람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도우미견 후보견들. 화성=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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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이 아닌 개들이 머무는 견사를 방문하자 개들이 깡충깡충 뛰며 짖어댔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개들을 선발해 오기 때문인지 서로 관심을 받아보겠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푸들, 시추, 요크셔테리어 등 반려견으로 인기 있는 품종들이었다. 주인이 일부러 버렸든 길을 잃었든 한때는 가족의 막내로 사랑 받던 개들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이제 도우미견으로서 제2의 삶을 준비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도우미견 나눔센터의 재원은 경기도가 부담한다. 이곳에 근무하는 인원은 여 팀장과 수의사 1명, 훈련사 3명 등 총 5명이다.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므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1년에 이곳을 찾는 자원봉사자는 1,500명으로, 미용 등 재능기부를 하는 전문가뿐 아니라 청소, 산책, 놀이를 담당하는 학생, 일반인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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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센터에서 사람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도우미견 후보들. 화성=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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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팀장은 “경기도에서만 1년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1만5,000마리, 전국적으로는 10만마리에 달하고 이 가운데 주인이 찾아가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며 “유기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를 입양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한 지식과 책임감을 갖추고 자신의 생활패턴에 맞게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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